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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Apr 17. 2023

내 딸, 밥은 먹었냐?

'밥은 먹었냐?'라는 말은 그만큼 나에게 의미가 크다.



유-소-청년기를 아빠와 복닥거리며 살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후 공간 분리는 되었으나 감정분리는 하루아침에 딱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특히 우리 같은 부녀에겐. 그리하여 아침에 일어나 한번 점심 먹고 한번 저녁 운동 가며 한번 이런 식으로 많게는 하루에 서너 번도 넘게 안부전화를 해대는 내 모습을 두고 주변에서는 '효녀다, 착하다' 칭찬했지만 그렇게 때맞춰 전화하지 않으면 '너는 나한테 관심이 없냐'라고 홱 토라져서 며칠은 가는 아빠의 뒤끝때문에 본능적으로 몸에 밴 습관일 뿐이지, 시차 6시간의 해외에서도 놓여날 수 없는 아빠와의 통화는 효도 라기보단 분리되어야 할 감정이 질척하게 눌어붙은 족쇄와 같은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강제되어 답답한 것뿐이지, 통화 자체는 싫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매번 전화를 받자마자"우리 딸 밥은 먹었냐?"라고 물어봐 주는 아빠의 목소리가 항상 다정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얼 하고 무얼 먹었는지 궁금해하는 건 우리 아빠뿐이라는 사실은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말 나온 김에 다정하고 배려심 넘치는 우리 남편도 내가 오늘 점심 뭘 먹었는지는 단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더라-고 소심한 폭로도 해본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매일매일 나에게 밥은 먹었는지, 운동은 다녀왔는지 물어봐 줬던 이유는 아빠에게도 누군가 그렇게 물어봐 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의 발현은 아닌가 싶다.

글을 집필하는 이 시점에선 나에게 더 이상 "밥은 먹었냐-"라고 물어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게 사무치는 외로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데 그래서일까, 아빠도 나와 같다면 그의 기저에도 오래된 외로움이 깔려있었던 것은 아닌가.싶어 입맛이 씁쓸해질 때가 있다.


여튼지 '밥은 먹었냐?'라는 말은 그만큼 나에게 의미가 크다. 평범한 일상의 필수 요소 같은 존재고 상징이었다.




"아버님 삼일뒤 이천 병원에 모시기로 했어"

우리 뒤를 이어 ㄱ병원에 방문하여 상담을 마친 썬이 입원결정을 전했다.우리와는 달리 상담직원도 친절했는지 금액대와 입원환경까지 맘에 든다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꽤 밝았다. 썬의 시아버지 입소날이 아빠의 퇴원 전날이기에 무혈입성에 성공한다면 우리에게도 가능성이 있다. 썬의 승전보가 들리면 나도 이곳으로 모셔야지. 싶어 내내 갈피를 못잡았던 마음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물론 아빠입장에선 다가올 미래에 요양병원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집중치료실에 온 이후 잊을만하면 당장 집으로 가겠다며 소동을 일으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본인이 퇴원하면 무조건 집으로 가게 될 것임을 확신하는 아빠와 요양병원으로 보낼 생각에 맘이 편해진 나. 우리 부녀는 동상이몽 속에서 소박한 희망을 품고 있었으나 뭐 하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변수의 일상 속에서 '아빠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는 해결되지 못한 나만의 난제였다. 다만 아빠의 몸상태가 공격적인 치료에도 그다지 좋아지는 게 없고 정강이의 상처도 자꾸 덧나가고 있으니 자택으로 가지 말고 꼭 요양병원으로 모시라는 의사의 말은 나에겐 -어떻게든 보낼 수 있겠지 뭐-라는 행복회로를 돌릴 구실이 되었고 남편에겐 결연한 의지-안되면 힘으로라도-를 불태우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와... 아버님 힘이 너무 쎄





퇴원 삼일 전의 저녁 면회시간. 요양병원으로 모실 생각을 품고 아빠를 마주하자니 지레 밀려오는 죄책감에 부드럽게 대해줘야지. 짜증 내지 말아야지 하며 단단히 마음을 먹고 병실로 들어선다.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던 아빠가 인기척을 느끼곤 우리를 쳐다본다.오늘따라 눈빛이 유난히 촉촉하네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곧이어 들썩이는 아빠의 입술 사이로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 흘러나왔을 때 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병실을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다.



"내 딸 밥은 먹었냐?"

"미안하다.. 미안해"

아빠다.

저 모습은 내가 그리던 아빠다..


이제 익숙해져 버린 낯선 대머리신사(눈이 희번덕한)가 아닌 조금은 잘 삐지고 예민하지만 그래도 나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내가 사랑하던 아빠가 저기에 앉아있다. 어쩌면 병원에 입원한 이후 내내 그리워했던 모습일 텐데도 너무 생경하게 느껴짐에 병원복도에서 숨죽여 흐느껴야했다.

눈물에서 그런 쓴맛이 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마음속 천불에 불꽃이 피어올라 온몸에 진득진득하게 엉겨 굳어진 슬픔이 녹아내리는 듯이.

그것들이 휘발되어 풍겨대는 연기가 내 눈과 코를 타고 올라와 숨 막히게 맵고 따가워 눈물이 났다.

슬프고 안타깝고 이런 감정보다는 그냥 이 모든 상황이 다 개같고 짜증 나서 눈물이 났다.

요양병원으로 모실 결정을 한 지금, 저렇게 제정신으로 돌아와 버리면 한순간에 바스러져버리는 내 마음은 어찌하나. 집에 모시고 가서 다시 예전처럼 평범한 일상을 꿈꿔봐도 될까? 하는 희망이 생겨나고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욕심이란 것도 알지만. 씨발.. 난 그런 욕심도 부리면 안돼?

그런 모순된 감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저 애달픈 노인을 요양병원으로 입원시켜야겠다는

내 이기심이.

신에게 한 번 더 쌍뻐큐를 먹이고 싶을 만큼 거대해진 분노가.

뭉치고 뭉쳐 기어코 눈물샘을 꽉 틀어막아버린 게 아닐까. 얄궂을 만큼 야박한 양의 눈물이 살갗을 따갑게 가르며 찔끔찔끔 흘러나왔다.





닦을 것도 없이 그대로 눌어붙어 버린 눈물자국을 대충 소매로 문지르곤 다시 돌어가니 커튼이 쳐진 병상 안에서 시뻘게진 얼굴의 남편이 헉헉대며 나온다. 간호조무사 한 분이 기저귀를 교체하려고 들어왔으나 아빠의 거대한 몸을 어찌하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기에 남편까지 합세하여 한 명은 다리를 들고 한 명은 엉덩이를 드는 식으로 한참을 끙끙대며 겨우 성공했다고 한다.


주차된 차 안에서 상황 설명을 해주던 남편이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와... 아버님 힘 겁나 쎄다. 너무너무 쎄.. 강제입원 어떻게 시키냐 이거"


패륜적 내용을 한껏 상기되어 말하는 남편의 표정이 너무 웃겨서 결국 나는 푸훕! 하고는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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