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북 Apr 13. 2023

지옥 끝에서 구세주를 만나다.

폭력적인 치매 환자를 케어해 주는 요양병원을 찾는 법



"요즘 사이비가 극성이라던데 조심해라"



엄마와 남편, 주변인까지 입을 모아 걱정 어린 염려를 전달했다. 이유는, 내가 치매 카페에서 만나 연락하기 시작한 동갑내기 썬이라는 친구 때문이었다. 2월 말 즈음, 대구에서 특정 종교단체 코로나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그들의 전도 수법이 "심리 상담"이라던가 "공통점을 찾아 친해지려는 것"등이라고 뉴스에서 한참 방송되었을 때라, 가족들 입장에선 꽤나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만난 계기에는 꽤 그럴듯한 히스토리가 있다.





요양병원 입소과정등 관련내용을 검색하며 큰 난관에 부딪혔는데 바로 아빠의 폭력성이었다. 아빠는 키가 170 후반대, 몸무게는 80kg가 넘어가는, 널찍한 흉곽과 팔통 다리통 하나하나가 통나무 같은 몽골전사 st였고, 젊은 시절부터 꾸준한 단련한 체력과 완력까지 나이에 비해 탑클래스의 피지컬을 지녔다. 이 사실은 웬만한 간호조무사, 간병인으로는 컨트롤이 힘든 환자라는 암담한 결론에 도달한다.

신경정신과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가야한 다는 소견은 결국, 향정신성 약물 투여를 당연한 전제로 깔아 두고 하는 말이었는데 아빠가 난동 부릴 때마다 제발 진정제라도 놔주세요!! 하며 울부짖고 싶었으나, 막상 요양병원을 고를라니 최대한 약물 없이 아빠를 잘 달래 가며 봐줄 곳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아빠의 소견서를 요양병원으로 전송했다는 연락을 받은 그날은 정좌불능모드였다. 괜스레 긴장되고 걱정되는 마음과 어떤 희망과 작은 기대감이 섞여 각성상태였다고나 할까. 전화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고 개인적으로 요양병원투어를 해볼까 하여 전원담당 부서에 소견서를 몇 장 요청해 받아 들곤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10분남짓으로 무척 가까운, 5층 건물을 통으로 사용하며 심평원 1등급 평가 인증 현수막을 대문짝만 하게 걸어둔 요양병원이 번뜩 떠올랐기 때문에. 이때까지만 해도 큰 애로사항은 입원비 정도일까 싶은 마음이었다. 버스정류장 근처라 오며 가며 수없이 봐왔던 곳이라 진입장벽이 낮게 느껴지도 했고.


그렇게 가벼운 맘으로 털레털레 들어선 요양병원, 직원들의 표정도 밝아 보여서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커피 한잔을 건네받고 담당실장과 상담을 시작한 면접실 안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상황 설명을 할수록 점점 경직되어 갔다. 고령, 공격성. 섬망. 심부전. 뇌졸중과 심근경색 이력. 현재 강심제와 이뇨제를 쓰고 어쩌고 저쩌고.. 아빠의 병력 설명을 하다 폭력, 고함 부분을 이야기해야 할 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 어깨를 피고 자세를 다시 잡아야 했다. 이것저것 적어 내려 가던 볼펜을 잠시 멈추곤 까닥이던 담당실장은 아무래도 일반 병실보다는 집중치료실에 계셔야 할 환자분인 거 같다, 진단 내렸고 이제 어느 병원에서나 아빠는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특이 환자구나 싶어 쓸쓸해졌다. 썩 좋지 않은 기분으로 들어선 집중치료실의 모습은 현재 입원해 있는 병원과는 달라 당황스러웠는데 큰 스테이션이 하나의 병실로 많은 수의 병상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그 사이를 두어 명 남짓한 간병사가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입구까지. 주욱 훑어 내는 시선의 마지막 장소는 폭력성과 공격성이 있는 환자의 독방이었는데 방이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한 공간. 칸막이로 시선이 차단되어 무인도처럼 뚝 떨어져 위치해 있던 이질적인 공간에 젊은 아저씨 한분이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는 표정. 압도적 공허함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조금 놀란 표정으로 실장을 바라보니 폭력성이 너무 심해 곧 남자 환자들만 모여있는 치매 정신병원으로 전원 될 거라고 한다. 이런 환자들만 모아놓는 병원이라면, 난리도 아니겠구나, 싶어 생각만 해도 한숨을 푹 내뱉고 있으니 실장이 묻는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쪽으로 입원을 하시는 것도 방법인데, 연락처나 명함을 드릴까요?"


기분이 무척 이상하다.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기분이 나빴다. 이곳에 모시면 저 아저씨가 나간 빈자리에 우리 아빠가 들어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목덜미 부근이 스멀거린다. 


