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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Jun 18. 2023

완결

나와 아빠의 이야기를 하자


그해 연말

2020년 12월 31일

아빠가 내 곁을 떠난 지 약 3개월 후 그것이 시작되었다.




연말맞이 홈 파티를 하자며 부산스럽게 음식을 장만하고, 값비싼 케이크며 와인이며 멋들어지게 준비했던 12월의 끝날이었다. 남편과 오붓하게 '이번 년도 진짜 빡셌지만 서로 잘 살아남았다' 자축하며 티비에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만족스럽게 잠자리에 누운 그날 새벽부터 내 몸에는 새빨간 두드러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지 말단에서부터 시작한 두드러기는 약을 먹고 하루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심상찮음을 느껴 달려간 병원에선 원인도, 치료방법도 알 수 없다며 절망스러운 진단을 내주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는 합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여러 군데의 병원을 오가며 여러 번 처방을 바꾸어 약을 먹었으나 차도는 없었다. 그렇게 두드러기와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이것이 장장 6개월간 나를 괴롭히게 될 줄이야, 또한 내 인생을 바꿔놓게 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을까. 그때만 해도 단순히 먹은 게 잘못되었거나, 면역력이 떨어졌을 거라는 둥의 보편적인 이유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2주가 넘게 지속되었을 때 나의 진료기록지에는 '원인미상'이라는 코드가 붙었고 무엇으로부터 촉발된 건지 알 수 없는 미지와의 조우가 또 나를 자욱한 공포로 던져 넣었다.

흉측했다. 자고 일어나면 팔다리를 호피무늬처럼 새빨갛게 뒤덮은 두드러기는 봐도 봐도 낯설었다.

딱히 피부에 연연하던 타입은 아니었지만 변수적인 상황이 고통스러웠다. 의사들은 이 두드러기가 목이나 얼굴로 침범하면 호흡 곤란으로 큰일 날 수 있으니 바로 응급실로 달려가라고 했고, 때문에 새벽마다 일어나 온몸을 살피며 보기 싫은 두드러기를 감시해야만 했다.


이 현상을 본 나의 주변인들은 홧병이 아닐까? 라며 이 괴질의 근원을 추정하기도 했고 이제 좀 편해질 때도 됐는데 왜 마음을 다잡지 못하냐며 책망하기도 하였다. 간혹 '먹는 걸 조심했어야지~'하며 속 편한 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으나 오히려 그것이 나에겐 조금 위안이 되었다.'그래. 큰일이 아닐 수도 있잖아. 뭐 잘못 줏어먹고 이런 거겠지'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 대혼란의 상황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주변인들의 말에 꽤나 많이 휘청이고 있었기에 어떤 말도 와닿지 않았으며 또한 아프게 와닿았다. 실로 이해가 안 가는 것이었다. 화병이라니? 나는 괜찮은데? 난 지금 너무 자유로운데? 


아빠가 떠난 후 지긋지긋하게 내 발목을 잡던 미적지근한 불안감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그것은 부모를 잃은 슬픔보다 더 거대한 무엇이었다. 처음으로 발 뻗고 편안하게 잠을 취했고 남편과 여행도 다녀왔다. 평화로웠다. 어쩌다 발길에 진득한 슬픔이 채일 때면, 아비를 잃었으니 이 정도의 슬픔이 없을 수야 있나. 하며 기꺼이 받아 들였다. 하지만 그건 나의 자만이었던 걸까. 온몸을 지글지글 덮어버린 두드러기들은 마치 분노한 그 무엇처럼 보였고 이것이 나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건 한 달 정도 지나서였다.


"내가 뭔가 잊고 있는 거 아닐까?"




'아니야. 나는 지금 완전히 자유로운걸'

필사적으로 그런 생각들을 외면하며 버티던 어느 날. 두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설거지를 하던 중 손이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머리가 띵해지며 빙글빙글 돌았다.

잠시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데 호흡이 점점 힘들어지며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아득함과 공포였다. 설거지하다가 숨 못 쉬어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다시 정신의학과의 문을 두들겼고,

진단명은 '공황장애 초기'와 '극심한 범불안장애와 경도의 우울증'이었다.생각보다 꼬리가 긴 진단명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부정하고 싶었다.

황당한 표정으로 " 저 괜찮은데요? "라고 말하니 "괜찮으실 리가 없잖아요. 불안도와 스트레스가 굉장히 높은 편이세요"라는 말을 듣고 처방전을 손에 든 채 약국에 덩그러니 앉아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정신과를 방문했을 땐 원인이 명료했다. 아빠 그리고 치매.

