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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Apr 21. 2023

결전의 퇴원날

-작전명-아빠가 제풀에 지쳐 병원으로 간다고 할때까지 집에서 버텨보기




퇴원 날 오전, 병동복도에서 마주친 담당의가 묻는다. 


"어르신 어디로 모시기로 하셨어요?"

"아.. 그게요.."





어젯밤. 그러니까 퇴원 전날 밤 아빠의 알몸시위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남편과 가족회의를 했다. 아빠의 거취에 대해서다. 본인발로 병원에 들어가겠다 해도 될까 말깐데 저렇게 온몸으로 거부하는 아빠를 보니 긴급회의가 필요했다.

나: "썬네 시아버지처럼 누가 누군지 아예 못 알아보는 것도 아니고.. 울 아빤 인지가 너무 또렷한데 어떡하지. 이러면 강제입원밖에 방법이 없는데."

남편 : "그리고 여전히 힘도 쎄셔. 기저귀 갈 때 발로 몇 번 차였는데 엄청나더라. 강제입원도 제어 가능할 때나 이야기지. 나 혼자서는 아버님 도저히 무리일 것 같은데.. 사람을 여럿 부르면 몰라도."

나: " 진짜.. 답 안 나오네. 억지로 하다간 사달이 날 거 같고.."

남편: "근데 말이야. 혹시나 하고 물어보는 건데 내 생각하지 말고 솔직하게 답해줘. 네가 만약 우리 집에서 아버님 모시고 싶다고 하면 나는 그 뜻에 따를 수도 있어."

나"오빠 그건 절대 안 돼.. 우리 다 죽는 일이야."


집에 모시자는 말에 깜짝 놀라 정색을 섞어 대답했지만, 사실 마음속엔 '우리 집에서 아빠를 보살핀다'라 선택지도 희미하나마 존재했다. 저 귀퉁이 어디쯔음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잡념들과 섞어 마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숨겨놓았던 조그마한 욕심의 모습으로.


아빠가 우리 집에 앉아 있는 모습은 그다지 어색한 장면은 아니다. 입원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주 오셨으니 말이다. 주말에도 종종 한두 번씩. 그리고 6개월마다 가야 하는 병원검진 전날에는 무조건 우리 집에서 주무셨다. 병원과 더 가까운 우리 집으로 오는 게 오전부터 움직이기 편해서다. 우리 집에 계신 날엔 항상 연어초밥을 드시고 후식으로 뜨끈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즐긴 후 고양이들과 소파에 누워 11시까지 티비를 보다 그대로 스르륵 잠이 드는 게 아빠의 해피한 루틴이었고 다음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씻은 뒤 본인 덮은 이부자리를 장롱에 넣어놓고 옷까지 말끔하게 챙겨 입은 후 아침뉴스를 보며 굼실굼실 일어나는 우리를 맞이하실 정도로 깔끔하고 부지런한 면이 있으셨다. 그런 아빠와 한집에서 지내는 건 가끔 물 떠오라 커피 내와라 할 때만 살짝 귀찮은 정도지 별로 힘들진 않았다. 심지어 아빠가 가면 허전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때라면 모실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엄마와 썬에게 상담을 해도 답은 똑같았다. "절대 못 버틴다"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나는 2달간의 병원생활로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고 너덜너덜하게 지친 상태였다. 거기다 텅 빈 에너지 대신 증오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는데 아빠가 보여주는 1차원적인 행위에 대해서가 아닌 총체적인 증오였다.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온 건지. 그 나이에 아무 대책도 없이 자식을 낳아 그마저도 이렇게 고통을 주고 괴롭히는데 써먹는지. 부모가 아닌 인간으로서 환멸을 느끼는 상태였고 그 증오를 누를 수 있는 에너지가 없었다.

그런 내가 아빠를 집에 모신다면, 사랑과 정성으로 돌봐줄 수 없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오빠. 일단 아빠집으로 데려다 놓자.

-작전명-아빠가 제풀에 지쳐 병원으로 간다고 할때까지 집에서 버텨보기는 어때?


지금이야 병원 놈들 괘씸해서 퇴원 안 하겠다 저러고 있지만 아빠는 꾸준하게 집에 가고 싶은 의사를 내비쳤다. 새벽에 짐 싸서 집으로 가겠다며 간호사들 뒤집어놓은 게 한두 번도 아니었고. 그러니 집에 다시 데려다 드리는 건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까. 애초에 병원을 거부했던 이유도 병원에 가면 다시는 집에 못 돌아올 거 같아서니까 말이다. 갑자기 그 본능적인 기민함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결국 우린 그 길을 가야하니까.

