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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Apr 20. 2023

벌거벗은 임금님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는 하얀 베개만이 아빠에게 남은 전부였다.


우리에겐 천국은 없어



퇴원 하루 전날. 어젯밤 모습이 뇌리에 박혀 내내 생각나는 통에 잠을 설쳤다. 당장 내일이 퇴원인데 아빠는 전혀 설득하지 못했고 어디로 갈지 어찌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 답답해서 누웠다가 일어났다가 앉아있다가 그렇게 온몸을 혹사시키니 오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다. 누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 하찮은 욕심도 이젠 부질없다. 한두 번 한 생각인가. 적막한 집이 그야말로 지옥 같다. 그 속을 괴롭게 부유하던 중 병원에서 전화가 온다.적응될 법도 한데 여전히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보호자님, 내과 과장님이 방금 환자분께 내일 퇴원하시라 이야기하고, 치료 종료하겠다고 말씀드리니 갑자기 옷을 모두 벗고 소리를 지르고 계시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시간이 지나도 적응할 수 없는 이유는 이렇게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사건들이 생겨서다. 이런 부분에서 아빠는 우리의 머리꼭대기에 앉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기껏 해봐야 최악은 액팅아웃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알몸시위라니 이것이 뭔 일이란 말인가. 이것을 과연 섬망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제가 지금 갈게요 심해지시면 진정제 투여라도 부탁드려요. 죄송합니다."

"네 저희도 최대한 진정시켜 볼 테니 조심해서 오세요."


핸드폰을 저 멀리 밀어버리고 맨바닥에 벌렁 드러누워버렸다.

보통 같았으면 무슨 일이냐며 나보다 더 걱정을 했을 엄마는 아빠가 입원한 다음날 짐을 싸서 우리 집으로 왔고 약 3주 동안 함께 지내다 엊그제 본인 집으로 돌아갔다. 퇴원이며 입원이며 신경이 날카로워진 내가 쓸데없는 신경질을 부릴까 나름 배려차원으로 분리를 선택한 것인데 허튼 여유를 부린 것 같다. 우주에 혼자 툭 떨어진 기분. 불행과 불안으로 이루어진 중력이 나를 이리저리 밀가루반죽하듯 눌러대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외롭고. 무섭다.


몽실몽실한 우리 집고양이들을 아무리 만져봐도 덜덜 떨리는 손발은 따듯해지지 않았고 목구멍으로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아 아침점심도 쫄딱 굶었다. 나는 원래부터 혼자 있는 걸 좋아했기에 아무도 없는 오전의 우리 집의 고요를 사랑했는데. 꽉 채운 잡념들이 삐그덕 대며 소음을 내고 있는지 거슬리는 시끌 거림에 머리가 지끈댄다.


솔직히 이 정도로 괴롭혔으면 이제 좀 조용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특히나 퇴원하루전날만큼은. 그렇다, 어리석게도 나는 아빠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그래 일단 몸이 좀 나아질 때까지만 요양병원에 입원해 보자꾸나'


이런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아빠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드라마나 다큐 혹은 에세이등에 등장하는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걸 죄스러워한다. 또 스스로 이상해짐을 느끼면 자처해서 시설로 가려하고 그런 부모를 자식들은 못 보낸다, 엉엉 울며 붙잡고. 애달픈 실랑이를 하고.. 뭐 어버이날 특집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스토리가 일반인이 생각하는 초기치매의 그림 아닌가. 실상은 전혀 다르다. 위의 경우는 1프로도 안 되는 착한 치매의 경우다. 실제로는 총성 없는 전쟁,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대부분 우리 아빠 같을 것이다. 긴가민가 하는 상황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기행과 민폐들에 너덜너덜해진 자식들은 나와 같을 것이고.




아빠의 초반 스탠스는 -치료고 뭐고 필요 없으니 당장 퇴원을 시켜달라-라는 협박조에 가까웠으나 전혀 들어 먹히질 않자 그렇다면 만족할 만큼 서비스를(치료) 받아먹은 뒤 퇴원을 하겠다.로 방향을 틀었다. 이것은 나아지지 않는 몸 상태도 한몫을 했다. 병원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좋아지지 못하는 상태'라 말했고 그것은 이제 치료 이전의 아빠의 몸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선고와 같았다. 나와 남편은 그 사실을 받아들였으나 아빠는 아니었고 명백한 의료사고라고 인식하고 계셨다.


따라서 당신은 이 병원에서 마땅히 책임을 져줘야 할 사람이고 그렇기에 이 병원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가치가 있다로 스스로의 위치를 설정한 뒤 이제는 의사에게도 거리낌 없이 하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아빠에게 "퇴원하시라"라는 통보는 그의 직무유기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오랜 시간 아빠와 감정을 맞닿고 살아왔기에 그 사고방식의 알고리즘이 빠르게 해석된다. 오늘의 알몸 시위는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을 것이다.


"당장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맞춰라"


아무래도 퇴원도 입원만큼 빡세게 힘들 거란 결론까지 덤으로 도출해 낸 뒤 나는 진이 쭉 빠져 완전 넉다운이 되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채비를 하던 중 썬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 무렵 썬도 나름대로 힘든 사투 중이었는데 드디어 시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저 빛이라고 찬양했던 요양병원은 막상 데려와 입원수속을 진행하다 보니 폭력성 있는 썬의 시아버지를 그리 반기지 않는 눈치였고 상태를 보자마자 1인 간병을 하셔야 할 수 있다는 병원 측의 이야기에 썬의 기분이 많이 상해있었다.


