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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Apr 27. 2023

휴머니티드 케어

존엄케어에 대한 단상


"아버님이 전화하셔서 에미는 어디 있냐고 물어보시네."

아침 10시 25분. 출근한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엥..? 에미가 누구야? 웬 에미?"

당황스럽다. 우리에겐 자식도 없고 아빠에겐 에미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없는데 누굴 에미라고 부른단 말인가?


"자기 말이야. 너"

"나보고 에미라고 했다고??"

"이제 호칭도 가물가물하신 것 같아.."

"멘붕이구만"



붕괴될 멘탈이 있나 모르겠다만 어쨌든 또 뭔가가 붕괴되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보다 시급한 일들이 많다. 남편의 제안으로 시설이 좋아 보이는 요양병원을 대여섯 곳 골라 닥치는 대로 소견서를 넣었던 것이 며칠전이였고 병원들의 피드백이 도착하여 남편에게 보고 해야 했기 때문인데.


"그건 그렇고 있지. 아빠 소견서 넣어둔 병원들에게 연락 왔어. 강남의 ㅅ요양병원은 재활전문이래. 강동의 ㅁ요양병원은 거절했고, ㅊ병원은 뇌질환 전문이라 안된대. ㄴ병원은 담당자 없다고 다시 연락 준대. 근데 분위기가 다시 연락 안 줄듯...."


초반에 요양병원을 탐방했던 그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그때는 우리가 병원을 골랐지만 지금은 병원이 우리를 고르고 있다. 심지어 굴욕적 퇴짜도 익숙해질 만큼 빈번하다. 밥을 입에 쑤셔 넣고 우물우물 씹어대며 다시 메시지를 보낸다.


"아 그리고 소견서 말이야. 썬이 간다는 요양병원에도 좀 보내줘"


고양시에 위치한 ㅈ요양병원이 그 주인공이다. 썬은 시아버지를 이 병원으로 바로 재입원시키려고 준비 중이었다. 나 역시 연락처를 넘겨받아 사정을 설명하니(저.. 저희도 갈 수 있나요?) 수화기 건너편의 간호부장의 목소리에선 일전의 시들시들한, 혹은 지나치게 친절했던 (사태가 어느 정돈지 짐작을 못하는 거 같아 더 불안했던) 관계자들에겐 들을 수 없던 단호함과 강단이 느껴졌고 문제 환자를 많이 케어해 본 듯, 짬에서 느껴지는 바이브가 있었다.


'네 보호자님. 어르신이 너무 힘들어하실 경우에는 안정제 투여해서 재우는 방법으로 케어할 거고요. 먼저 퇴소한다고 하지 않는 이상 저희가 강제 퇴소 조치는 하지 않을 거니 너무 걱정 마시고 모셔오세요'


우리가 상담을 다녀왔던 병원에선 절대 먼저 안정제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안정제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끼는 보호자들도 있기 때문이겠지만. 우리가 접한 바론 세가지 케이스가 가장 흔했다. 안정제를 쓰지 않아 사달을 내거나. 안정제를 써야 하는 수준의 환자들을 아예 받을 생각이 없거나. 혹은 보호자에게 말을 하지 않고 안정제를 써버리는 경우가 있거나. 그래서 처음부터 케어 방법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이 병원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남편은 조금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다.


"어 근데 여보, 이 요양병원은 병원장이 레지던트 수료네? 진료과장은 인턴 수료고... 전문의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님, 자꾸 왜 옆다리 긁는 소리를 하세요. 우리에겐 이제 대책이 없어!






다음날.

썬이 시아버지의 전원을 성공했다는 연락이 왔다.


"입원하시자마자 난리는 났는데 병원에선 꽤 쿨하게 대처하시네. 시설은 전의 그 병원보다 좋고! 일반 병실은 안되고 문제행동러들 모여있는 집중치료실에 들어가셨어. 간호사들도 간병사들도 전의 병원보다 친절해"

"다행이다. 이대로 쭉 문제없이 적응하셨으면 넘 좋겠다."