어쨌거나 요양병원입원은 아빠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하던 집으로 모신 후 최대한 설득과 회유를 통해 저 완고한 거부의사를 말랑하게 손질한 후 최대한 무력충돌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아빠를 꽁꽁 묶어 억지로 데려갈 순 없으니까 결국 우리에겐 이 방법밖에 남아있지 않은 셈이다.







"이런 상황이라서요. 그냥 집으로 모시기로 했어요."

의사도 내내 시달렸던 기억이 나는지 납득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시군요. 그래도 빨리 병원으로 모시는 게 좋아요. 상태가 점점 나빠지실 거예요."


대충 알겠다고 대답한 후 짐을 챙기려 병동에 들어서니 멀리서부터 시끌시끌하다. 병실로 가 보니 아빠는 절대 안 가겠다 고집부리던 어제의 일이 무색하게 걸치나 마나 한 병원복 대신 사랑해 마지않는 본인의 옷으로 싹 갈아입고는 (부지런도 하시지..) 패셔니스타의 화려한 퇴장을 위해 꼭 필요한  '중절모'가 사라졌다고 찾아내라 성화중이었다. 모자의 행방을 알 리 없는 간호사 두세 명이 아빠의 고함소리를 반주 삼아 열심히 모자를 찾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오케스트라 지휘하는 것처럼 여기도 봐라 저기도 봐라 지시하며 근육이 다 빠진 다리로 혼자 일어나려다 넘어질 뻔한 걸 남편이 달려가서 간신히 붙들었다. 노인이 시뻘게진 얼굴로 사위에게 안기듯 부축받으며 외친다.

"그게 얼마짜리 모잔줄 알아? 얼른 찾아내서 가져와!!"


퇴원하는 날까지 끝까지 민폐를 끼치는구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한바탕 퍼부을 생각으로 이를 바득 갈던 찰나 간호사가 휠체어를 가져왔고 뒤이어 남편이 재빠르게 아빠를 앉힌 후 종이백에 쳐박혀있던 중절모를 찾아냈다. 모자를 쥐여주니 조용해지는 것이 세 살배기 아이 하는 거랑 똑같다. 그치만 애는 귀엽기라도 하지. 우리 집 대머리 영감님은 귀여운 구석이 하나도 없다. 모두가 분주한 이 현장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한 혈육인 딸인 내가 가장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있었는데 나는 아빠의 모자를 찾아주고 싶지도 않았고 편하게 앉을 수 있는 휠체어를 가져다주기도 싫었다. 오로지 짜증만 내고 싶었다. '이 모자는 아주 멋쟁이들만 쓰는 모자이고 이따위 병원에서 이런 취급을 받을 만큼 내가 핫바지(?)가 아님을 증명하는 모자이기도 하다'라는 식의 말을 중얼대는 아빠가 너무 미워서 열심히 짐을 챙기는 남편과 그걸 도와주는 간호사를 앞에 두고도 '아빠를 그저 째려보기만 하는' 훌륭한 노쓸모 인간으로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가 이 병원에서 최대한 빨리 아빠를 데리고 사라져 주는 게 병동의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나의 마지막 소임이 아닐까 싶어 눈에 보이는 대로 짐을 쑤셔 넣고 재빨리 병실을 나왔다.


시발시발 거리며 씩씩대는 와중 하필 지켜보던 수간호사와 눈이 딱 마주쳤다. 민망한 마음에 가벼운 목례를 하고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잘 가시라며 날 꼭 안아줬고 그래서 조금 놀라버렸다. 이게 바로 연륜 있는 간호사의 통찰력인 것일까. 그녀에겐 더 이상 좋아지지 않을 환자를 데리고 악다구니할 내 암담한 미래가 보였을지도 모른다. 타이밍 자체로만 본다면 '앞으로 더 빡세질 테니 맘 굳게 먹으렴'이란 메시지가 담겨있는 포옹일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나에게는 벅찬 위로였다. 그날 수간호사님이 전해주던 온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힘이 되었다.




아메~아메~~아메리카노



병원 로비로 내려와 수납을 위해 대기표를 끊고 기다리고 있는데, 휠체어에 앉아 모자를 만지작대던 아빠가, 옆에 있는 나를 툭툭 치며 하는 말.


