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AA급의 문제환자가 갈수 있는 요양병원이란?
일요일은 일주일 중 남편이 딱 하루 쉬는 소중한 날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일요일마다 곳곳으로 돌아다니며 맛집 탐방을 하는 게 소확행이었으나 이젠 요양병원으로 그 카테고리가 달라졌다. 썬이 정리해 준 엑셀파일 안에서도 긴급 시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위치의 요양병원이 1차 검토 리스트에 올랐고 경로순대로 두어 곳을 정리하여 들러보기로 했다.
와중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빠의 상태는 날로 나빠지고 있었다. 어느 날은 우리를 부르라며 밤새 고성을 지르고 있다고 하여 쫓아가보니 잠이 든 건지 아닌지도 모를 모양새로 눈을 감고 일정한 템포로 "나와라!! 나와라!!"를 주문처럼 내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첫날 병동 격리실에서 아-아-하고 소리 지르고 있던 섬망 할머니와 똑같은 모양새인지라 이젠 아빠도 빼박 섬망환자의 모습이 되었구나 싶었다. 탄탄했던 팔은 근육과 지방이 쪽 빠져 쪼글거리는 피부 위로 혈관이 툭툭 불거져 나왔고, 두꺼운 바늘이 꽂혀있었던 흔적으로 호피무늬 같은 피멍자국이 즐비하다. 그러나 더 이상 마음이 무너진다거나 찢어진다거나 하는 느낌도 없다. 애초에 무너질 만큼 쌓여있는 것이 없으니. 간호사들도 우리에게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걸 느꼈는지 "어떻게 좀 해보세요" 보다는"저희가 알아서 해볼게요"라는 태도로 바뀌었고 이날 역시 "어르신 상태 보고, 정 못 주무시는 거 같으면 수면제 미량 투약할게요. 걱정 마세요"라며 도리어 우릴 위로하는 단계까지 왔으니 어느 지점에서 서로 무언가를 포기한 상태였던 거 같다. 또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막막함에 한계치까지 올라왔던 불안한 마음은 퇴원이 예정되는 순간 오히려 편해졌고 병원의 호출도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었으니 요양병원을 물색하러 다니기엔 딱 좋은 시기였다.
리스트를 받아 열심히 서치 해본 결과 요양병원은 도시형과 지방형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았는데 우리가 원하는 깔끔하고 쾌적한 시설의 도시형 요양병원은 애초에 우리가 넘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방형 요양병원은 위치 때문인지 사이즈와 뷰가 괜찮은 병실들도 종종 보였고 , 입소기준도 도시형에 비해 널널한 편이였다. 그렇게 기준한 첫 번째 병원은 경기도 이천시의 ㄱ요양병원으로 딱 봐도 중형종합병원급은 돼 보이는 거대한 사이즈를 자랑하는 곳이었고 진입하는 도로에서부터 탁 트인 뷰와 고즈넉한 분위기까지 감돌고 있어 지옥 같던 첫 요양병원 방문의 트라우마가 상쇄되는 기분이었다. 다만 전날 방문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 우리가 담당자를 찾으니 출근을 안 했다는 당황스러운 답변에 잠시 싸함을 느꼈으나.. 시설 투어를 하며 쾌적한 병원시설에 마음이 좀 누그러들었다. 해가 잘 들어 포근해 보였고 열린 병실 틈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이불들의 모습은 병원보다는 요양원, 혹은 경로당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와 여기는 다른데?? 괜찮은데??" 수선을 떨며 남편 옆구리를 쿡 찌르자 남편 역시 아빠가 입원해 있는 병원과 별반 다를 점 없는 시설에 맘에 든 눈치였다. 층층마다 한 바퀴씩 돌아보고 난 후 모든 요양시설이 좁고 빼곡한 것은 아니구나. 다행이다 싶어 썬에게 보고를 했고 "나도 가볼래!!" 하며 기다렸다는 듯 답장이 왔다.
그 후로 방문한 ㄴ 요양병원은 차로 10분 안팎이라 겸사겸사 들러보기로 한 곳인데 '폭력적인 남자환자'라는 키워드에도 선뜻 방문을 권하였으며, 상담 시에도 친절하고 적극적이었다. 그 점이 앞서 방문한 ㄱ요양병원과 차이가 있었다. 두어 단계의 보안장치를 통과하여 들어선 병동은 부드러운 건물외관과는 다르게 긴장된 기류가 채우고 있었는데 딱 봐도 알코올 중독이나 폭력성 치매 등을 앓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남자 환자들이 많아 보였다. 들어서며 보았던 2중-3중으로 된 병동의 안전장치가 납득이 갔다. 심지어 키카드 없이는 엘리베이터도 작동하지 않는단다.
"어 근데 아까 들렀던 요양병원은 이런 장치 없었잖아?"
"그러게.. 거긴 외부인도 내부인도 그냥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던 거 같던데.."
"우리 아빠 탈출해서 택시 타고 집에 가버리면 어쩜?"
"그러게.."
