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그땐 내 인생을 통틀어 경찰과 구급 대원의 전화를 가장 많이 받은 시기가 아닌가 싶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보다 빈도는 적었지만 한 번 한 번의 돌발 상황이 사람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변수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이번 사건은 아침 9시에 시작되었고, 출근한 남편에게 119 구급 대원의 전화가 걸려왔다. 상황은 이러하다.
'할아버지가 넘어지셔서 3시간째 못 일어나고 있다며 도와달라고 119에 신고하셨고 출동했는데 현관 걸쇠를 잠가놓으셔서 문을 못 열고 있다. 작은방 창문을 깨서 창문으로 넘어가야 하니 창문 파손에 대한 부분을 동의해 달라'
한겨울에 창문을 깬다는 말에 잠시 고민했으나, 남편의 회사에서 아빠의 집까지 소요시간은 약 30분 정도, 구급 대원들을 문 앞에서 대기시킬 수 없기에 동의하고 출발하려는 와중 상황이 모두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전화가 다시금 걸려왔다.
"할아버지 일으켜 드렸고 지금은 침대에 앉아 귤 드시고 계십니다. 사위분께 물을 사 오라고 전해달라시네요"
속으로 절망과 한탄을 내뱉고 있는데 이어 두 번의 전화가 더 걸려왔다.
한 통은 파출소.
한통은 아빠였다.
파출소에서는 베란다에서 배고프다 소리 질러 동네를 뒤집어놓은 사건도 그렇고 상황이 반복되자 보호자에게 재차 관리에 대한 당부를 부탁하는 내용이었고
아빠는...
"안 서방~~ 내가 작은방 창문에 유리 깨진 거 다 청소해 놨으니 지금 안 와도 된다. 천~천히 와도 된다~~"
어디서 뭐 무너지는 소리 안 들리시나요.
네. 제 억장이요.
아침 댓바람부터 구급 대원과 경찰의 전화 콜라보로 허겁지겁 숨넘어가는 우리 부부(정확히는 나)와는 달리 아빠는 평화로웠다. 말을 전하는 남편의 무겁고 세찬 한숨에 하잘것없는 내 멘탈은 자글자글 구겨진다. 이쯤에서 남편과 내가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름을 짚고 넘어야겠다.
장기 요양등급 외 판정을 받았고 치매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지만 나는 아빠의 이상행동을 과민하게 분석했고, 그것을 딱 치매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면 그래도 가성치매는 아닐까? 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치매와 정상 그 중간 어딘가에 속해 있다고 생각했으나 남편은 아빠의 기질적인 성격 등을 생각했을 때 '아픈 사람이 본성 나오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지만 아빠에 대한 데이터가 나보다는 부족했기에 그 부분에 대한건 엄마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주로 아빠의 험담) 속에서 정보를 추출, 이내 본인만의 메커니즘으로 아빠 상태에 대한 정의를 내린듯싶었다.
요약하자면 나는 '치매 or 못해도 가성치매다.'라는 입장, 남편은 '아버님은 몹시 매우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그런 판단을 한 것도 뭐,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비정상과 정상 그 애매한 경계선 사이에 아빠가 외줄 타듯 아슬아슬한 선 넘기를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부터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은 누가 봐도 이상했으나, 상대적으로 봤을 때야 그런 거고 절대적으로 평가하자면, 그냥 체면치레 같은 거 다 던져버린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자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것은 아빠의 타고난 이기적 본성과도 연관되어 있을 것이고 이 정도는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 남편의 강철 멘탈 덕일 수도 있다.
혼란스러운 나에게 썬은 종종 치매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노인의 심리 변화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었고 꽤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도 남편과 나의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남편은 본인이 판단한 방향으로 아빠를 대했으나 슬슬 아빠의 고질적인 패턴(본인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어떤 민폐도 아랑곳하지 않아 하는)에 짜증을 느낀듯싶었다.
"오늘 아버님 요양병원 이야기하고 바로 병원 모셔야겠어. 안되면 강제입원이라도 알아보자. 이렇게는 안 되겠다. 일도 못하겠고"
구급 대원의 전화만 없었더라면 오늘은 꽤 기대해 볼 만한 하루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썬의 남편과 처음으로 만나는 부부동반 모임이 약속되어 있었다. 썬은 많은 위로를 주는 멘토 같은 존재였다면 썬의 남편과 내 삶은 비슷한 부분이 많았고 만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따라서 흥분된 상태로 오늘 저녁만을 기다려왔으나 개구쟁이 대머리 노인의 아침 소동으로 기분이 한껏 눅눅해진 채 아빠 집으로 끌려가야만 했던 저녁, 남편은 오늘만큼은 어떻게든 요양병원으로 모시기 위한 설득을 성공하리라 결연한 마음을 미간에 잔뜩 담은 채 운전했고 나는 남편에게 밀리는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되면 맘이 약해져 중간에 허튼소리나 찍찍하게 될 게 뻔하므로 차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길지 않을 거라는 남편의 말과는 다르게 점점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카톡으로 중간중간 들어오는 보고를 정리해 보자면, 전과 다름없는 대화의 번복. 절대 죽어도 요양병원만은 싫다!! 본인이 거동이 불편해져 생활이 어려운 건 너희들(우리 부부)이 좀 더 자주 와서 보살피면 될 일이고, 그마저도 힘들면 사람을 써라.라는 아빠의 의지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몸 상태는 의지가 무색하게 가변적이었다. 좋지 못한 신호라는 것이다. 어느 날은 좋아지고 어느 날은 나빠지고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했으나 그날만큼은 남편이 보기에도 안 좋다 싶을 만큼 개구리처럼 배가 부풀어 오르고 다리가 부종으로 인해 퉁퉁 부어 정말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안 좋아 보였다고 한다. 구급 대원도 빠른 시일 안에 병원으로 모시라 권고했지만, 우리의 사정을 듣곤 딱하다는 듯 또한 이런 케이스들이 많다는 듯, 알겠다 하시며 말을 아끼셨다.