그러나 두 번째 방문인 지금은 왜 내가 다시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야 하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음표만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약을 입에 털어 넣었고 그제야 나는 모든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무너지고 있었구나!

마치 모래성처럼 서서히 침하하고 있었구나.'


약물은 현재의 감정을 눌러준다기보단 거부하고 인정하지 못했던 비정상적인 일상들을 직시할 수 있게 도와줬는데 과거로 돌아갈수록 나의 이상행동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빠가 가장 아끼던 우리 집 셋째 고양이가 비실거리던 건 아빠의 장례식을 치른 당일 저녁이었다. 처음 시작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왜인지 밥을 먹지 않고 자꾸 구석으로 숨어드는 녀석에게 불행의 그림자를 느낀 나는 "아빠! 얘는 데려가지 마. 제발"이라는 말을 중얼대며 한시도 쉬지 않고 일주일을 내리 고양이에게 매달려 집착 수준의 간호를 했는데 병명이 그저 -감기-였던 고양이는 좋아졌으나 나는 이후로 점점 나빠졌다.

멀쩡하게 잘 사는 나머지 고양이 둘을 끌어안고 갑자기 죽을까 봐 숨을 헐떡헐떡 거리며 검사를 맡겼고, 멀쩡하단 진단을 받고 나니 다음은 나였다. 눈이 침침해지는 기분이 들자마자 실명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다. 녹내장. 망막위축.. 새벽 내내 검색을 하다 아침 일찍 안과로 달려가 2시간이 넘는 대기시간을 견디며 고작 받은 진단은 '안구건조증. 경미한'이었다. 또 어느 날은 소화가 안 돼서 즉흥적으로 위, 대장 내시경을 예약하고 진료를 받았다. 이때 나는 이미 위암 말기 환자와 같은 체념을 하고 있었다. '분명 나는 어딘가가 아플 거야. 절망적인 진단을 받을 거야' 마치 그런 진단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질리도록 병원에 다녔다. 건강염려증이 다시 돌아와 완전히 폭주하고 있었다. 그러다 남편과 엄마까지 들들 볶아대는 통에 제발 그만하라는 가족의 성화에 잠시 멈췄지만 하루 종일 내 몸의 이상 징후를 탐색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이상한 (?) 나날들이 이어졌음을, 약을 먹고 비로소 인지할 수 있었으니 이쯤에서 향정신성 의약품에 대한 찬사를. (정신과 약은 나쁜 게 아닙니다.)


첫 번째 손님(두드러기)과 두 번째 손님(공황장애)의 소개가 끝났다. 그러나 이 화려한 애프터파티의 호스트는 따로 있었다.





'아빠'

정말 징그러울 만큼 자주 꿈에 나타났다. 뭐가 그리 한스러운지 늘 노기를 띤 얼굴로 말이다.

흐름은 늘 비슷하다. 어릴 때 살던 반지하 셋방. 혹은 정체 모를 골방. 폐가. 다 쓰러져가는 컨테이너 창고가 주 배경이다. 나는 아무 걱정 없이 남편과 데이트도 하고 게임도 하고 신나게 놀다가 문득 깨닫고야 만다. 아빠는 사실 살아있고 그를 찾아간 지도 전화를 한지도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아. 내가 아빠를 완전 잊어버리고 방치하고 있었구나!'

속이 거북해질 정도의 공포와 불안이 뒤덮고 곧이어 나는 서른넷의 성인이 아닌 겁에 질린 나약한 어린아이로 퇴행한다.

'돌아가서 아빠를 보살펴야 해. 다시 시작해야 해.'

'하지만 싫어... 죽기보다 싫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가감정은 꿈속이지만 명료하다. 어찌나 섬칫한지 온몸에 땀이 맺힌다. 그리고 내 선택은 언제나 하나다. 기어코 아빠가 홀로 방치되어 있는 곳을 찾아가 눈을 질끈 감고 문을 여는 것이다.

어두침침하고 지저분한 방.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과 썩어가는 식료품들이 곳곳에 나뒹굴고, 시끄러운 티비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아빠는 그 한가운데서 원망스럽게 벽을 노려보고 있다. 가끔은 친할머니도 함께 세트로 구성되어 있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둘 다 돌봄 받지 못해 방치된 노인의 모습으로 출현한다. (할머니는 분하다. 내 몫이 (?) 아닌데.. 왜..)


아빠는 어떨 때는 어디 하나 아픈 곳 없는 60대의 (내가 기억하는 가장 젊은 모습) 모습일 때도 있고,

여기저기 똥칠갑을한 채 담배와 술에 찌들어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의 모습이 되어있기도 했다.

