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27탄
4월 21일 (일) 시바스에서 괴레메로.
괴레메(카파도키아)로 향했다. 사진과 영상으로는 실컷 보았던 버섯 모양의 바위가 솟은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지만 기대감은 크게 없었다. 마치 랜선친구를 직접 확인하러 가는 느낌일까? 오전 나절 달려 괴레메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가 잘 아는 그 곳은 없고 온통 낯설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풍경뿐이었다. 튀르키예는 산도 바다도 들판도 도시도 다 좋지만 가장 엄청난 경험 한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괴레메에서의 캠핑을 꼽을 것이다.
좋은 곳이 너무 많아 캠핑장소 정하기 어렵다니
사방을 둘러봐도 모든게 대단했지만 우리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다. 구글맵을 펼치면 수도없이 나오는 관광명소 중 무엇을 봐야할 것이며, 무엇보다 버킷리스트인 열기구와 함께 캠핑카 사진을 촬영하려면(열기구 안탐) 어디가 가장 좋은 스팟인가. 그곳은 캠핑이 가능한가? 그리고 열기구는 과연 뜰 것인가?
일단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Devrent Valley”에 갔다. 낙타바위도 있고 멋진 곳이다. 무엇보다 무료! 인근에 바로 계곡을 발 아래 조망할 수 있는 드넓은 노지가 있었다. 괴레메에 오면 정말 다양한 뷰포인트에서 멋진 노지캠핑이 가능하다. 심지어 우리처럼 이륜 포터 캠핑카도 살살 들어가면 진입 가능한 노지가 많다.
우리는 잠시 여기 머무르며 오후 일정을 짰다. 우리 말고도 멀찌기 두어대의 캠핑카들이 머무르고 있었다.(이후 여기서 만난 폴란드 캠핑카를 파묵칼레에서도 만나게 된다) 슬로베니아에서 왔다는 부부와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기념사진도 남겼다. 반드시 1박 하고 싶은 공간이었지만 좀더 움직여보기로 한다. 풍선을 너무 멀리서 조망할 것 같은 위치였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선셋 뷰포인트라는 레드밸리, 장미계곡 인근 어드메를 향했다. 도착하니 역시 큰 노지가 있었지만 주로 ATV나 말 타기 등의 투어를 하며 계곡을 관람하는 부지인 듯 했다. 온 김에 산책이나 하기로 하고 가볍게 나선 길이 2시간이 됐다. 남들은 지프 등을 타고 다니는 길을 흙먼지 뒤집어쓰며 기어올랐다 내려갔다 하며 도보 탐험을 하니 좀 힘들긴 했지만 정말 자세히 카파도키아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유료 입장 관광지도 좋지만 이런 곳들도 대단히 아름답다. 여유가 된다면 트래킹은 꼭 해볼만 하다.
해가 기우는데 아직까지 잘 곳을 정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럼 시내에 있는 일몰 전망대나 가볼까 싶어 이동했다. 살면서 멋진 야경을 많이 보았지만 기억에 길이 남을 일몰이었다. 신비한 지형과 도시의 윤곽이 어우러졌다. 아래쪽에서는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재즈가 울려퍼졌다. 비싼 돈을 치르고서라도 저기서 와인 한잔 마시면 어떨까 싶었지만, 장기여행하면서 단기여행자처럼 돈을 쓰다간 경비를 조기 탕진하기에 바로 접었다. 그보다 좋은 것이 캠핑카에 앉아 멋진 풍경을 보며 한 잔하는 것이니까!
일몰전망대도 일출 및 열기구 관람 명소이긴 하지만 캠핑카를 세울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캠핑카가 일출포인트에 함께 있을 수 없기에 제꼈다. 파크포나잇 앱을 신나게 검색한 결과 러브밸리 인근 주차장을 찾아냈다. 협곡을 조망하는 큰 노지인데 하룻밤 80리라면 충분했다. 고르지 못한 노면 상태로 몇 번의 꿀렁임 뒤에 도착한 곳은 꽤 마음에 들었다.
새벽이 되니 차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 날 풍선은 바람이 불어서 뜨지 못했다. 그럼에도 협곡을 내려다보며 맞이한 일출은 멋졌고, 우리는 캠핑카 지붕에 올라가 따뜻한 차를 마시며 풍경을 좀더 감상했다. 웨딩스냅촬영이 곳곳에서 진행됐다. 풍선이 뜨길 기대했을텐데… 사는게 원래 복불복이지. 그럼에도 행복할만한 이유는 언제나 있는 것처럼 그들도 오히려 바람불어 쨍한 하늘이 좋을 수 있는 것이다.
4월 22일, 뜻밖의 장소가 주는 기쁨
우리는 조금 관광을 한 뒤 이곳에 다시 오기로 했다. 그리고 유료관광지 중 엄선하여 파샤바계곡을 둘러보고 시내 식당을 역시 엄선하여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었다. 오후가 되니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땡겨서 이웃마을 ‘아바노스’의 스타벅스로 이동했다. 튀르키예 스벅이 싸다고 하던데 생각보다 저렴하진 않았고 (몇백원에서 천원 정도 저렴) 무엇보다 너무 묽었다. 그리곤 아바노스를 산책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바노스는 튀르키예 여행 최고의 산책이었다.
늘 우리는 관광지를 찾는다. 막상 관광지에 가면 봐야할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숙제를 하듯 돌아다닐때가 많다. 그런데 꼭 뜻밖의 장소에서 최고의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심지어 날씨 좋은 어떤날 버드나무 흔들리는 강변을 걷는 것 만으로도, 피크닉 나온 사람들 표정을 보는 것 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날이 있다. 아바노스의 그날이 그랬다. 그래서 도자기의 고장이라는 이 곳에서 찻잔세트도 하나 사고 달짝지근한 애플티를 한잔 대접받기도 했다.
저녁 무렵 다시 러브 밸리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내일 새벽은 열기구가 뜰 것 같으니 신중을 기해 자리 선정을 했다. 그리고 후회없을 자리를 잡았다. 절벽이 발아래 있으면서도 이름모를 들꽃이 앞마당에 피어있는 프라이빗한 곳이다. 해가 지고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맑은 날씨 덕에 저멀리 설산의 봉우리가 더해져 캠핑카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놓여 있다. 캠핑카로 튀르키예를 여행하는 상상을 많이 했었다. 이런 풍경일거라고 상상 못했지만, 이거였구나 싶다. 이게 캠핑카 여행의 기쁨이구나.
4월 23일, 버킷리스트
새벽녂 밖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열기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새벽 5시30분밖에 안되었다. 우린 서둘러 나가 캠핑카 지붕으로 올랐다. 그동안 열기구 사진을 얼마나 많이 봤던가. 하지만 직접 마주하니 내가 알던 그게 아니구나 싶다. 꿈꾸던 파노라마 속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버킷리스트를 이룬 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지중해를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