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혀진 커튼 속 아빠의 모습은 마치 신생아와 같은 모습이었다.
오늘 낮 수간호사의 답변-아버님 같은 환자는 본 적이 없어요-이 적잖은 충격이었나 보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곯아떨어져버린 내 기분은 일어나서도 회복이 되지 않았고 저녁면회 대신 외식을 선택했다. 그래서 우리는 드라이브도 할 겸 차로 30분 거리의 근교로 가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려는 때 남편의 전화가 울린다. 당연하게도 아빠다. 저 멀리서 통화를 하며 한참을 실랑이하고 있는 모습이 아무래도 요양병원 이야기인듯싶다. 남편은 삼 일 전부터 요양병원에 대한 떡밥을 살짝살짝 뿌리고 있었는데 흐릿한 인지 속에서도 아빠의 거부의사는 완고했다. 대부분의 대화는 남편의 의견 -개묵살- 본인의 의견 -강한 피력-. 그러니까 아빠 할 말만 하다가 끝난다는 것이다. 내내 말을 씹힌 남편이 오늘은 조금 신경질이 났는지 살짝 언성을 높이다 통화가 끝났다.
"아빠가 뭐라는데?
"늘 똑같지 뭐, 오는 길에 빵을 사 오라고 하시길래 안된다고 했더니 불같이 화를 내시더라고. 그러더니 갑자기 요양병원이야기를 꺼내시더니 죽어도 안 간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끊으셨어"
"어 그래..."
늘 다정하고 고분고분하던 사위. 그 사위만큼은 자기편이라고 생각했었을 텐데 해달라는 건 안 해주고 자꾸만 요양병원 어쩌고 하는 것이 노여웠는지 오늘의 아빠는 '분노모드'다. 억지로 끌고 가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요양병원도 그리 시설이 나쁘진 않더라고요' 슬쩍 운을 떠본 정도로 이런 반응이라면 앞길이 그리 밝진 않겠구먼. 핼쑥해진 표정으로 차 시동을 거는데 또다시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야 이!!!!!!!!! 씨발놈아!!!!!!!!!!!!!"
-뚝-
아빠가 내 남편에게 공식적으로 뱉은 첫 번째 욕설이었다.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바로 끊겨버린 전화. 황당함에 차 안은 일시적 음소거 상태가 되어버렸고
'설마 이거 몰래카메라 인가..?'
갑자기 너무 웃긴지라. 갑작스러운 쌍욕어택에 어안이 벙벙해진 남편옆에서 사과도 않고는 낄낄댔다.
'아니 욕을 하면 했지. 번개처럼 바로 끊는 건 뭐람??'
다행히 남편은 충격을 받았다거나 한 눈치는 아니었다. 아빠가 본인에게 전혀 위협이 되는 상대가 아닌 걸 알기 때문일 테다.
강자는 약자에게 쫄지 않는다.
아빠는 지금까지 자신이 집안의 강자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했으나 누가 봐도 그 위치는 명실공히 남편의 것이었고 그것을 깨닫게 된 현재, 아빠는 할 수 있는 가장 위협적 액션을 취한 것뿐이다. 그런 것마저 우리 부부는 이미 예상했기에 화가 난다기보단 그 모양새가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졌다. 서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에 오던 중 병원에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어르신이 많이 흥분하셔서 잠도 안 주무시고 계속 소리를 지르시네요. 수면제 미량 투여하겠습니다"
쩝. 봐도 불안하고 안 봐도 불안하다. 그나마 병원에 있으면 편했던 시절은 지났고, 이제는 빨리 퇴원하는 게 낫다 싶을 정도다. 어차피 병원은 집에 가는 길에 있으니, 잠깐 들러볼까 하고 아빠에게 향했다.
9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병원. 고요한 병동에 면회객은 역시 우리뿐이다.
데스크에 가볍게 인사를 하니 아빠에게 손찌검을 당했던 조그마한 간호사가 방긋 웃으며 브리핑을 해준다.
"보호자님 안 오셔도 되는데 걱정돼서 오셨구나. 전화를 괜히 했다 그쵸? 수면제를 투여할까 했는데 지금 막 잠이 드셔서 지켜보고 있어요"
어떤 면에선 생판 남이 자식보다 낫다. 내 머릿속엔 "그냥 뭐라도 놔주지"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밤낮으로 이리 들들 볶아댈 거라면 위험부담이 있을지언정 차라리 약물의 힘을 빌려 잠시 주무시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으니. 그런 마음을 있으나마나 한 체면을 위해 구석에 처박아놓고, 대충 대답한 후 병실로 들어갔다. 그냥 아빠 얼굴만 잠깐 보고 나올 생각이었다.
'헉!!!'
그러나 커튼을 걷자 그 안에서 날 맞이한 건 생각지도 못한 모습의 아빠였고 나는 터져 나오는 신음에 황급히 입을 막아야 했다.
일단 아빠의 손에는 아기들이 할법한 하얀 손싸개 같은 게 끼워져 있었는데 그 아래 손목에는 억제대가 채워져 침대 프레임 양쪽에 결박되어 있었다. 가슴에 덕지덕지 붙은 의료기기들, 링거줄들 때문에 상체는 탈의상태였고 덮어져 있던 병원이불은 걷어차버렸는지 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기저귀만 하고 있는 하체까지 숨김없이 날것 그 자체로 전시되어 있었다. 이 기가 막힌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갓 태어난 신생아가 떠오른다. 하필 대머리라 더 베이비 같지 않은가. 나이 여든에 아기의 모습으로 회귀되어 있는 모습을 보자니 인간의 시작과 끝은 그 모양새가 동일할 수도 있겠구나. 따위의 생각이 스쳐가기도 했다.
어쨌든 남편에게는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 발발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억누르며 몸을 돌리려는데
아빠가 으음-하는 소리를 내더니
"가지 마라"
가래 낀 목소리로 으르렁대듯 나를 잡아 세운다. 등골에 소름이 쭈뼛 돋는다.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경찰을 불러라"
못 알아들어서 멍청하게 되물었다.
"아빠 뭐라고 했어?"
"당장 경찰을 불러라. 저것들을 고소해야겠다."
음. 오늘도 제정신이군.
왔다 갔다 하지만 그래도 디폴트값에 가까운 상태는 '꾸준한 격노 상태와 더불어 매일 병원을 고발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진 노인"쪽에 더 가까웠고 난 차라리 이 상태를 꾸준히 유지해 주길 원했다. 전처럼 어쩌다 한번 좋아지면 그 상태에 대한 희망고문에 더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윽고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더니만 팔을 좌우로 휘두르며 링거줄을 빼려고 낑낑대다 손싸개 때문에 맘대로 되지 않자 발을 이리저리 구르며 "당장 경찰 불러어......"라는 말만 반복하는 아빠. 근데 왜인지 전처럼 짜증이 나지 않았다. 그저 한없이 애처로웠다. 아빠는 나에게 든든하진 않지만 그래도 버팀목 같은 존재였는데 그런 아빠가 기저귀만 차고 알지 못할 소리를 하며 버둥대고 있는 걸 봐야 하는 나 자신에게 연민이 느껴질 만큼 우울감이 몰려온다.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울고 싶은 기분이랄까. 이대로 무시하고 나가면 한바탕 난리가 날 거 같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해서 아빠의 손싸개를 꼭 잡고 "내가 경찰 불렀어. 이제 곧 올 거야. 그러니까 맘 놓고 자도 돼"라고 속삭이니 "그래. 잘했다. " 라며 아빠의 발버둥이 멈췄다.
그렇게 면회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