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 니미럴. 못된 것들
사람이 당황하면 말문이 턱 막힌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이나 싶었다. 그런데 나는 말문뿐만 아니라 기도 막히고 코도 막혔다. 아빠는 와중에 우리 집에 올 마음이었구나.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사실 평범한 가족이라면 방금 퇴원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노인을 딸의 집으로 데려가 모시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나름 그럴싸한 명분이 있노라 변명거리는 확보했지만 그 명분이 과연 도의적이고 상식적인 것인지에 대한 대답은 1년이 넘어 글을 집필하는 지금도 답을 찾지 못했기에 평생 자식으로서 가져가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과연 그때 그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아빠의 불만은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해를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숨 쉴 틈도 없이 밀려드는, 감히 인생 최대의 고비라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난관들은 나에게 충분한 심사숙고를 할만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 최대한 서로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허겁지겁 선택을 해야 했고 뒤따라오는 후회는 미련 없이 씹어 삼켜버려야 버틸 수 있었다. 죄스러운 마음 까지도. 그래서 아빠의 불만에도 우리는 그저 침묵으로만 일관했다.
그러자 아빠는 우리가 입을 닫고 있는 것을 반성의 제스처라 생각했는지 기세등등해져 본인이 (우리가 준 용돈으로) 모아둔 돈이 꽤 있다. 그 돈으로 내 수발을 들어줄 파출부-이하 가사도우미-를 불러달라 요구했다. 아빠입장에선 꽤 합리적인 제안을 했다 생각했겠지만 건강상태가 문제였다. 건강한 노인이라면 그저 밥이나 챙겨주고 청소해주는 정도로 괜찮겠지만 아빠는 끼니 전후로 셀 수 없이 많은 약을 먹어야 하며 결정적으로 '심신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할 것 없다'라는 담당의의 소견 때문에 돈의 문제를 떠나 가사도우미는 적합한 대안이 아니었다.
'그럼 가사도우미대신 간병사는 괜찮지 않나?'
나는 얼른 핸드폰을 들고 방문간병사를 검색해 봤다.(빨리 아빠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이 상황을 종료해버리고 싶었다.) 그러자 간병사를 구인할 수 있는 사이트가 딱 한 곳 나왔는데 메인화면에 가득 찬 간병사목록이 남성/치매/뇌질환에 체크하고 재검색하자 다섯 명 정도로 훅 줄어버렸다. 그마저도 세명은 간병 중이고 두 명은 병원전문이라 택할 수조차 없었다. 돈을 더 얹어서라도 찾아봐야 하나. 미간을 찌푸리며 남편에게 "어쩌지?"하고 물어보니 남편이 황당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너.. 뭔가 착각하나 본데 우리 목적은 아버님이 지쳐서 스스로 병원을 간다고 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뭘 해드리면 집에 계시는 시간이 더욱 길어지시겠지"
피식 웃음이 난다. 아무리 지랄을 해도 나는 딸이고 어야 둥둥 다 받아줘도 남편은 남이구나 싶어서다.
나는 이 와중에도 아빠의 요구사항을 들어준답시고 버둥대고 있구나. 요양병원을 보내려는 마음은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적절한 때 당초의 목적을 상기시켜 준 덕에 제정신을 차린 나는 "미안한데, 아빠가 원하는 건 들어줄 수가 없어. 아빠는 환자라서 가사도우미는 안 오려고 할 거고 재택 간병인은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어."라며 아빠의 요구사항을 결렬시켰다.
역시나 그 대답은 아빠맘에 들지 않았고 곧이어 격한 반문들이 돌아왔다.
너희들은 생각이 있냐 없냐?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이럴 수가 있느냐?
니들이 아무리 모자라도 그렇지 아픈 아버지를 두고 이렇게 냉정하고 모질게 굴 수 있느냐?
내 밥은 어떻게 할 거냐? 니들이 번갈아가며 차려줄 거냐?
아니면 나보고 이렇게 굶어 죽으라는 거냐?
또 저놈의 밥 이야기다. 나는 입을 대빨 내민 채로 버럭대는 아빠에게
"삼시 세끼 밥 따박따박 챙겨드시고 싶으시면 요양병원을 가야지."라고 툭 내뱉었다.
아니 내뱉어버렸다.
아빠가 사납게 반문하는 저것들은 사실 우리 계획의 일부긴 하다. 나는 잠시 섬망(혹은 인지저하) 중에도 정확하게 상황을 캐치하는 아빠의 생존본능이 경이롭다고 생각했다. 저런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집보다 병원이 더 낫다!라는 판단이 들 테고 그러면 대접받고 싶어 하는 성격상 병원으로 다시 가자고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에 모든 것을 몰빵 해서 집으로 온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나의 공격은 조금 섣부른 것이었음을 내뱉고 나서야 깨달았다. -작전명-아빠가 제풀에 지쳐 병원으로 간다고 할때까지 집에서 버텨보기 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선 우리 둘의 입에서 절대 요양병원이라는 단어는 나오면 안될 금기어였는데... 변명해 보자면 나는 그저 '아빠 정신 차려. 아빠가 무슨 대단한 부잣집 노인인것마냥 개인 파출부 타령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라는 메시지만 넘겨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정말이다.
섣부름의 대가는 컸으며 아빠는 신뢰가 무너진 표정으로 남편은 억장이 무너진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뒤이어 이어지는"니들이 첨부터 이럴 작정으로 나를 집에 데려다 놨구나. 나는 절대로 요양병원은 안 간다!!!!!!!!!! 너희들이 뭐라 해도 절대 안 가!!!!!!!"아빠의 노호성. 그 뒤로 지상 최대의 차가운 시선이 쏟아진다. 남편이었다. 오전부터 아빠의 악다구니를 버텨내면서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남편은 '니가 모든 걸 다 망쳤다'라는 시선을 쏴 붙이고 있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요양병원'이란 단어는 아빠의 트리거가 되어 분위기는 한층 더 험악해졌으며 그나마 쫌쫌따리 이어지던 대화도 불가하게 되었다.
극도로 예민해져 '오늘 하루 밥은 어떻게 할 거냐!!'며 상을 두드리는 아빠에게 포장해 온 죽 두통을 꺼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남편의 서늘한 눈빛은 쭉 이어졌다. 인정한다. 나는 너무나 감정적이었다. 그러나 남편도 알고 나도 안다. 이제 아빠와 나누는 모든 감정들이 하나둘씩 통제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싸늘한 눈빛 외에 별다른 액션이 없던(그래서 더 큰 죄책감을 몰고 왔던) 남편은 깊고 쓴 한숨을 후욱 - 내뱉곤 "나는 지금 회사 때문에 가야 하는데 넌 나 따라서 갈래? 아니면 아버님 옆에 좀 있다 올래?"라고 물어봤는데 이 질문엔 '사고 친 걸 수습하고 오라'라는 뜻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나는 고민하는 척도 안 하고 "집에 갈 거야." 하며 아빠와 나의 보금자리였던 좁은 집을 도망치듯 나왔다.
조심스레 닫는 현관문틈으로 훤히 보이는 안방. 테이블 위에 죽을 놓고 후후 불어가며 먹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는 간다는 우리의 인사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모습이 반, 반의 반, 이윽고 문에 가려 완전히 안 보일 때까지 서성이다 겨우 용기 내어 뒤돌았고 오후 5시. 방금 막 저녁 식사를 마쳤다는 전화 이후로 아빠는 더 이상 연락을 받지도 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