두 병원엔 장점도 뚜렷하지만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애매모호한 단점들도 하나씩 있었는데
ㄱ병원의 경우 허술한 '보안'그리고 데스크 직원들의 '심드렁한 태도'였다.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병동에 이르기까지 보안관련한 어떤 장치도 볼 수 없었고, 병실투어를 우리끼리 하라고 올려 보낸 직원의 태도도 맘에 걸렸다. 이 '심드렁한 태도'가 왜 평가 기준에 포함되냐면 부모가 너무 버거워 요양기관에 맡겨야 하는 시점이 올 땐 결국 그곳이 자식들의 최후의 보루가 된다. 그 막다른 지점에서 직원들이 노인들을 대하는 태도는 보호자로서 가장 먼저 체감될 온도가 될 것이고 그래서 내 부모를 단순 병상을 채워줄 환자가 아니라 조금은 짠하게 봐줄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솔직히 개털 뽑는 헛소리라는 걸 안다.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문제 많은) 남의 부모를 애틋하게 봐줄 의무는 없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 앞에서 그런 '척'이라도 해주는 병원과 아닌 병원은 분명 노인들을 대할 때 태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뉴스에 나오는 여러 가지 사건사고들을 보며 최소한의 위험요소만이라도 배제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노파심에 첨언하자면 이기적인 평가 기준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 기준에 부합하는 곳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따라오는 피로함도 감수했으니 아마 모든 자식들은 이러지 않을까 싶다. 여튼 ㄱ병원은 이렇고 ㄴ병원의 단점은 아빠와 같은 성향의 환자들이 많다 보니 아빠에게나 기존 환자들에게나 위험도가 너무 높아 보였다. 입원시켜 놓고도 환자들이랑 싸우는 건 아닐까 매일 전전긍긍할게 뻔했다.
각 병원들의 일장일단이 너무 뚜렷한 고로 선택을 보류한 채 아쉬운 마음이 들어 썬이 정리해 준 리스트에서 한 곳을 더 뽑아 방문하기로 했다. 그곳은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정신병원산하 치매 병원이 같이 운영되는 ㄷ이라는 곳이었다. 일반적인 환자가 많은 병원은 항상 상담양상이 비슷하게 흘러가는 편인데 초반엔 밝게 시작하나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잿빛으로 변하는 상담실장의 낯빛이 그러하다. 그걸 감수하고도 이쪽으로 발길을 옮긴 까닭은 정신병원으로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에 향정신성 약물에 대해 좀 더 섬세하게 처방을 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 기준으로도 우리 아빠는 특 AA급의 문제 환자였고 이 경우엔 통합간병을 사용할 수 없고 1인실+1인 간병인이 무조건 붙어야 입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간병인에 대해 물어보니 1인 간병은 1일당 10만 원 잡고 병원비와는 별도로 간병비만 한 달에 300만원정도가 지출될 거고 대부분 외국인 간병사라서 수틀리면 그날 저녁 바로 짐 싸가지고 탈주할 수도 있으니 24시간 간병 대기를 해야 하는 가족들이 무조건 있어야만 한다-는 답변에 우린 짜게 식어 나와야 했다.
경기도 일대를 휘젓고 집으로 출발할 시간 즈음이 되니 벌써 하늘이 어둑하다. 세 곳의 병원을 둘러보고 나니 기운이 쭉 빠졌으나 퇴원이 4일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 크게 와닿는 병원이 없다는 게 더 문제였다. 돌아가는 차 안. 문득 동네번화가에 새로 지어져 큼지막한 간판을 올리던 요양병원이 생각나 별 기대 없이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상담직원의 밝고 까랑한 목소리에 남은 힘을 쥐어짜 네 번째의 병원으로 향했다. 신축 건물의 상부층 4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는 곳으로 깔끔한 외관과는 달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진동하는 지린내 때문에 어떤 정신으로 상담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빠르게 도망 나왔고 그렇게 요양병원 모험기는 끝이 났다.
남편과 회의를 거듭한 결과 압도적으로 더 좋은 곳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천시의 ㄱ병원이 괜찮을 것 같다-는 결론이 지어졌다. 그러나 우리에겐 요양병원 선택만큼 중요하고 커다란 과제가 있었으니 바로 아빠를 어떻게 입원시키느냐? 였다. 퇴원하면 곧장 집으로 가는 줄 알고 있을 것이고 요양병원이란 단어를 꺼내는 순간 아빠는 모든 것을 개박살 낼 것이다. 그것은 썬의 시아버지 케이스가 확실하게 보여줬으므로 예정된 수순임이 분명했는데 힘들게 보낸 요양원에서 강퇴당한 후 거부의사가 더욱 과격해졌다고 했다. 이 문제로 썬도 나도 골머리를 앓게 되었고 도무지 30대 초반 여성들의 대화내용이라고 하기엔 살벌한 내용들이 카톡으로 오가고 있었다.
병원 공문을 위조해서 설득시켜 보자. 안되면 사설 119를 불러서라도 강제 입원을 시켜야 되지 않을까. 근데 그거 불법일 수도 있다는데. 불법이면 경찰 대동하에 보호입원이 가능한 건가.. 등등..
말이 길어질수록 우린 지쳐갔고
"힘내자.."
"그래 파이팅.. ㅠㅠ"
라는 둥의 비실비실한 응원을 하다 대화가 끝났고, 소확불(소소하지만 확실한 불행)의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