어쨌든 죽기보다 들어가기 싫은 그 방으로 발을 내디디면, 이내 불벼락 같은 아빠의 책망이 이어진다. 그러면 나는 "아.. 아빠가 돌아가신 게 꿈이었구나.. 난 다시 아빠를 돌봐야 하는구나. 하루에 세 번씩 전화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아빠를 보러 가야 하고 이 지옥 같은 반지하에서 놓여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 " 하는 좌절감을 느끼고 순간 모골이 송연해져 '헉'하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는 것이 1편.

어쩌다 길거리에서 아빠를 마주치는데 모른척하고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것이 2편이다.

아빠는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지만 그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몸을 숨기곤 그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이런 꿈들을 꾸고 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고 죄책감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 꿈 이야기에 못내 맘이 안 좋으셨던지, 시어머니는 아빠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의 이름까지 절에 올려 제를 지내주셨다. 하지만 아빠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꿈에 나왔다.

"어쩌라는 거야 씨발. 나 좀 그만 괴롭히라고!!!"

지겹다. 아빠 진짜.


가끔은 치받히는 분노를 못 이기고 모두 집어던지곤 차마 글로 적지 못할 쌍욕을 섞어가며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나한테 해준 것도 없으면서 뭐가 그리 억울하다고 꿈에 나와 괴롭히는지 증오스럽고 원망스러웠다. 그러다가도 아빠와의 추억이 서린 것들을 지나칠 때면 갑자기 "아빠 보고 싶어.. 엉엉엉"하면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오열을 했다. 어쩔 땐 분노가, 어쩔 땐 슬픔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타이밍에 튀어나와 발작처럼 이어졌다.

"괜찮으실 리가 없잖아요"

의사의 말이 귓가에 서성대며 떠나지 않고 있었다.





정신과 약에 적응이 될 어느 무렵. 고장 난 전자 기계를 뜯어보듯 나를 분해하여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와의 이별을 전혀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은 아빠에 대한 사랑과 증오 모두 스스로 거부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랑하기엔 그로 인해 희생된 나의 유년 시절이 억울했고, 미워하기엔 그가 나에게 남겨준 작은 편린 속에 담긴 행복을 무시할 수 없었으니 딜레마에 빠져 아빠를 마음껏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하고 두 손에 꼭 쥔 채 어디론가 질질 끌고 다니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 무겁고 버거운 것이다.

현 상황의 패인(敗因)은 무엇인가.

그건 아마도 내 마음속에 자리 잡힌 거대한 공허를 보지 못한 것이 아닐까.

정리해 보자면 나의 인생은. 어릴 적 그나마 애착이 형성되었던 엄마가 집을 나가고, 예민하고 멋대로인 아빠와 함께 살아왔다. 어린 나이에 보호받지 못하고 견디기 힘든 풍파를 고스란히 맞고 지냈던 삶에서 공허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름 스스로 잘 지켜왔다고 자부했다. 이런 환경에서도 이만큼 잘 버텨냈으면 나는 이겨낸 것이라고. 승리한 것이라고 자만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스스로를 속여 넘기고 있는 와중에도 내 마음속의 공허는 점점 커지고 있었을 것이고 우연히 그 구멍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 안을 들여다볼 생각보다는, 잘못 본 것이겠지. 하며 넘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를 아빠라는 존재로 덮었을 것이다. 나는 늘 내 상처와 결핍보다 아빠를 부양하고 사는 문제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인생의 난제 같은 존재였으니 유년의 상처는 언급하는 것마저도 사치스럽다고 느끼던 시절도 있었다.

마치 맨홀 뚜껑처럼 단단하게 덮어둔 나의 공허는 그의 죽음으로 그 민낯을 드러냈다. 그렇게 깊이도 넓이도 알 수 없는 공허가 내면에 존재함을 인지했으나 나는 아직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이토록 힘든 것이 아닐까? 이제 그 공허를 만나야한다. 험난할 것이다.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게 아니라며 변명하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도 있겠지.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는 합니다. 언제 일진 모르지만..' 이번엔 두드러기 진단을 내려줬던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니 해야 한다. 아빠와 이별을 하기 위해선 필요한 과정이니까.

'나와 아빠의 이야기를 하자'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외침이어도 좋다. 이 공허를 한번 이야기해 보자. 언제일진 모르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한참을 고민하다,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 위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간신히 한 문장을 완성한다.


"서른넷 딸, 여든둘의 아빠와 엉망진창 이별을 시작하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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