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북 May 05. 2023

남편이 폭발했다.

내가 실수했어, 그래도 아버님에게 그렇게 욕해서는 안 되는 건데..


엄마와 나는 동동거리며 거실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마치 아빠가 이상해진 그날의 새벽같이, 아니 그때보다 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굳게 닫힌 안방 문을 열어볼 생각조차 못 한 채, 통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발바닥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올라온다.


오늘의 사건은, 이른 저녁 퇴근을 마치고 피곤한 표정으로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남편의 휴대폰이 울리면서 시작된다. 남편의 전화벨 소리만 들으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심장이 철렁-한다. 그 너머에 아빠가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닫힌 방 안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린다.


'아, 예예 아버님 식사는 하셨어요? '


늘 시작되는 인사말로 아빠의 전화를 받아 든 남편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한 건 통화를 시작한 지 3-5분쯤 지나서 일 것이다. 밥을 차리던 엄마와 나는 남편의 목소리에 놀라 하던 일을 멈추고 안방문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아니라고요, 아버님, 아니에요"

"...."

"아닙니다 진짜 왜 그러세요."

".....!"


안방 안에서 웅얼웅얼 대는 울림소리가 불안하게 집을 진동시킨다. 남편의 목소리 톤이 일정하지 않고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대화할 때 늘 낮은 톤을 유지하며 평온한 텐션을 지키고 있던 남편인지라 불안함은 더 가중된다. 우리 모녀는 식어가는 국그릇처럼 서늘한 기분을 느끼며 방문에 귀를 대보기도 하고,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켜기도 하는 둥 불안의 연기가 자욱한 집안을 환기시키려 노력했으나 안방을 쩌렁하게 울린 남편의 고함소리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느꼈다.


"뭐라고..?@>@ 이.. 새끼야???"


불안의 시간이 좀 더 지난 후, 문을 열고 나오는 남편의 얼굴은 무슨 일이냐 감히 물어보기도 조심스러울 만큼 잿빛이 되어있었다.


"미안해. 놀랬지"

"아니 , 아빠가 뭐라 그랬는데 그래? 오빤 괜찮아?"

"내가 실수했어, 그래도 아버님에게 그래서는 안 되는 건데.."


남편이 아빠에게 욕한 것 따위는 현 상황에서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도대체 아빠가 무슨 말을 했기에, 지금까지 보살 같은 마인드를 유지하고 있던 그의 평정이 깨져버렸는지. 그것에 대한 사죄를 나와 엄마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인지 그것만이 내 유일한 관심사였다. 남편의 꾹 닫힌 입이 열린 건 저녁 식사가 모두 끝난 후였다. 사건은 아빠의 갑작스러운 피해망상 증상으로 시작된듯했다.


다짜고짜 너희들이 집에 CCTV를 달았냐며, 이건 인권침해니 프라이버시 침해니, 감시하지 말라. 당장 떼 가지고 가라는 둥 소리를 지르셨고 당연히 그랬을 리 없는 남편은 아니라며 달래 드렸지만 거짓말하지 말라며. 남편을 후안무치로 몰아가는 아빠의 막무가내 언행에 지금까지의 피로도가 누적된 남편의 언성도 점점 올라갔던 것.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장인의 어거지를 받아내면서도 평정심을 지키려 노력한 사위에게 아빠는 선을 넘었던 것 같다. (남편은 이 부분을 설명할 때 잠시 멈칫했고, 말꼬리를 흐리며 넘겼으나 분명 아빠가 남편의 역린을 건드렸던 것이 분명하다.) 꾹 눌러 참던 남편의 퓨즈가 나가듯 잠시 나갔다 들어온 사이 제3의 인격이 아빠에게 욕설을 날렸고 상황 종료. 그것이 내가 판단한 현 상황이었다.


'그럴만한데..?'


남편의 실수도 , 예민했던 것도 아니다. 그나마 남편의 초월적인 인내심이 지금껏 이 지점까지 버티게 해 주었으며 진즉 굴복해 버리고 남편의 인내심 뒤꽁무니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우리 모녀는 무척 송구한 상황이 되었으니, 아빠에게 욕 한마디 날렸다고 감히 비난할 수가 있을 리가. 남편은 이미 죄 없이 받아먹은 욕이 한 바가지다. 매번 우스개로 하는 말이 아빠는 아들이 없는걸 천운이라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딸인 나야 대충 넘길 수 있다 치지만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 중 저 말도 안 되는 악다구니를 평온한 맘으로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내가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다면... 아마 우리는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프로에 나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버님이 이제 자기 돌보러 안 와도 된다고 하시더라. 이웃들도 있고 동사무소 직원들에게 부탁하면 되니까, 알아서 살아남을 테니 그냥 내버려 두라고. 자긴 죽어도 이 집에서 죽겠다고 하시길래 알겠다 하고 끊었어. 그래도 내일 또 가봐야지 뭐."



하.

아버지, 우리 아버지..

이렇게 착한 사위한테 이렇게 할 일이냐고요??







"대환장파티야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나도 그 맘 이해해. 정말 아버님 너무하신다.."


전날 만나 따듯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썬에게 하루도 안 돼서 또다시 넋두리를 털어놓는다.

시아버지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킨 후 잠시나마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썬은 매일 똑같은 주제로 울먹이는 나를 매번 다독여주는 훌륭한 상담자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천시의 요양병원에서 쫓겨나 고양시로 전원한 썬의 시아버지도 나름 병원생활에 적응을 하셨는지 아니면 그 병원에서 웬만한 이슈들은 소화를 하는 건지 몰라도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였고 나에겐 그 사실 자체가 큰 희망이자 목표점이 되었다. 저 병원에만 입원시키면 나를 괴롭히는 이 모든 문제들이 다 끝나겠지?


큰 희망을 가질수록, 큰 조바심이 그림자처럼 내 발끝에 머물렀다. 하루하루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내 몸이 99프로의 불안과 1프로의 우울로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약 봉투를 털어 넣어야 했는데 일련의 과정을 겪어내며 나라는 사람이 과연 이런 고통을 겪어낼 수 있는지, 그 고통의 한계점이 어디까지인지 파악하는 게 참 중요하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약의 도움이나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타이밍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와 연관될 경우 사회적인 관점이나 통념적인 부분에서 자식이라면 당연히 해야지라는 생각이 보호자들을 더욱 나락으로 처박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변의 시선도 건조했다. 아빠라는 거대한 불안은 공감과 위로를 쉽게 빨리 탈수시켜 버린다. 덕분에 나는 늘 목구멍이 쩍쩍 달라붙는 갈증상태였고, 한 모금의 위로라도 절실하여 주변의 몇 명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러나 가장 믿고 따르던 지인에게마저 "아무리 그래도 아픈 아버님을 저렇게 집에 혼자 두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은 무척 슬펐다. 물론 단편적으로 제공한 나의 넋두리만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조언한 지인의 말에는 악의가 없었다. 그러나 나에겐 1부터 10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그래 네가 참 많이 힘들겠다.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겠느냐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런 나에게 썬은 조심스레 상담치료를 받아보지 않겠냐 제안했고 나는 선뜻 연락처를 받아 들었다.(이 과정에서 그녀는 본인이 사이비(..)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음)


그 후 그녀가 소개해준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으나 나의 감정상태가 너무 피로했던 탓인지 크게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상담치료를 시작했다는 사실자체는 궁극적으로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는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후의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싫은 아침과 좋은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