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라시아 횡단 캠핑카 여행의 참맛! 발길닿는 대로 가다

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28탄

by 공구부치


2024년 4월 23일 (화) 괴레메를 떠나 메르신으로.


열기구 탑승은 너무 비싸서 우리같은 쫌팽이들은 가심비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스팟 사냥꾼이 되어 2박3일…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환상적인 경험 뒤로 피곤이 몹시 몰려왔지만 낮잠은 못자는 체질이라 정리하고 길을 떠났다. 캠핑카여행은 떠나고 싶을때 떠날 수 있다는게 장점이지.


다음 목적지는 남쪽 지중해를 끼고 있는 ‘메르신(Mersin)’으로 정했다. 원래 아는 동네는 아니고 처음 들어본 곳이다. 단지 거기에 구글 평점 5의 한국 떡볶이집이 있다해서 가는 길이다. 한국 떠난지 50일만에 처음 가는 한식당이다.

데린쿠유 지하도시


가는 길에 데린쿠유 지하도시를 방문했다. 튀르키예는 인플레이션과 함께 관광지 입장료도 함께 오르는 중이기 때문에 엄선을 거듭하여 선정된 곳이다. 초기 기독교가 박해를 피해 들어간 지하도시. 이 곳의 최초 건설자들은 적어도 4천년 전에 여길 만들었고 기원전 700년부터는 많은 이들이 여기서 살았을 것이라 추정한다. 아무튼 지하8층 깊이에 완전한 도시가 건설되었다는 건 지금봐도 놀라울 뿐이다. 미로로 연결된 통로는 교회, 학교, 식당, 마굿간 등 여러 방으로 연결되고 지상으로 통하는 거대한 통풍구, 적을 막기 위한 돌덩이로 된 문 등은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튀르키예-그리스를 지나며 성지순례 중인 한국인들을 많이 만났다. 이 날도 어김없이…


이동 중에는 대화가 많다. 주제는 주로 여행에 대한 것이다. 이 날의 질문은 “우린 장기여행이 맞을까? 장기여행은 왜 하는가?“였다. 가끔 끊임없는 이동 생활이 피곤해질때 집생각이 나기 때문. 눈 돌아가게 멋진 여행지에 며칠 있다가 문득 방문한 소도시의 평범한 한낮의 강변 풍경에 행복했다면, 망원한강공원을 산책하다 새로연 가게에서 맛있는 걸 먹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일지 모른다.


관광지도 가지만 장기 여행을 하면 길 가다 우연히 만나는 사람이나 음식, 길, 사건사고가 더 기억에 남기도 한다. 때로는 구글에서 유명한 식당이 아닌 맛있는 현지 식당을 방문하고 왜 여길 아무도 모를까 싶다가도 주위를 둘러보면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었던 것 처럼. 오늘도 그랬다. 대를 이어 피데를 굽는 식당에 들러 맛있게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대를 이어서 하는 피데식당

메르신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드디어 문제의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맞닥뜨렸다. 튀르키예는 HGS라는 일종의 하이패스 시스템인데 톨게이트에서 현금/카드를 받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당황한 우리는 옆으로 들어가 경찰들에게 요금을 어찌내냐 하니 그건 PTT(페테테)라는 우체국에서 납부 가능하다며 차이 한 잔 하고 가라고 한다.(15일 이내 또는 9회까지는 무임이 용인(?)된다고 한다.) 고속도로 옆 노상에서 경찰들과 차이 한 잔 하며 스몰토크를 잠시.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튀르키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차 한잔 할래?’를 인사처럼 자주 한다. 주유소에서, 정비소에서, 그릇가게에서, 또는 이렇게 길가에서… 우리는 무수한 차이 한잔을 얻어 마셨다.


메르신에서 먹은 떡볶이

차를 달려 저녁 무렵 넘어 한국식당 ’무트파크‘ 에 도착했다. 메르신은 튀르키예에서 2번째로 큰 항구가 있는 도시로 부산 같은 느낌도 살짝 났다. 한국인 사장님들은 우리가 여길 어떻게 알고 왔는지 궁금해하며 엄청 반가워했다. 오픈 2주 밖에 안된 이 집은 현지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매우 저렴했다. 떡볶이가 100리라, 라볶이도 조금만 더 주면 먹을 수 있다. 우린 라볶이, 군만두, 김밥을 시켰다.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행복하다. 떡볶이를 이렇게 싸게 팔 수 있는 이유는 직접 밀떡기계를 수입해왔기 때문! 여행하다보면 떡은 구경하기도 어렵고 있어도 상당히 비싸다. 간만에 입맛이 살아난 저녁, 한강공원 같은 해안산책로를 한참 걷다가 현지인 무드에 취해 공원 주차장에서 잠을 청했다.


