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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주는 사람

by 정유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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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전담 수업하는 4학년에 ‘휘’라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덩치는 산 만큼 크고 튼실하지만 정신연령은 5살 아이이다. 음악 수업 시간마다 초등학교 필수 악기인 리코더를 분다. 휘는 특히 리코더를 좋아해서 ‘비 삐삐’ 무차별 소음 테러를 한다. 아이들이 리코더를 뺏기라도 하면 교실이 떠나가라 울면서 떼를 쓰기에 할 수 없이 휘의 입에 리코더를 물려준다. 아이들과 나는 이제 그 소리를 소음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적응이 되었다. 반 아이들의 너그러운 마음씨와 햇살 가득한 사랑이 휘를 구제했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휘는 사람들과의 스킨십을 유난히 좋아한다. 누구라도 스스럼없이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프리허그를 한다. 반 친구들은 물론이고 복도에서 만나는 선생님에게로 돌진해서 깜짝 놀란 적도 많다. 여자 친구들은 휘를 마치 막냇동생처럼 손을 잡고 복도와 교실을 돌아다닌다. 여자친구에게는 손을 잡고 프리허그는 하지만 얼굴 쪽은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 반면 남자 친구에게는 어깨동무를 하고 볼을 비비며 좋아하는 휘의 표정은 마치 하늘에서 길 잃은 천사 같았다. 나름 남자친구와 여자친구에게 하는 애정 행각의 수위가 확연한 것이 기특하고도 신기하다.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 저 멀리서부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리코더 샘! 리코더 샘!!”을 외친다. 달려와서 손을 아프도록 꽉 잡거나 품에 와락 안긴다. “휘야, 리코더샘이 아니고 음악선생님이야.”라고 몇 번을 말해서 실실 놀리듯이 리코더샘을 외치는 것을 보면 장난기도 가득하다.


어느 날 복도에 대자보가 붙었다. 그것도 2장이 나란히 붙어서 두 눈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5, 6학년 언니 오빠들에게로 시작되는 대자보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반에는 천사같이 마음이 착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우리와 함께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껴안기를 좋아합니다.


남자, 여자라는 구분 없이 누구나 보면 손잡고 껴안으려 합니다.


우리 반 친구들은 그 친구의 손을 잡고 복도도 다니고 화장실도 함께 다녀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친구를 피하거나 귀찮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본 언니 오빠들이 "너네들 사귀냐? “, ”얼레리 꼴레리 남자 여자가 손잡고 다니네? “ 하면서 우리를 놀렸습니다.


우리는 그 친구와 사귀지 않습니다. 놀림을 받은 우리 반 친구들이 충격을 받고 슬펐습니다.


우리와는 조금 다른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는가요?


우리는 그 친구를 똑같이 사랑하고 친구로 잘 지내니 앞으로 이런 모습을 보더라도 제발 놀리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하고 코끝이 찡했다. 4학년 아이들이 쓴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진정성 있는 마음과 따끔한 충고가 담겨 있었다. 아이들의 맑은 영혼과 따스한 마음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은 가해자인 누군가에게 분명히 전달되었을 것이고 반성했으리라 믿는다. 오늘도 우리의 ‘휘’가 여자 친구와 함께 손잡고 복도를 활보할 수 있는 것은 친구들 하나하나가 휘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친구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아이들보다 못한 마음을 먹은 적은 없던가. 가끔 마주치는 심신이 불편한 사람에게 따스한 눈길 하나라도 보냈던가. 그들은 단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편견 없이 봐주고 보통 사람과 똑같이 대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모두의 마음이 모여서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면 이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휘'를 통해서 아이들은 사랑을 배우고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이치를 깨우친다. 그러기에 '휘'는 우리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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