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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혜경 Nov 02. 2023

괜찮을 거야

     

  며칠 동안 꿈자리가 어지러웠다.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고 어수선한 게 뭔가 불안하던 중 사촌 동생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촌수가 사촌이지 어려서부터 같이 살아서 친동생과 다름없는 아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픈 사람은 아파서 고생하지만 나이 드신 작은 부모님들을 떠올리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멀리 있으니, 수발을 해줄 수도 없고 걱정만 앞섰다. 입원한 동생을 잠시 만났는데 당사자는 의외로 덤덤했다. 갑자기 황당한 일을 당해서 그런 모양이다. 수술 잘 받으라고 괜찮을 거라고는 했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몹시 무거웠다. 항암 주사는 맞지 않고 방사선 치료만 받는다니 나는 불행 중 다행이라 했는데 작은어머니는 지레 돌아가실 듯한 목소리다.      

  “내 친구 00은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면 맥을 못 추겠더라고 하더라. 아들이 차를 태워다 주는 데 너무 힘이 들어서 차에서 드러누웠대. 그런데 얘는 병가는 냈다고 해도 혼자서 어떻게 하니? 걔가 아프면 아프다고 하는 애니? 미련스럽게 참고 참았으니 이런 일이.”     

  그예 작은어머니는 참고 참았던 통곡을 쏟아냈다. 나는 전화기를 붙잡은 채 망연하게 듣고 있었다. 그 심정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삼십여 년 전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참척의 고통을 안고 살아온 분인데 하나 남은 딸이 또 아프다니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이런 일을 본다며 우시는 데 나도 따라서 엉엉 울고 싶었다. 하지만 나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섣부른 위로는 마음 상하기 쉽다. 잘못 선택한 말 한마디가 상처를 건드릴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 때 악역은 내가 맡아야 한다.     

  “엄마가 아픈 사람보다 더 난린데 걔가 아프면 아프다고 할 수 있겠어요? 두 분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셔야 걱정 없이 자기만 생각할 수 있지. 엄마가 이렇게 울면, 보지 않는다고 그게 전달이 안 되겠느냐고요. 그래도 항암 치료받지 않아도 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자고요. 젊으니까 거뜬히 이겨낼 거라고 믿자고요. 예전에 나 수술했을 때 많은 사람이 잘 나을 거라고 기도해 주더니 괜찮아졌잖아요.”


  오래전 일이지만 나도 ‘꿈이었으면’하고 바랐던 날들이 있었다. 의료사고로 한 달 사이 전신 마취 수술을 세 번이나 받고 석 달 후 또 한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다. 병원에 있어 보니 아기들도 여러 차례 수술하는 일도 있고,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어서 남들에겐 그렇게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병원 출입을 해 본 일이 없는 나에겐 꽤 큰일이었다.

  두 번은 아무 생각 없이 수술실로 들어갔지만, 세 번째부터는 내가 다시 이 세상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두려웠다. 그때 쾌유를 빌어주는 많은 지인을 떠올렸다. 나를 염려한 친구들이 내 소식을 알리면서 블로그 댓글로, SNS로, 심지어는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누구랑 아는 사람인데 소식 보고 왔다면서 쾌차하기를 바란다는 글을 남겨주었다. 병중에 계신 시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희망을 품으라는 위로에‘그래 나는 중요한 사람이야. 나는 반드시 괜찮아질 거야.’ 두려움은 사라지고 용기가 생겼다. 그들의 응원은 내가 회복하는 동안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사십 몇 년 전에도 놀랄 일이 있었다.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초등학생이었던 동생이 수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늘 조용하고 어른스럽던 아이였는데 어른들이 걱정할까 봐 며칠을 배가 아픈데도 참았던가 보았다.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이 됐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고 크게 소리를 내어 울었다. 잘은 모르지만, 맹장 수술보다는 훨씬 어렵다는 복막염 수술이라는데 내 동생이 금방이라도 잘못되진 않을까 두려웠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아이처럼 우는 걸 보고 많이 놀랐다고 했고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동생은 정말 괜찮아졌다.     

  말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방송에서 실험하는 것을 보고 말의 위력을 느꼈다. 여러 가지 실험 중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게 있다. 밥을 두 병에 나눠 담고 한 병에는 ‘고맙습니다’라고 쓰고 좋은 말을 해주고 다른 한 병에는 ‘짜증 나’라고 쓰고 나쁜 말을 했다. 한 달 후에 보니 좋은 말을 해준 밥엔 곰팡이도 예쁘게 피어서 누룩 냄새가 나고 나쁜 말을 해준 밥엔 보기 싫게 시커먼 곰팡이가 피었다. 가축이며 식물을 기르면서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은 알았지만 생명체가 아닌 밥조차 이런 변화를 보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동생은 메스껍다고 하면서도 방사선 치료를 잘 견디고 있다. 오히려 챙겨주지도 못하는 언니 건강을 걱정한다. 나는 그 애가 오래전처럼 잘 회복할 거라고, 마치 주술을 외듯 “괜찮을 거야. 넌 반드시 나을 거야”하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나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괜찮을 거야.’ ‘잘 나을 거야.’ 기원하는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고 그 말의 힘으로 지금 이 고통의 시간이 언젠가는 꿈이었다고 할 날이 분명 올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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