내가 딱히 대답이 없자 한층 아래인 일반실도 보여주겠다며 안내를 해줘서 따라가니 이번에는 여러 개의 침대가 테트리스 하듯이 붙여져 있는 작고 좁은 병실로 이루어진 병동에 도착했다. 그리곤 병실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깡마른 외국인 간병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대형 병원처럼 한국인 간호사나 조무사가 케어를 해줄 거란 나의 생각은 철없는 저세상 바람이었구나를 깨달았고 머릿속 어딘가에서 실금이 쫙하고- 가는 소리가 들린 거 같다.'아빠만 요양병원에 입원하면 만사 오케이' 이런 식으로 하찮게 품은 기대마저 죄다 하나씩 어긋나가고 있어 심기가 점점 불편해졌는데, 당장 이곳에서 나가고만 싶었다. 어지러웠다.


'이곳은 작은 지옥이 아닐까?'


저들의 가족들도 어쩔 수 없었음을 알면서도, 이런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편협함에 어지러움을 느끼며 돌아서는데 나를 쳐다보는 여러 개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짧게 미용된 머리 덕에 남녀를 구분하기 힘든, 마르고 조그마한 노인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모두 비슷한 모양새. 그들의 까만 눈동자엔 내가 있었지만 또한 내가 없었다.


'무섭고 싫어'


본능적인 거부감에 소름이 오소소 올라온다. 지옥의 문턱 너머를 훔쳐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내 욱신욱신한 통증이 느껴진다. 누군가가 내 심장을 꽉 쥐었다가 풀었다가 하는 것 같았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떫은 이물감의 정체는 아마 긴장을 풀면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눈물이리라.





요양병원에 대한 첫 이미지는

'생각보다'

외가 친가 조부모 모두 집이나 대형병원에서 임종을 하셨기에 요양병원의 이미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급성기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꽤 긍정적인 성격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머리통 속에 꽃밭이 그득한 사람이다. 무인도에 표류하면 이쁜 돌이나 줍고 다니다 굶어 죽을 거라는 심리 상담이 딱 맞는 인간이라 요양병원이 어떤 곳일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좋지 않다'

말 그대로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심지어 그 좋지 않다 생각한 요양병원에서도 아빠를 기피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썅. 집에서 아빠 모실 자신이 없어서 요양병원부터 알아보는 주제에. 뭐가 그리 신났다고 제 발로 이곳을 찾아왔을까? 스스로에게 짜증이 솟구쳐 머릿속의 꽃밭을 다 지분지분 밟아 으깨는 기분으로 입술을 깍 깨물었다. 이 딴 게 다 뭐야. 뭐냐고. 꽃밭을 모조리 다 짓이겨버리고 나니, 질척하게 흐르는 진물 사이로 향기가 한참 맴돌았는데, 그건 바로 병원의 방향제 냄새였다.


'요양병원을 고를 때 소변 냄새가 많이 나는 곳은 기피하세요.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않거나, 오물 쓰레기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곳이에요'


라는 글을 읽어서 그런지 들어가기 전부터 내 코는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고 그런 내 코를 들쑤셔놓은 건 건물을 가득 메운 지독한 방향제 냄새였다. 이 냄새는 병원을 나왔을 때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는데 그것은 마치 죄책감, 그리고 책임감의 무게 같이 몇 번을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어도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살갗에, 손톱에 남아 며칠 동안 숨 막히게 날 괴롭혔다.





우리 만날래요?



그렇게 요양병원 방문을 끝마치고 첫 성과가 절망과 슬픔으로 귀결되자 병원에서 정리해 준 요양병원에 의존만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는데, 넋 놓고 있으면 어딘가의 격리실에 아빠를 가둬놓게 될 것 같아서 나름대로 정보검색을 하다 치매카페에 가입까지 하게 돼버렸다. 그곳에는 나같이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의 부모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았다. 마치 지옥도에 표현된 그림처럼 어딘가로부터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손을 뻗고 있음이 글들에서 느껴졌고 그래서 보는 내내 좌절감만 느껴졌다. 답이 없구나 싶어서다. 나처럼 홀로 혹은 가족들과 죽을 둥 살 둥 견뎌내고 있었고 불안과 절망의 파도에 빠져, 외침에 응하지 않는 구조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마치 표류자 같은 모양새였다.


치매가족으로 인한 여러 가지 사건사고와 기함을 금치 못할 전국의 특이 케이스를 죄다 모아둔 것 같은데도 뚜렷한 대안이 없어 보임에 '아.. 그저 이렇게 영원히 고통받는 수밖에 없는 거구나' 하며 우울함 가득한 기분으로 카페창을 닫으려던 중 찾게 된  "폭력적인 치매 환자를 케어해 주는 요양병원을 찾는 법"이란 글은 정말 가뭄의 단비 같은 발견이었고 그 글의 작성자는 위에 언급한 -썬-이라는 친구였다. 


