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간호사를 때렸다.
그날의 바람과 날씨를 기억한다. 선선하고 건조한, 그래서 왠지 모르게 서글픈 바람이 부는 보랏빛 노을의 오후였다. 보랏빛 하늘을 뒤로하고 들어선 백화점은 따듯하고 행복해 보였고 노릇노릇 한 에그타르트 향기가 향기로웠다. 그래서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차가운 바람과 뜨거운 한숨이 뒤섞인 그런 날. 잊지 못할 오후.
점심을 먹고 소파에 누워서 고양이 모래를 사는데 서비스로 뭐가 딸려오네, 이걸 사야하네마네 따위의 메시지를 남편과 주고받던 오후. 병원에서도 입원 초반보다는 콜이 줄어들었고 일주일 뒤 퇴원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이제 별다른 수가 없다고 느껴서 전화를 안 하는 건지 병동을 옮겨서 안 하는 건지 어쨌든 하루 이틀은 매우 조용해서 요동치는 불안도 조금은 편해지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 정도 가서 아빠 상태만 체크하고 돌아오면 되는, 꿀 같은 휴식기였다. 그러나 병원에서 날라든 한 통의 전화를 받고서야 아, 이 조용함은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구나를 깨닫는다.
"보호자분!! 환자분께서 간호사를 때리셨어요. 지금 좀 와주세요!"
간호사를 때렸다고???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고 생각한 내 심정을 비웃는 듯 잠시의 휴식은 더 큰 고난을 버틸 힘을 비축하라는 신의 선물이었던 것 같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불안이 나를 익사시키려 넘실댄다. 아빠가 사람을 때렸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있다가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려고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잘못 걸었다, 던가 무언가 착오가 있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목소리가 다른 간호사가 전화를 받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맞은 간호사분은 많이 다치셨나요?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바로 가긴 할 건데, 걱정이 돼서요..."
말을 끝맽기 위해 물기가 가득 차올라 꺽꺽대는 목소리를 간신히 눌러 담는다.
"보호자님, 간호사 선생님 많이 안 다치셨고요, 심하게 안 때리셨어요 걱정 마세요. 다만 섬망이 너무 심하시네요."라는 말을 듣고도 어찌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며 거실을 20바퀴 정도 돌다가, 자꾸 왜 그러냐며 덩달아 거실을 돌던 엄마에게 짜증을 내곤, 퇴근 후 같이 면회 가자는 남편의 말도 무시한채 동네에 있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맨손으로 갈 자신이 없어서 뭐라도 들고 가야 할 것 같았다.
활동하는 카페에다가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간단한 먹을거리를 선물해 드려도 될까요?"라는 질문 융단폭격을 뿌려놓고 80프로 정도의 비율로 달린 '그렇게 하셔도 괜찮아요'이라는 댓글을 보고 그래. 먹을 거라도 사서 바치자. 하는 마음에 에그타르트를 세 박스 정도 사서 택시를 잡아타는 길에도 심장박동이 쿵쿵- 치솟는다.
보라색 하늘이 왜 이리 서글픈지. 손발을 벌벌 떨며 무서워하던 택시 안의 나는 얼마나 아팠는지.
그때의 마음이 나에게는 많이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었나 보다. 에그타르트와 보랏빛하늘이 1년이 지나 글을 쓰는 지금도 기억 한편에 서늘하게 전시되어 있으니 말이다.
터벅터벅.
저녁식사 시간이라 한창 분주한듯한 병동 간호 데스크에 얼굴을 들이미니 간호사들이 나를 보곤 자기들끼리 눈빛을 한참 교환하는게 보인다.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하고, 머리가 핑글핑글 돌지만 용기 내어 "혹시 저희 아버지에게 맞으신 간호사분 뵐 수 있을까요.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하고 물으니 마침 옆 병실에서 처치를 하고 나온 , 동그란 안경을 쓴 간호사가 나를 보고 "어! 보호자님이시구나!" 하며 밝게 인사를 하며 다가온다. 하... 나도 작은 편인데 이 간호사는 나보다 더 작다. 거기다 어려 보인다. 체구도 작고 여리해보이는 간호사가 "전화받고 놀라서 오셨구나~~~ 저 괜찮아요. 어르신이 놀라셔서 하신 몸짓에 제가 떠밀린 거예요! 걱정 마세요 안 다쳤어요" 하고 웃으며 오히려 나를 도닥거리는데, 시야가 점점 뿌예진다.
아빠. 나를 생각했다면 나 만한 딸 또래의 여자아이는 때릴 수 없는 거잖아. 저 가녀린 간호사를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때린 거야. 아빠는 힘도 세고 주먹도 바위같이 단단한데. 좀만 스쳐도 많이 아플 텐데..
아빠에 대한 절망감과 어린 간호사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나에 대한 서글픔이 뒤섞여 주책맞게 눈물이 흐른다.
"어어 보호자님 울지 마세요 저 진짜 괜찮아요!!"
"정말 너무 죄송하고 할 말이 없네요. 별거 아니지만 제발 받아주세요."
