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내년이면 구순이신 친정어머니를 뵙기 위해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마음의 속도는 KTX 속도를 가뿐하게 따라잡고 벌써 엄마와 마주보고 수다삼매경이다.
2년 전부터 몇 개월 만에 뵙는 엄마의 얼굴은 눈에 띄게 수척했다.
게다가 드시고 싶은 음식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에 심장이 뚝 떨어졌다.
"엄마, 피자 한판? 콜?"
"아이고, 말만 들어도 메시껍다."
"왜~엄마 피자 엄청 좋아하시잖아. 엄마, 우리 경주 경리단길 여행길에서 유명한 피자집 찾느라 젊은이들에게 물으니 두 할머니가 웬 피자? 하는 표정으로 봐서 깔깔 웃었잖아요."
"그랬지. 이제는 피자 말만 들어도 속이 안 좋다."
그럼 엄마가 두 번째로 좋아하시던 양푼갈비찜을 추천해 보지만 손사래를 치신다.
결국 엄마의 밥상 위에는 물에 만 밥 반공기와 고추장과 김치만이 서럽게 앉아 있다.
엄마와 함께 외식하면 잔반은 밥 한 톨도 나오지 않았다.
"사장님, 설거지하기 편하지요?"
식당문을 나설 때 주인장의 감사인사는 부록처럼 따라왔다.
뭐든지 잘 드셨고, 그 양도 만만찮았다.
그랬던 울 엄마가 도대체 드시고 싶은 음식이 없다는 말씀에 하늘이 무너졌다.
어쩌면 엄마와의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땅이 꺼졌다.
한 번이라도 더 자주 찾아뵙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현실에 깊이 절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얼굴빛이 살아났고 몸에 살도 붙었다.
"여름 모자 하나 사야 하는데..."
"아이고, 엄마. 당장 사러 가요. 또, 또 필요한 것은 없어요?"
"여름 바지도 하나 있으면 좋겠고, 겨울 외투 벗으면 입을 봄잠바도 필요한데 미안해서."
지난 2년에는 살 것 없냐고 물으면 있는 것도 버려야 하는데 무슨... 하시며 절대로 사지 않으셨던 것을 생각하면 심봉사가 눈을 번쩍 뜬 것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내친김에 드시고 싶은 음식이 없냐고 물었더니 바로 답이 돌아왔다.
"추어탕이 먹고 싶네. 짜장면도 먹고 싶고, 회 한 접시 먹을까?"
내 귀를 의심하였다. 한 가지도 아니고 세 가지 음식을 연타로 후보에 올려 주시다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색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벌써 외출할 준비를 하신다.
"내가 2년 동안 죽다가 살았데이. 병원에 가도 나을 병도 아니고 자식들도 바쁘고 정신없는데 내가 아프다고 하면 말이 안되제. 밥때가 되면 또 이 밥을 우째 넘기노 했다. 그래도 먹어야 살기에 한 숟가락 겨우 떠 넣으면 왈칵 토하고, 토하더라도 살라면 또 밀어 넣고. 삼시세끼 닥치는 게 제일 무섭더라. 게다가 주먹만 한 혹이 엉덩이 쪽에 생기더니 고름이 나오다가 차차 차차 궤가 돌더니 점점 크기가 줄어들더라. 앉지도 눕지도 못해서 늘 옆으로 모로 누워서 자다 보니 팔다리가 저려서 옴짝달싹도 못하고. 겨우 낫고 나니 손가락이 띵띵 부으면서 벌겋게 익기 시작하는데 수시로 뜨거운 물에 손가락을 담갔더니 살살 잦아들더라. 어떨 때는 꼬빡 숨이 넘어가는 것 같다가도 살살 깨어나고 그런 세월이 2년이다. 에휴~징하다 징해. 올해 1월부터 차차 입맛이 돌아오고 눈이 똑바로 박히고 운신을 하겠더라고."
매일 아침 문안전화를 드렸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당신의 아픔을 바람 한 점 못 들게 꽁꽁 싸맸기에 무심한 딸의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냥 세월의 흐름 앞에서 숨만 쉬어도 사그라드는 노환이라고만 생각했다.
"엄마, 그렇게 몸이 안 좋은데 어떻게 숨겼어? 병원에 가면 좋은 기술과 약이 있어서 고생 안 하고 빨리 치료할 텐데 왜 이렇게 미련을 떨어요? 진짜 내가 못살아. 그게 자식 위한 일 아니고 자식 가슴에 피멍 들이는 거라구. "
마음과 달리 또 뾰족한 말이 튀어 나간다.
"평생 아팠는데 뭘 호들갑스럽게 내 몸 아프다고 자식들 귀찮게 해. 하느님이 부르시면 네 하며 가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
하느님이 엄마 살리셨네.
시장가는 발걸음이 중력이 사라진 듯 가볍다.
내 생애 가장 즐겁고 행복한 소비였다.
지갑이 가벼워질수록 행복이 쌓이는 매직이다.
엄마가 여름을 대비하는 모자와 옷을 준비하고자 함은 삶에 대한 자신감이다.
적어도 올 여름은 살아낼 수 있는 체력을 회복했기에 가능한 욕구다.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른다는 건 생에 대한 애착이다.
먹을 수 있고 소화시킬 수 있는 건강을 찾았기에 주어진 찬란한 훈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