꼼꼼하고 정확도 있게 정리된 기준과 경험이 적절히 섞인 정보로 구성된 글을 읽고 나니 , 첫 요양병원방문기로 터져있던 내 멘탈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방향성이 잡혔다.  또한 글 서두에 적힌 키워드가 '고령, 남성, 공격성, 폭력성'으로 현 상황과 일치했기에 그녀의 게시글을 모두 읽고 난 후 나는 고뇌에 빠지게 되었다. 인생모토가 개조심보다 사람조심인 낯가림 심하고 경계심 강한 성격이건만, 자꾸 지금 당장 그녀에게 1:1 채팅을 걸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고 공감과 조언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밀려왔기 때문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모니터 앞에서 마우스를 눌렀다 뗐다를 반복하다가 '치매가 사랑병이라네요'라는 제목의 첫 게시물까지 읽고 나서, '그래. 해보자'  머금은 불안을 꿀떡 삼켜 넘기곤 1:1 채팅하기를 눌러 "도와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 근무 중이라서 챗을 하지 못해요. 제가 연락처를 하나 드릴 테니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썬은 선뜻 연락처를 넘겨줬지만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연락해도 될까? 또 홍 씨 아저씨 때처럼 좌절만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러나 다행히 그것은 기우였고, 반갑다.라고 표현하면 안 되겠지만 그녀는 나와 너무나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어쩌면 조금 더 억울할지도 모른다. 결혼 2년 차부터 90살의 치매 시아버지를 모시게 돼버린 30대 초반의 며느리. 나와 동갑내기였다. 짧은 통화를 끝마치고 썬은 사회 복지사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달라는 말과 함께 본인이 모은 '공격성이 있고 폭력적인 환자'를 수용해 줄 만한 병원을 정리한 엑셀파일을 보내주었으며 그녀가 넘겨준 소중한 파일은 남편이 심평원 등급 기준 순, 위치 순으로 따로 정리한 엑셀파일과 병원 연계로 연결된 리스트와 취합되어 아빠 퇴원 날 전까지 다녀와야 할 우리의 숙제가 되었다. 썬의 등장으로 착착 정리되고 가야 할 길이 보임에 약간의 용기가 퐁-하고 생기는 기분. 그 용기는 카톡 리스트에 새로 갱신된 썬의 이름을 눌러"우리 만날까요?" 하는 소개팅 앱에서나 할법한 대사를 칠 수 있게 해 주었고 썬 역시 기다렸다는 듯 "좋아요!"라고 대답해 주어 나이 서른넷 먹고 처음으로 번개란걸 해보게 되었다. 죽고 싶은 딸과 죽고 싶은 며느리가 만나게 되었으니, 장소와 날짜는 순식간에 잡혔다. 너무나 외롭고 힘든 사투 중에 만난 전우였고 그녀가 가진 정보는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이비 아니냐는 가족들의 걱정도 흘려 넘길 신념의 근거는 나름의 이유로 확고했다.


와.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니!!! 얘는 심지어 시아버지래!! 이 정도 시나리오를 구상할 수 있다면 설사 사이비라도 괜찮아.라는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는데 그만큼 난 갈증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나보다 더, 혹은 나만큼은 힘든 사람을 만나서 이 거지 같은 현실을 마구잡이로 털어내고 싶었다. 친구들의 따듯한 위로와 조언도 전혀 흡수되지 않았다. 그들의 경험이래 봤자 멀게는 사돈의 팔촌, 가까워봤자 조부모선에서 끝났고, 우리 아빠 같은 케이스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었다. 대화를 할수록  '아무리 그래도 넌 먼 친척이잖아. 나는 아빠라고..' 하는 못내 하지 못한, 구질 거리고 못생긴 징징댐이 뒷맛 씁쓸하게 남았기 때문에 친구들에겐 이런 이야기를 되도록 꺼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지난했던 시간들을 보낸 나에게, 동갑내기 전우인 썬의 등장은 자체로 마치 지옥 끝에서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 회상해 보면 그녀를 만나기 전날 밤은, 10여 년 전 남편과의 소개팅 전날보다 더욱 두근대는 새벽이었던 것 같다. 잠도 좀 설쳤고 말이다.












이 글에서 표현된 요양병원은 지극히 제 '기대'에 부합하지 않았을 뿐이지, 시설적으로 불법이거나, 열악한 환경이 아니었음을 덧붙입니다.  모든 요양병원이 이런 것은 아니며, 제가 방문한 요양병원도 등급 기준을 준수한 괜찮은 곳이었습니다. 다만 요양병원이라는 병원 자체를 접해보지 못한 무지한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방문하여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우리나라 치매노인들의 현실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고 고통스러워 가감 없이 표현했음을 알립니다.

이 글의 목적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제 감정을 '기록'함이므로, 그때의 감정, 기분을 솔직하게 적기 위해 다소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편하시면 그냥 지나치시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액팅 아웃 환자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