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 속에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공지영', '딸', '레시피'. 이 단어들이 주는 믿음과 호기심에 주저 없이 뽑아 들었다. '딸에게 주는 레시피'라는 제목을 보며 레시피라는 것은 은유적인 표현인 줄 알았다. 딸에게 건네는 삶의 지혜나 위로를 레시피라는 단어로 치환한 줄 알았는데 진짜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였다. 공지영 작가가 이렇게 음식에 조예가 있는지 몰랐다. 그것도 작가의 표현대로 인생의 모토와 닮은 쉽고 간단하나 결코 가볍지 않은 나름의 이유와 가치가 있는 레시피가 책 가득 담겨 있었다. 딸에게 주는 다독임과 충고와 랍비급 지혜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얘기하면서 어울리는 음식의 레시피까지 알려주다니 참으로 신박한 조합이다.
엄마가 싶은 말은 이거야.
너는 소중하다고.
너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일을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 돼.
작가가 딸에게 하는 말은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 날엔 시금치샐러드
엄마 없는 아이 같을 때 어묵두부탕
자존심이 깎이는 날 먹는 안심스테이크
복잡하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파이
죽음을 위로해 준 고마운 친구들과 먹는 훈제연어
모든 게 잘못된 것 같이 느껴지는 날, 꿀바나나
포트릴 파티에 가져가는 브로콜리 새우 견과류 샐러드
세상이 개떡같이 보일 때 먹는 콩나물해장국
속이 갑갑하고 느끼할 때는 시금치된장국
엄마표 5분 요리 알리오에 올리오
우선 김치비빔국수를 먹자
지리산 친구들에게 건배하기 위한 굴무침
향기롭고 든든한 불고기덮밥
술 마신 다음 날엔 두부탕
생일 기념 축일에는 부추겉절이와 순댓국
엄마표 비프커틀릿을 먹으며 이야기를 해보자
가래떡을 먹으며 '홈뒹굴링' 하는 날
가장 척박한 땅에서 자라 열매 맺는 올리브
아픈 날에는 녹두죽과 애호박무침
요리라고 부를 수도 없는 달걀요리
봄을 향긋하게 하는 콩나물밥과 달래간장
너를 낳고 홍콩에서 먹은 더운 양상추
따스하고 보드라운 프렌치토스트
속이 답답할 때 먹는 오징엇국 혹은 찌개
가끔 누가 있었으면 할 때는 싱싱김밥
몸을 비우기 위해 먹는 된장차
모든 요리가 요리라고 이름 붙이기가 다소 민망할 정도로 초간단, 초스피드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좋다.
요리에 재능은 없으나 관심은 많은 나도 흉내 낼 수 있는 레시피들이라 만만해서 기분이 좋다.
나의 마음의 현주소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으로 치유하려고 레시피를 깨알 메모해 두었다.
올리브유를 사랑하는 것이 나와 같아서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다.
위령, 비록 네가 앉은 자리가 딱딱하고 너의 옷이 낡고 네가 사는 집이 남루하더라도 올리브 열매 같은 아름다운 결실이 거기서 나올 거라 믿자. 그렇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보낸 오늘 하루는 네 꿈의 한 자락이 되겠지
'세상 모든 사람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딱 하루만 지내보니 마음이 침묵하게 되고 실은 평화와 자유에 이르는 길이라는 걸 깨닫는 작가.
따뜻한 된장차를 마시며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책을 읽으면 오늘은 성공한 날이고, 이 보다 더한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초판을 찍은 지 10년이 지났으니 작가의 딸인 '위령'도 서른 줄에는 족히 들어섰을 것 같다.
엄마의 사랑과 지혜가 담긴 위로와 다독임을 받은 딸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까 궁금하다.
어린 딸에게 엄마의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까?
엄마의 엄마가 들려준 레시피대로 소박한 음식을 만들어 식구끼리 도란도란 먹을까?
삶이 흔들릴 때,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세상이 개떡같을 때, 사랑 앞에 아파할 때...
세상의 모든 딸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앗! 아들도 빼먹으면 섭섭하지.
엄마의 엄마와 엄마의 딸과 그 엄마의 손녀딸에게 전해 줄 귀한 레시피를 발견했다.
이 책 속에서, 물론 조근조근 건네는 따스한 위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