"그러게 말이야. 너는 좀 어때? 별일 없어?"



"쎄해.."


말 그대로 쎄했다.

쎄하다는 단어를 어찌 풀어 설명할 수 있을까. 완벽히 이상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정상도 아닌,

맘이 놓일라치면 저 밑바닥 어딘가에서 바늘로 쿡쿡 찔러대는 바람에 '아 따거!' 외마디 비명을 지르게 하는.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은.

쎄함

이 이야기를 해보자면 어제. 음 그러니까 아빠가 나를 '에미'라고 호칭으로 부른 날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아빠가 집으로 퇴원한 지 셋째 날 짜증과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기 위해 우울증 약을 한봉 입에 털어 넣고 갔으나 집에 도착해서 본 아빠는 전 날과는 딴판이었다. 종잡을 수 없이 가변적인 아빠의 상태에는 이미 익숙하지만 그날은 정말 평온했다. 우울증 약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래도 소리 지르고 화내는 때보다야 훨씬 낫지 암. 그래서 나름 여유를 부리며 오랜 시간 아빠를 보살필수 있었다. 화장실도 박박 닦고 주방 정리도 하고 먹고 싶다 요청한 누룽지도 보글보글 끓이면서 하면서 말이다.


끓인 누룽지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아빠에게 재차 확인시켜 드린 후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강변북로 위를 지나는 택시 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누룽지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아빠! 가스레인지 위 뚝배기에 끓여놨어. 아까 보여줬잖아~그대로 데워 먹으면 돼."

"아무리 봐도 뚝배기도 없고 누룽지도 안 보이고.... 어떡하냐."

"아니 아빠.. 거기 주방 레인지 위에.. 아까 내가 확인시켜 줬잖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이런 대화의 반복을 세 번쯤하고 나니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기 시작했다.

어제만 해도 저녁에 전자레인지에 죽 데워 잘 먹었다며 전화도 하셨던 양반이 두세 발자국만 걸으면 바로 보이는 코딱지만 한 주방에서 뚝배기를 못 찾으신다는 게 이상했다. 재차 전화를 걸어 "아빠 그냥 내가 다시 갈게. 기다리고 있어 "하고 기사에게 차를 돌려달라고 요청하려는 찰나 다시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 내가 지금 몸이 아파서 그런지 찾는 게 영 힘이 드는데, 그래서 너랑 나랑 사인이 자꾸 안 맞는 거 같아. 오늘은 내가 찾아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내일이나 모레 오너라. 그리고 너희가 이렇게 집에 와서 나를 돌봐주니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그리고 요양병원문제는 내가 티비를 봤는데 좋은 곳도 있다지만 나쁜 곳도 많이 있던데,  사람들 역시 못 믿을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그게 무섭다. 그러니까 조금 시간을 줬으면 좋겠구나."


정중하고 착한 말을 또박또박하게 하는 아빠였다. 그렇기에 압도적인 쎄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일전의 파인애플 오렌지와는 너무나 다른 결 아닌가! 이건 이것대로 또 비정상 궤도에 진입했다는 뜻인가 싶어 지긋지긋한 불안함이 몰려왔다.


"어때. 존나 쎄하지"

"응. 쎄하다..갑자기 이렇게 좋아지신게 이상하네.."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너희 아버지 집에 모셔서 좋아지신 거 아냐?'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랬다면 사람 복장 뒤집힐 소리라며 혼자 억억댔겠지만 치매초반의 양상을 잘 아는 썬만큼은 그 미묘한 쎄함이 뭔지 아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아빠의 저 행동양상을 -아주 많이 쎄한-상태로 결론 내렸다.






휴머니티드케어란?


3無 케어( 욕창無 낙상無, 속박無)

존엄케어라고도 불리는 치매케어의 한 종류이다.