근래 사건들이 맞물려 초반과는 상황이 달라졌기에, 남편 입장에선 어느 정도는 설득의 가능성이 있다 생각하고 다시 도전한듯싶었으나 밖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게 걸쇠를 걸고넘어져서 구급 대원을 불러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일하는 사위에게 시간마다 전화하여 업무를 방해하고, 이런 행동에 대해 아빠는 전혀 거리낌도 없었고 부끄러움도 없었다. 집에 모신 지 보름째. 아픈 노인이 혼자 지내는데 불편함이 많을게 분명한데도 아직까지 '날 보살피기 위해 방법을 모색해라 꿀리면 뒈지시던지'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기에, 오늘 사건을 약점 잡아 이성과 논리로 무장하여 접근하려던 남편의 사기가 와장창 무너지고 결국 한 시간의 입씨름 끝에 처절한 패배를 안고 집을 나서야 했다.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병원에 모셨을 때보다 더욱 아득하고 막연했다.
그래도 병원에서는 조금이라도 안 좋아지면 바로바로 콜이 왔고 그때마다 의료적인 케어를 받을 수 있었기에 내 정신적인 부분만 신경 쓰면 되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있다가 갑자기 집에서 훅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감이 몰려왔다. 아빠와 딸의 애틋한 이별 따위의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픈 아빠를 아파트에 홀로 처박아두고 쓸쓸히 죽게 하려는 마음은 1도 없었다.
뒤늦게 만난 썬과 썬의 남편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병원에 보내야죠.."라는 의견을 보태주었다. 결국 아빠에게 휘둘리지 말고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생각대로,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게 맞다.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는 아빠를 꽁꽁 묶어서라도 요양병원에 눕혀 약도 먹이고 밥도 먹이고 하는 게 자식 된 도리로 해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상태보단 나을 테지. 모두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 그게 맞는다며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 우리 부부가 더욱 강경하게 아빠를 대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빠가 집을 떠나기 싫어하는 이유가 와닿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의 주도권을 뺏기게 되는 기분은 어떤 걸까.
1년 전의 글을 쓰는 지금. 여적 내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불안에 질려 정신과 약을 털어 넣을 수밖에 없었던 트라우마의 정체는 이 물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삶의 주도권이 더 이상 나에게 없을 때,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싫은 곳으로 가야 하고, 그곳에서 삶을 마무리해야 한다면. 나 역시 아빠처럼 죽어도 가지 않겠다, 보내지 말아 달라 자식들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울고 싶어지지 않을까? 익숙한 천장. 익숙한 벽지. 내가 이뤄내어 모든 것이 내 편인 것들 속에서 살다 조용히 죽고 싶은데 자식들에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생존'자체가 민폐가 되는 날 이 소중한 것들을 스스로 버리고 뒤돌아서야 한다면, 나는 과연 의연하게 버텨낼 수 있을까? 아니다. 못할 것이다. 좁고 허름할지언정 그 임대 아파트 한 칸만큼은 아빠의 오롯한 편이었을 것이고, 낡아빠진 가구들이 아빠의 증명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아빠의 마음에 슬프게도 깊은 공감을 해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괴로웠다. 자식으로서의 아빠를 책임져야 하는 딸인 '나'와 인간으로서의 아빠에게 공감하는 '나'의 입장 차이는 첨예하게 대립했고 그 틈바구니에서 튀어나오는 부산물들은 매번 내 속을 지저분하게 헤집어놓고 사라졌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불현듯 튀어나오는 아빠 미워!! 미워죽겠어!!라는 마음을 보쌈과 함께 입안에 한껏 욱여넣고 고함을 치다가 이내 아빠가 저렇게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게 너무 불쌍하다며 울먹거리는 마치 조울증 말기처럼 보이는 나를 썬의 부부는 그저 따듯하게 바라봐 줬다.
처음 만나는 썬의 남편은 훤칠한 호남형으로 웃을 때 상대방마저 속이 시원해지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딥-다크 한 유년기 청년기가 나와 비슷하게 맞아떨어졌기에 나야 엄청 반가웠지만 그건 내 입장이고, 혹여나 이런 만남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진 않을까 걱정을 하고 갔으나 서글서글 따듯한 리액션으로 오히려 집돌집순이 성향이 강하고 사람들에게 낯을 많이 가리는 우리 부부의 경계심을 단숨에 녹여주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수록 많은 대화가 오갔다. 집안의 문제 노인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깊은 공감도 하고 웃기도 하고 또 한숨 쉬며 소주잔을 기울여야 할 때도 있었다. 그 대화에서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사랑과 미움에 선을 긋고 이 둘을 나누어 생각하려 할수록 괴로워진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밉고 짜증 나고 어쩔 땐 내 인생의 막대한 걸림돌같이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고, 애틋하고 안쓰럽고 불쌍하고 더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다는 마음도 당연한 것이라는 것. 그런 스스로에게 '미친년 널뛰듯 하네' 라며 가혹한 조소를 날리지 말고 모든 감정을 자연스레 포용하고 인정해야 조금이라도 덜 괴롭다는 것이다. 이 부부는 우리보다 좀 더 오래 먼저 겪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기에 가벼운 대화에서부터 진지한 대화까지 모두 다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런 그들에게 아빠를 미워하는 이유도, 사랑하는 이유도 짙게 공감받고 나니 아침의 소동으로 한껏 뒤집혔던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싫은 아침과 좋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