"뜨끈한 아메리카노 한 잔 먹고 싶다."


가뜩이나 긴장하고 있던 터에 아빠의 주문사항을 들으니 내 뒷골이 뜨끈해진다. 아메리카노는 심부전 환자에게 위험 음식 TOP3안에 든다. 당연히 될 리가 없다.


' 아빠는 이 난리를 치고 퇴원을 하는데 먹을게 생각이 나?  아빠 몸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지? 절대 커피 먹으면 안 된다는 말 못 들었어? 절대 커피 못 갖다 줘!!!!!!'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초월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아빠.. 지금 커피 먹으면 안 돼.." 정도로 줄여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빠는 딸의 인내심에도 정중함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또 오늘따라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기나긴 대기시간덕에 휠체어에 앉아 멀뚱 거릴 것밖에 없던 아빠는 참을 인을 마음속에 세 번씩 갈기고 있는 딸내미의 맘도 모르고 5분에 한 번씩 아메리카노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이런 십센치!!!!! 장송곡으로 아메리카노를 틀어줄까 보다.

웬만한 아메 러버들도 지금 이 순간 우리 아빠에겐 명함도 못 내밀 거라고 단언한다. 진정한 애호가라면 죽음의 문턱에서도 이렇게 휠체어를 굴리며 아메리카노를 찾아야지. 암. 커피 좀 사 달라 조르는 여든의 노인과 짜증 난 표정으로 구시렁대는 서른의 딸. 우리의 모습을 삼인칭으로 옮기면 볼만하겠다. '인간극장'같은 다큐멘터리 안에서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같은 시트콤을 찍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짐을 차로 옮기느라 주차장에서 올라온 남편이 퉁퉁 부은 우리 부녀를 보고는 '왜? 왜?'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상황설명을 하니 "야 그냥 마시게 해 드려" 간단히 결론을 짓고는 로비에 있는 카페에 가서 재빠르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와 아빠에게 건네는데 그걸 보고 있자니 지금까지 내가 반대한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과연 아빠의 건강을 위해서인 걸까.

아빠가 미워서 그런 걸까.


아빠는 장난감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화색이 돌더니 기대에 찬 표정으로 뚜껑을 열고 허겁지겁 커피를 입에 들이밀었다. 그러다 입천장을 데었는지 "아 뜨거!!"하고 로비가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며 손을 휙휙 내저었는데 예전의 나였다면 냉큼 달려가 냉수 한 잔을 받아와서 컵에다 미지근하게 섞어줬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그 모습을 경멸스럽게 바라보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 노인이 내 아빠가 아니었으면.'


부모와 자식의 연이라는 게 탈부착할 수 있는 게 아니라지만, 나는 이제 그만 떼어내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나도 모르고 자신도 모르는 치매노인이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려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억겁과 같은 시간이 흘러 수납을 마치고 미리 호출한 사설 엠뷸런스 기사가 도착했다. 남편은 우리 차를 가지고 가야 했기에 앰뷸런스엔 보호자인 내가 함께 탔다.




오롯이 아빠와 나. 둘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바라보는 내 눈빛이 너무 서늘해서일까. 아빠는 누워있는 와중에도 뜨끈한 아메리카노 컵을 보물처럼 꼭 잡고 있었는데 나는 손 한번 잡아주지 않은 채 덜컹대며 흔들리는 아빠를 그대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빠의 목에서는 그릉그릉 가래 끓는 소리가 났고 갑자기 숨을 멈췄다가 이내 푸우-하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컥'하는 소리와 함께 숨이 턱 하고 멈췄을 땐 이대로 모든 게 끝나버렸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는 내내 아빠는 어지럽다고 했고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저 참아라, 기다려라 라는 말만 무심하게 내뱉었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앰뷸런스에서 실컷 덜컹대다 집에 도착했다.


친절한 앰뷸런스 기사는 아빠의 침대를 탁탁 접어 각도를 맞춘 뒤 휠체어같이 만들어 아빠를 태우곤 차에서 엘리베이터까지 조심스레 이동한 후 침대에 아빠를 부축하여 눕혀주시기까지 했다.

이토록 모든 사람의 호의와 배려로 연명한 3주간은 아빠가 집에서 물 한 잔을 원샷한 후 내뱉는 한마디 문장으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나는 내심 니들 집으로 데려가서 보살펴 줄줄 알았다! 근데 집은 무슨! 에라 니미럴....못된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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