야자수만 아니라면 성산대교 밑이라고 해도 될것 같은 메르신


4월 24일 (수) 메르신에서 남부해안 따라 달리기




오전은 숙면을 취하느라 늦잠을 잤다. 카파도키아 풍선보느라 누적된 피로를 회복한 후, 오전은 고속도로 요금 내기 대장정(실패), 가는 길에 카르푸가 있어서 장을 보았고, 빵집에서 맛있는 빵을 샀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다시 한식당 무트파크 방문. 치즈라볶이(너무 맛있다), 비빔밥(현지인들은 무언갈 비벼먹질 않아서 없어진 메뉴지만 미리 말해서 만들어주심)을 엄청 맛있게 먹고 뜻밖에 선물을 받았다. 이른바 떡볶이 밀키트! 이보다 귀한 음식이 있을까… 게다가 닭백숙까지 얻어먹어 보양을 한 기분마저 들었다. 지금도 밀키트는 냉동실에 고이 모셔져 있다. 이걸 언제 먹게 될까?


금쪽같은 떡볶이 밀키트 증정식


천국과 지옥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곳을 발견했다.


사장님들이 추천해준 여행지 가운데 ‘천국과 지옥(Cennet-Cehennem Mağaraları)’이라는 이름의 자연경과+유적지에 들렀다. 지표면에서 100미터 아래. 직경은 60미터가 넘는 거대한 두개의 구덩이, 돌리네를 옛 사람들은 각각 천국과 지옥이라 이름붙였다. 천국의 경우는 거대한 구덩이로 들어가서 동굴로 더 내려가면 작은 교회가 있고 도보로 접근 가능하다. 지옥 구덩이는 바닥이 강화유리로 된 다리에 서서 아찔함을 느껴보면 된다. 입장료는 비싸지만(12유로) 돈 생각 안나게 좋았다. 특히 천국으로 가는 길은 몹시 가고 싶었지만 엄두를 못 낸 베트남 동허이의 선동 동굴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 곳이 신화 속의 거인 티폰(제우스에게 죽임을 당함)이 살았다고도 믿었단다.


천국으로 가는 길

다행인건 이 깊은 동굴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아주 편리한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깊이 있는 탐험을 마친 후 문명으로 속히 복귀했다. 하나가 ‘천국’을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런 걸 보니 진짜 세계여행 중이라는 실감이 나.“ 생각지 못한 난생 처음보는 풍경 속에 매일 매일 놓인다. 그것이 낯설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보낼 하루를 기대하게 되는 여행의 매력이기도.


해질녁에는 잠자릴 찾아야 한다. 도로에서 살짝 들어와 지중해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찬물로 대충 몸을 씻고 시원하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4월 25일 (목) 몰랐지만 매우 좋았던 도시 가지파샤로.


새벽녘 너무 간지러워 둘다 잠에서 깼다. 벌레가 무는 것 같아서 일단 소파 쪽으로 내려와서 자고 오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대청소에 몰두. 이부자리를 다 털어내고 얇은 이불로 바꾸었다. 좀 나으려나? 캠핑카로 여행을 하면 많은 것에 무던해져야 한다. 다 내가 어딘가서 갖고 들어온 것이려니 한다. (그 이후로 많은 벌레에 물리고 있다.)


지중해 따라 달리는 일상

오늘은 일몰이 멋지다는 ‘시데’까지 가보려했으나 관광지 바가지가 심할 것 같다는 우려 + 궁금해서 와본 뜻밖의 차박지인 가지파샤 해안가에 멈췄다. 우리가 얼쩡대는 사이 해변식당 ‘팜트리클럽’ 직원 아저씨가 차이를 한잔씩 주며 ‘가지파샤’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줬고, 무려 내일은 장이 선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여기서 자기로 하고 저녁식사는 팜트리클럽에서 먹기로 했다. 빠듯한 여행경비 중 외식에 지출하는 비용을 가장 줄이게 되면서 우리가 주로 찾는 식당은 관광지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현지 식당이다. 해변에서 맥주 한잔이 마시고 싶다면 잘 안 알려진 해변가로 오는 식이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지도 않은 도시 가지파샤를 여행하게 되는데…


총 7개월 그 중 2개월은 시베리아 횡단을 해야하는 한정된 시간을 여행하고 있는 우리는 이후로도 유명하고 멋진 관광지를 많이 빼먹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하지만 그 곳 사람들에게 소중한 휴식처나 삶의 터전을 더 많이 접하게 되는 여행일지 모른다. 그것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가지파샤 바닷가에서 하룻밤, 우리집 앞마당
지중해 따라 가는 길에 만난 해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캠핑카여행의 성지 튀르키예 카파도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