"이럴 거면 여기 안 모셨지!  힘들게 모시고 오니 왜 말이 달라져??"


문제 환자라 미리 상담을 했고, 격한 액팅 아웃이 있을 수 있다 말씀드렸건만 갑자기 달라지는 입원실 사정과, 불친절한 외국인 간병사와 미적지근한 병원 측 태도에 썬과 나 모두 멘붕이 와버린 상황.


"야 우리 아빤 빤쓰도 안 입고 병원에서 난동 부리고 있대"


라고 말하니 썬이 화답한다.


"시발 다 망했어. 우리에겐 천국은 없어...!!!!!!!!!!!"




벌거벗은 임금님


아빠의 침대는 문쪽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병실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저 멀리서도 자연스레 아빠의 모습이 보이게 되는 구조다. 병동 복도에 도착해 몇 발자국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벌거벗은 대머리 영감님이 보이는 듯하여 흐린 눈을 하고 최대한 느리게 걷고 있는 와중에  "아이고 저 영감님은 왜 저렇게 홀딱 벗고 앉아있대 쯧쯧" 하시며 어떤 아주머니 한 명이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혀를 차며 지나간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도 돈 주고도 못 볼 기이한 장면을 목격한 행인 1인쯤으로 설정되어 지나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아빠는 정말 말 그대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홀라당 벗고 침대에 앉아 졸고 있었다.

병실에는 오후의 겨울 햇빛이 화사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안 그래도 흰 피부와 매끄러운 대머리에 빛이 반사되어 보고 싶지 않은 압도적인 살색의 향연이 눈에 들어왔다. 주렁주렁 매달려있던 모든 링거줄과 의료기기들도 다 회수되었고 결박을 했던 아대와 손싸개도 없다.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는 하얀 베개만이 아빠에게 남은 전부였다.



현장에 있던 간호사의 증언으로는 오늘 오전,  다소 휑해진 본인의 몸에 어리둥절한 아빠가 회진 돌던 의사에게 물었다고 한다. 

"왜 링거를 다 빼놓은 거요?" 당연히 내게 전달받았을 거라 생각한 의사는 

"따님이 말 안 해주시던가요? 내일 퇴원하실 예정이라서요"라고 답했고

"퇴원은 무슨 퇴원! 지금 이 상태로 어딜 가라고!" 거센 아빠의 반발에

"네 어르신은 이제 요양병원으로 가셔서 마저 치료하셔야 해요. 이것도 따님에게 모두 전달을 했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빠는 조용히 옷을 (기저귀까지..) 모두 벗어던지고 "그럼 어디 한번 내보내봐라"하며 대자로 누워버렸다고 했다.

아아.. 의사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리곤 따님을 부르라고 소리를 계속 지르셔서 연락은 드렸는데요. 지금은 남자 간호사를 불러달라는 요청 정도밖에 없으셔서 수면제는 안 놓고 두고 보고 있어요."


'하........ 그놈의 수면제 놔주세요 제발.'

이번엔 진짜 말 할뻔했다.






턱 끝까지 올라온 요구사항을 내뱉을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 썬의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는데 그 덕에 한번 더 꿀떡 삼킬 수 있었다. 이 고요한 난리 통 속에서, 전우의 메시지는 한줄기 생명줄과 같다.


"다행히 이야기가 잘 됐어. 우리 아버님 일반병실 말고 집중치료실에 모시기로 했어. 내부가 깔끔해서 괜찮더라구! 기다려봐 병실 사진 보내줄게."


내가 갔을 때는 일반 병실만 그것도 문틈으로 살짝 보는 것만 가능해서 내심 불안했는데 썬이 보내온 집중치료실의 사진을 보니 처음 방문했던 집 앞 요양병원의 그것보다 좀 더 넓어 보였고 병상 간격도 적당한 것 같았다. 냄새도 안 나고 분위기도 조용하다는 뒤이은 후기까지.


"개인 간병도 보호자가 불가하면 억지하지 않는다고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얘기만 한 거고 최대한 해보겠대. 걱정하지 말래"

-최대한 해보겠다-라는 말에 왜인지 마음이 안정되어 '우리가 예민했나 봐' 라며 서로 다독여주며 "야 이제 우리 아빠 빤스만 입으면 되겠다" 농담도 툭 던져본다.

떨어져 있으나 함께.라는 느낌이 드는 썬과의 대화로 심란한 내 마음이 점차 평온하게 가라앉았고 간호사의 권유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어르신 옷도 입고 저녁식사도 마치신 후 잠에 드셨다'는 병원의 이야기에 나도 겨우 첫 끼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결전의 퇴원 당일.

퇴원 수속으로 정신없던 오전시간, 썬에게 카톡이 왔다.


"우리 아버님 어젯밤에 난동 부리셨다고 2인실로 옮기래... 어떻게 이러냐. 하루 만에!! 여긴 안 되겠어. 나가야 할 거 같아..."


썬의 말대로 우리에겐 천국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럼 허락된 건 지옥인 거겠지. 그래 한번 가보자. 나는 한껏 반항적이 되어 비장하게 아빠의 병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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