내 인생에 생각지도 못해본 저 단어들의 등장은 사회복지사 공부 중인 썬의 조언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런 세상도 있구나라는 걸 알게 순간 욕심이 생겼다. 상태가 좋아지는 거 같은 날엔 우리 아빠도 저런 존엄 케어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가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말이다. 이제 아빠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허황된 꿈은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아빠의 마지막은 따듯하고 포근한 보살핌을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행동해보고 싶었다.


많은 요양병원에 소견서를 넣었으나 큰 기대도 절실함도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소견서를 보낸 후 애가 타고 절실해서 두어 번 확인전화를 했던 곳이 있는데 바로 충청도 쪽에 있는 ㅁ요양병원이었다. 존엄케어로 유명한, 시설과 케어 수준 뭐 하나 빠질 곳 없는 곳이었다. 아빠를 이곳으로 모시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몇 번의 연락 끝에 겨우 상담실장과 연락이 닿았으나 뭐 늘 그렇듯 이번에도 퇴짜였다.

'어르신 건강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데 우리 병원이 외곽에 위치해서 비상시 바로 응급실로 쏠만한 위치가 아니에요. 그것에 대한 책임소재도 그렇고 요양등급도 없으시니 아무래도 힘드실 것 같습니다.'

한층 울적해진 기분으로 썬에게 연락했고  "응. 나도 이미 존엄 케어로 유명한 요양원, 요양병원에 연락해 봤는데 다 퇴짜 맞았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땐 우리는 또 한 번 분노하여


야. 우리 아버지들 같은 사람마저도 케어해야 존엄 케어지. 자기들이 케어할 수 있는 순한 환자들만 케어하는 게 존엄 케어냐? 순하고 착한 치매환자들 상대로는 우리도 존엄 케어 쌉가능이야!!


라고 외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 치매 걸려도 꼭 착한 치매에 걸리도록 노력하자. 서로 이상하다 싶으면 꼭 말려주자'

오랜 대화는 자조적인 농담을 섞어 마무리되었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폭력적 성향의 치매환자들의 말로를 실시간으로 체감하는 중이기에 오롯한 고독과 슬픔을 농담으로 희석해야 버틸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내용과 맞지 않게 경쾌한 편이었다.

그 후에도 난 남편에게 "오빤 절대 치매 걸리면 안 돼. 키도 크고 팔다리도 길어서 행패 부리면 범위가 광역이야. 한니발처럼 꽁꽁 묶여있다가 죽을 수도 있어"라는 말을 두세 번 정도 하다가 쓸데없는 말 좀 그만하라며 면박을 당하기도 했고 엄마 귓불에 주름이 졌다며 치매보험에 가입을 시키기도 하고 아이허브에 들어가 치매 영양제 뇌 영양제 등을 검색하기도 했다.


아직 반평생도 안 살았는데 -인간의 삶 최종장-을 스포일러 당한 기분이 들었고 최후를 대비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몰려왔다. 내 삶도 아빠와 별반 다를 바가 있을까? 싶은 거다. 노인이 되면 다 이렇게 죽는구나. 이병원 저 병원 떠돌다 결국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는 자식들에게도 짐이 되고 내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초월적인 공포가 밀려들어와 꺽꺽대며 울기도 했다.


그러다 정 견디기 힘들면 우울증 약을 먹고 잠을 청했는데, 다행히도 우울증 약은 꽤 효과가 좋았다.

온갖 잡스러운 생각과 어둡게 밀려오는 막막한 불안함을 노곤하게 몰아내기에 컨디션은 초반보다 많이 회복되었고 때마침 휴가를 받은 엄마가 다시 집으로 합류하여 나를 돌봐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와 남편은 이 생경한 나날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가며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과연 그러했을까.


조언을 청할 친구도. 살뜰한 보살핌을 해줄 부모도. 불안함을 달래줄 알약도 없던 아빠는 홀로 시끄러운 티비소리가 꽉 찬 조그마한 방 안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망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글을 쓰는 지금 뒷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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