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죠?
오전 중 정신과 협진이 이루어졌고 검사 결과 뇌 mri도 정상, 치매인지도 검사 정상으로 아빠는 치매가 아니라는 최종 소견이 나왔다. 결국 섬망진단- 조금은 길고 특이한 형식의. 아빠는 입원 내내 불면으로 고통을 호소했는데 아마 폭음과 이뇨제로 인한 잦은 소변으로 인해 그럴 것이고 섬망도 잠을 못 들게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그래서 더욱 예민해지고 짜증이 늘 수도 있다는 설명에 짠하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매일 잠을 못 주무셔서 저렇게 힘드시다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약은 없을까요?”
“어르신의 경우는 심장기능이 많이 쇠약해져 있어서 정신과 약물을 함부로 투여하면 심정지가 오실 수 있어요. 체구가 크셔서 용량도 많아지는데, 리스크도 같이 커지거든요. 일단 좀 두고 보는 걸로 하죠. 순환기 내과에서 소변줄을 다시 해주신다고 하니 잠은 좀 주무실 수도 있어요."
새로운 질환의 등장만이 이 상황의 돌파구라 생각했건만 번번이 좌절되는 통에 이젠 반포기상태로
고개를 끄덕이곤 병실에 들어가니 아빠가 편히 눕지도 못한 채 입을 벌리며 푸-푸 거리며 자고 있었다.
"아부지 치매 아니래, 고생했어"
혼잣말로 웅얼대는 소리에 아빠 눈매가 꿈틀 한다. 내가 온 걸 알면 또 돌변하여 한바탕 난리가 날게 뻔하므로 후다닥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어쩜 자기한테 이리 무심하냐며 늘 서운해했지만,실은 저녁 면회시간 이외에도 종종 들러 병실 밖 커튼 사이로 아빠를 몰래 보다 오곤 했다. 간호사들에게 아빠 상태를 항상 체크받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사다 놓으며, 겁쟁이처럼 아빠 주변만 뱅뱅 맴돌았으니 그것이 당시의 최선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병원에서 콜이 떴다. 내용인즉슨
"어르신이 소변줄을 안 하시려고 해요. 엄청 화내시네요. 보호자분이 오셔서 설득을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그렇지. 뻔한 클리셰야 이거. 한숨이 푹푹 나온다.
바로 가겠노라 말씀드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길에 속에서 짜증이 꿈틀거렸다.
"아니 그러길래 소변줄을 왜 뽑아서 난리야 진짜!!!"
모든 불행의 시작은 망할 소변줄 때문인 거 같아서 부아가 치밀었다. 입원 후 이틀 만에 병원에서 소변줄을 제거하는 바람에 '본인이 평소 때보다 더욱 일찍 회복했다'라는 마음이 흥분상태를 유발했고 그 뒤로 쭉 과흥분-분노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았다.
망할 소변줄. 소변줄 나쁜 새끼.
애꿎은 소변줄에게 구시렁대고 있으니 어느덧 병원. 병실로 들어서니 역시 아빠 주변만 기류가 험악하다.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았으나 돌아오는 건 노기 어린 대답뿐.
"아빠 소변줄....."
" 그걸 왜 또 해!! 이것들이 날 가지고 장난하나 에이씨!!!)#($ "
기다렸다는 듯 씩씩대는 아빠. 주사액을 처치하러 온 간호사도 움찔. 나도 움찔이다.
잠깐의 숨 막히는 고요 끝에 간호사가 웃으면서 소변줄 한 번만 더 해주시면 이제 편하게 주무실 수 있으시다며 달래 보았으나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아아.. 여긴 어디고 난 누구인가.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해서 연락한 보호자가 환자를 전혀 컨트롤을 못하자 간호사도 당황한 눈치다. 선생님.. 저는 지금 이 구도에서 가장 심신미약자라고요.. 상대를 잘못 고르셨다고요..
진땀 빼며 종종 대는 와중 순환기내과 담당의의 회진시간이 되었고 선생님과 아빠의 대화 내용을 고대로 옮겨보자면 이렇다.
의사: 환자분, 소변줄 하세요.
아빠 : 알겠다.
간호사: 소변줄 하러 왔어요.
아빠 : 못하겠다.
이런 식이다.
의사 앞에서는 알겠다 동의해 놓곤 간호사가 카테터를 들고 오면 그때부터 몸이 피곤하네, 힘드네, 지치네, 내일 하자는 둥 온갖 핑계를 대고 되돌려 보내고 있었다. 구조상 카테터는 환자의 동의가 무조건 필요하므로, 지리하고도 소모적인 공방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 현장에 내가 있어봤자 아빠 분노만 돋우는 거 같아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
다시 병원에 갔을 때는, 망할 놈의 소변줄과 중환자를 방불케 하는 엄청난 숫자의 수액바늘들이 아빠의 팔 여기저기에 꽂혀있었고 그 장면은 조금은 안쓰러운 것이었다.
'아빠가 또 졌구나..'