간호사의 손에 에그타르트 봉투를 건네며 눈치를 살핀다. 다행히 그녀는 선뜻 받아 간호데스크로 돌아갔고 그 뒷모습을 보는 내내 '설마 고소당하면 어떻게 하지' 불안함.'설마 이런 환자가 한둘이겠어'라는 몰염치,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어이없음이 뒤섞여 하나로 정의되지 못한 감정으로 한참을 서있다 휴게실로 향했다. 요 근래 나에게 맑은 마음, 감정이 있었을까 의문일만큼 모든 게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휴게실에서 남편이 올 시간만을 기다리며 앉아있으니 옆자리에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와 가족들이 눈에 뜨였는데 아빠와 비슷한 연세로 보이는 할아버지의 정신은 아주 또렷해 보였고, 무슨 이유로 입원하셨는지 모르겠으나 보행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엄마아빠 옆에서 종알대는 손주와, 손을 꼭 잡고 계신 할머니까지 복작복작한 가족구성원 사이에 앉아계시는 할아버지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본의 아니게 훔쳐보게 된 모습에 불쑥 튀어나온 또렷한 마음이 나를 놀라게 했다.
'부럽다..'
이런 마음을 들킬세라 창문을 노려보고 있자니 이내 창문마저 뿌예진다. 어디서 자꾸 눈물이 들어차는지 모를 노릇이다. 창문에 서린 김과 눈싸움 한판을 끝마치려는 그때 병원으로 퇴근한 남편이 내 어깨를 톡톡 친다.
8시쯤 되었을까. 원칙적으로는 이 시간에 면회가 불가하지만 우리는 예외였다. 우리가 오랫동안 병실에 머물러주는 것이 아빠의 상태에 도움이 될 거란 판단에서인지 간호 데스크에서도 별다른 터치는 없었기에 자유롭게 면회가 가능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최소시간의 면회만 했으므로 나머지 시간은 죄책감으로 치환될 뿐이다.
아빠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남편이 한껏 낮춘 자세로 인사를 하지만, 눈길이 심상찮다.
아빠의 눈이 희번덕거릴 땐 뭔가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징조다. 우리 둘을 앉혀놓더니 별안간 1인실을 예약해 달라며 성화다. 그러면서 ‘내 병실 전용 cctv를 달아줘라' '의료전문 기자를 불러 나를 인터뷰시켜라'
라며 한참을 뜻 모를 말을 하더니 마지막엔 퇴원 후 허영만이 나온 백반 기행을 떠날 거라며 준비를 해놓으라 엄포를 놓는다.
"아빠 혼자 가시게?"
"그래 나 혼자 떠날 테니 아무 말하지 마라"
속 편한 소리하네 싶어 화가 치밀어서 뭐라 쏴 붙일 준비를 하는데 남편이 내 어깨를 누르더니
"그래요 아버님 퇴원하시면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라고 아빠를 달랜다.
결혼 후 아빠담당은 늘 나였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싸우는 걸 반복하다 아빠랑 싸우는 게 부끄러워질 나이가 되자 내 화를 삭이고 아빠를 달래는 법을 익혀 나름 평온하게 살아왔고 그것에 꽤나 자부심이 있었다. '아빠 같은 성질 더러운 노인을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라는 둥의.
또한 아빠에게 필사적으로 집착적으로 '효'를 행했던 건 그의 이기적이고 뻔뻔한 요구 사항. 분노 등이 남편에게 번지지 않게 하려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허덕이며 4년간을 집중 마크하면서 살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자리를 내줄 거였으면 좀 편하게 살아도 될걸 그랬구나. 싶다 여하튼 아빠의 컨트롤 담당은 이제 나에게서 남편에게로 자연스레 일임되었다. 그러나 나의 자격은 부서이동(?) 그치지 않고, 부적격 판정까지 받게 되었는데 (남편 왈) 아빠를 동네 할아버지보다 더 매몰차고 차갑게 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인정하는 바다. 나는 아빠를 보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차라리 동네 할아버지였으면 이렇게까지 짜증스럽진 않을 것이다. 평생을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살며 20대 초반부터 그렇게 응급실 수발을 시키더니 이제는 사위까지 패키지로 묶어 행패를 부리니 애처로움을 훨씬 뛰어넘는 증오가 치받쳐 올랐고 그걸 누르는 데만으로도 에너지소비가 커서 다정함과 너그러움과는 일찍이 작별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남편의 달래기 스킬로 한층 온화해진 분위기를 틈타 간호사는 왜 때렸냐. 물어보니 "내가 언제 때렸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하며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아빠. 잡아떼시는 건지 기억을 못 하시는 건지 모를 일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아빠는 간호사를 무시하고 하대할지언정 고의로 때리지는 않을 사람이라, 그래. 간호사말대로 악의 없이 밀친 걸 꺼야. 그리곤 기억을 못 하시는 걸 거야.로 결론짓고 그날의 소동은 마무리되었다.
간호사 폭행사건이 있은 후 “귀가 잘 안 들림 “ “수분 제한” 옆에 “액팅 아웃 환자”라는 상태 표시 문구가 갱신됐다. 1주에 한 번씩 획득하는 MVP 타이틀 같은 건가.
액팅아웃이 뭔지 검색해 보니
'액팅아웃'
ㄴ정신분석에서 유래한 용어로, 환자들의 충동적인 폭력행위 등을 말하는 거라고 한다.
말 그대로 '행위화'라는 개념을 지녔는데 환자 자신의 불안함과 분노등이 무의식적으로 격발 되는 일종의 방어기제 중 하나라고 한다. 아빠는 이제 공식적으로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그사이 나는 병원의 전담부서로부터 요양병원 연계를 안내받았고 소견서 상태를 확인 후 귀원에 입원시키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요양병원이 나에게 전화를 하면 그곳에 들러 사전답사를 하는 방식으로 퇴원일정을 잡아나갔다.
일주일 남은 퇴원. 뭐 하나 정해진 것도 , 나아진 것도 없기에 롤러코스터 정상으로 향하는 듯 불안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살아나가야 함에 마음을 다잡아 본다. 다시 처박히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