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북 May 03. 2023

아빠의 옷가게엔 많은 것이 들어있다.

저 망할 놈의 가게에 많은 추억이 있다는 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 복도에 들어서니 아빠 집 문 앞에  박스가 하나 놓여있다. 안에는 인스턴트 죽과 국 레토르트 식품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한숨이 새어 나온다.


"나 먼저 들어갈게. 너는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기다려."

라며 남편은 나를 문 앞에 세우곤 혼자 들어가서 문을 탁 닫았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남편이 나왔다. 들어서자마자 '죽이 다 삭았는데 어떻게 먹으라고 들여다보지도 않느냐'라며 소리를 지르셨다고 한다. 어젯밤에 사 온 죽이 다음날 오전에 삭았을 리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선 국수가 먹고 싶다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후  남편 쪽은 쳐다도 안 보고 대답도 안 하고 계시길래 그냥 나왔다고 한다. 결국 또 먹는 것 문제다. 집에 온 직후 먹는 거부터 시작해서 먹는 걸로 끝난다. 병원에서부터 시작된 음식에 대한 집착이 집에 오면서부터 제어가 안 되는 느낌이다. 여하튼 드시고 싶어 하시는 걸 못 드시게 하는 우리 마음도 편치는 않았기에 우리 부부 역시 밥을 제대로 못 먹어 나날이 핼쑥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가게의 월세와 관리비 납부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고 아빠 대신 우리가 가서 처리해야만 했다.

상권이 죽은 옛 오피스텔 건물 2층에 위치한 아빠의 낡은 옷가게.

할 수만 있었다면 진즉 빼버리고 싶었던 아빠의 고집과 아집의 산물이다.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 매달 관리비 45만 원에 생활비를 더해 용돈명목으로 아빠에게 드려야 했다. 아빠가 가게를 꾸려나갈 수 있는 상태는 훨씬 전에 끝났던 것 같으나 이 망할 놈의 옷가게는 두 달 전에도 건재했으며 그것은 모두 우리 부부의 희생덕이라 할 수 있기에 하루에 만 원짜리 옷도 팔지 못하는 주제에 월세만 훌렁훌렁 먹어대는 아빠의 가게는 나에게 늘 불만거리였다.


아빠는 매일 동대문 새벽시장에 나가 싼 옷을 사서 (무척 매우 ) 비싸게 팔았다. 장사꾼이 어느 정도의 마진을 남기는 건 불문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정한 마진은 트렌드엔 맞지 않는 구시대적인 설정이었고 결정적으로 아빤 장사꾼보단 사기꾼의 기질이 강했다. 예를 들면 이마트 행사장에서 세일하는 브랜드 신발을 대량으로 사서 자기 가게에서 두 배 정도 부풀려 팔거나 디스플레이된 옷을 본인이 종종 입고 다니기도 해서 주머니에서 영수증이 나와 항의하던 손님과 싸우는 걸 보고 몸서리치며 도망 나온 적도 있다. 장사가 잘 될 턱이 있나.


하지만 아빠는 그마저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소통의 장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친구도 몇 없는 데다 혈육인 고모와는 연을 끊고 살던 아빠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가게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침 10시에 칼같이 출근하여 조그마한 티비를 켜놓고 꾸벅꾸벅 졸다가 오는 게 아빠의 하루일과였고 나는 착한 딸 노릇을 하느라 그것을 어느 정도는 지켜주고 싶어 했다. 노인이 저마저도 못하고 집에 있으면 진짜 우울증이 올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또한 어릴 적 가게는 나의 아지트였다. 친구들과 비상계단에서 실컷 놀다가 가게로 가면 아빠는 늘 간식을 사줬다. 또 부업한다고 덜컥 샀다가 몇 번 쓰지도 못하고 망한 덕분에 빚처럼 떠안은 컴퓨터는 내 차지가 되었고 그렇게 가게는 조그마한 피시방으로 변하기도 했다. 심심하면 가게로 가서 이것저것 하며 놀다가 탈의실이라고 만들어둔 조그맣고 좁은 공간에 들어가 놀다가 아빠랑 같이 퇴근하기도 했으며, 중학생 시절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엉엉 울며 가게로 가면 아빠가 늘 시켜주었던 회덮밥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회덮밥이라는 건 단언할 수 있다.

그러니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저 망할 놈의 가게에 많은 추억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나의 추억과, 기억 그리고 아빠의 일상과 싸구려 옷들이 가득 차 있는 가게는 어느 시점부터 아빠의 삶과 엉겨 자연스레 내 몫의 책임이 되어 있었다.


정리하자


아빠가 이 가게에 다시 올 날이 있을까.

다 낡아 빠진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우리 대머리 할아버지를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 주체할 수 없는 설움이 밀려들어 가게를 정리하기로 맘먹었다.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공간을 오래 남겨둘수록 내 서글픔은 더 커져만 갈 테니.

치매 카페에서, 점점 악화되는 부모들의 차량이나, 집, 가게 등을 정리하는 글들을 볼 때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 단순히 의무 같은 것이라 쉽게 생각했는데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내 부모의 인생, 그 삶에 얽힌 나의 잔뿌리까지도 잘라내야 하는 것임을 추억과 기억은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 수 없으며 실체가 있는 것은 언젠간 사라지는 것임을 느끼고 그 서운함과 허망함에 한참을 앓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등급 외 판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