초반의 처치에 별다른 호전이 없으니 공격적인 처치를 하겠다는 주치의 말에 따라 좀 더 높은 강도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혈관이 약해져 주사를 꽂고 빼는 자리마다 멍이 생겨서 아빠의 팔은 보랏빛으로 얼룩덜룩해졌고 퉁퉁부은 팔이 안타까워 다가갔다가 자고 있는 아빠의 눈꺼풀이 움찔한 순간 재빨리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와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아빠는 나만 보면 눈을 희번덕거리며 나쁜 말만 쏟아내는 대머리 인형이 되어버렸다. 주로 '괘씸한 것, 무심한 것, 아빠 마음도 모르는 것' 등등인데 나름 심각한 고충에 시달리는 나로서는 아빠의 감정을 부드럽게 포용해 줄 수 없었으니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다음날,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처럼 병원에서 오는 전화벨 소리다. 아빠가 팔에 박힌 유리관을 빼려고 한다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느껴진다
"이거 비싼 의료 기구라 다시 처치하려면 금액 부담이 너무 크실 거예요!! 어서 와주세요!!"
허겁지겁 병실에 도착하니 아빠가 전화를 했는지 홍 씨 아저씨가 와있었고 인사치레 할 겨를도 없이 둘이 번갈아 아빠를 설득해 봤으나 당장 이팔에 달린 모든 걸 다 빼라며 난리가 났다. 숨도 못 쉬고 화를 내다가 혈당이 떨어졌는지 갑자기 늘어진 테이프처럼 말이 어눌해지며 축 쳐져 버린 아빠. 지켜보던 간호사가 포도주스랑 사탕을 상비용으로 둬야겠다길래 사가지고 오니, 이내 귀가를 종용한다. 아무래도 아빠의 분노증폭제가 나라는 걸 깨달은 눈치다. 씁쓸해진다. 홍 씨 아저씨와 주차장에서 헤어진 후 집에 도착하기도 전 벨이 울린다.
아빠다.
수화기 건너편의 아빠는 혈당이 회복되었는지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두서없는 말을 쉼없이 내지른다.
"홍 씨가 설마 너한테도 돈 빌려달라고 했냐? 돈 빌려주지 마라!!!!!!!! 절대 안 된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짜증섞인 고함.
"아이 씨발 할아버지!! 조용 좀 하라고!!!!!!!! 좀!!!!!!!!"
쿵-
마음이 내려앉는다. 같은 병실을 쓰고 있는 환자로 추정되는 남성의 목소리와 아빠의 "뭐!!?" 하는 정색을 끝으로 통화가 끊겼고, 그 후 아빠가 집중치료실로 옮겨졌다는 연락이 왔다. 집중치료실은, 비상시 바로 체크가 가능하게끔 간호스테이션 바로 앞에 위치한 병실이다. 이곳은 거동이 가능한 일반 환자보다 중증인 환자들이 치료받는 병실인데, 아빠로 인해 일반 환자들의 고통이 너무 컸고, 아빠 역시 일반 환자의 범주를 넘어선 상태이므로 오히려 우린 병실 이동을 반겼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집중치료실로 들어온 시점부터가 본 게임 아니었나 싶다. 일반 병실에서는 그나마 맑은 정신으로 있는 경우가 좀 있었지만 집중치료실은 대부분 급성 뇌출혈 등 거동이 불편하고 섬망 환자 등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나마 인지가 좋은 편이었던 아빠가 많이 불안해했으며, 입원당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정강이 쪽의 상처들이 입원 기간 내 점점 번져 통증이 심해졌기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거동할 수 있던 것도 불가해졌다. 그리하여 집중치료실로 옮겨지자마자 기저귀를 차게 되었는데, 엄청나게 수치스러워했고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더해져 공격성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병실이동후 만난 의사는 우리에게 다시금 퇴원이야기를 꺼냈다. 생각지도 못한 퇴원압박에 이게 맞는지 검색해 보니 말 그대로 아빠가 입원한 병원은 급성기 병원이기 때문에, 급성기가 지난 통원, 내복약 등으로 치료 가능한 환자들은 퇴원을 시켜야 다른 급성기 환자들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 2주 정도 되면 대부분 퇴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별 수없는 노릇이다. 퇴원은 언젠간 해야겠지만 하루하루 댐에 난 구멍 막듯 살아가고 있는 나로선 모든 게 막막했기에 의사에게 노랫말처럼, 책 제목처럼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죠? 선생님?"
"아무래도 자택으로 가시기엔 힘든 상태시고요.. 아무래도 요양병원을 알아보셔야겠죠. 섬망이 심하시니까, 되도록 신경정신과의가 있는 병원으로 가시는 게 좋겠네요."
생각지도 못한 전원이야기에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를 만큼 넋이 빠져버렸다.
또다시 미지의 세계가 나에게 손짓을 하는 듯싶다.
요양병원이라니.
아빠의 입원과 동시에 뇌질환/심혈관 카페에 가입해서 증상에 대해 하루에도 몇 번씩 질문하고 검색하고 했었으나 전원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안일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아빠의 섬망이 뿅! 하고 나아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쉽사리 놓지 못한 것도 있다. 따라서 오로지 증상과 예후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는데, 요양병원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이젠 카테고리가 달라졌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루종일 요양병원에 대한 정보만 검색하다 보니 치매 카페에 많은 정보가 포집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홀리듯 가입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구원자이자 친구가 될 썬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