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고 말하는 게 두려워질 줄은 몰랐던 입원 생활의 기록
입원 첫날, 처음 받은 환자복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해져 있었다.
다른 병실 환자들에겐 멀쩡한 새 옷이 보이는데, 나만 이런 옷을 받은 건가 싶어 마음 한편에 불편함이 남았다.
심지어 옷이 조금 작아서 앉을 때마다 불편하기까지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조무사님이 나를 힐끔 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다 찢어진 옷을 입으셨네요. 무슨 흥부도 아니고… 새 옷으로 드릴게요.”
그 말에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내게 맞는 넉넉한 사이즈를 가져다주시고, 조심스럽게 갈아입을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새로 받은 옷은 너무 컸고, 길었다. 덥기도 하고 불편했다.
그래서 다시 요청했다. “그냥 완전 새 옷은 아니어도 괜찮으니, 제게 맞는 사이즈로 주실 수 있을까요?”
작은 부탁이었지만, 마음은 꽤 무거웠다. 처음이라는 건, 환자에게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니까.
첫날 받은 옷에서부터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 하루는 이미 긴 싸움이 된다.
수술 후 이틀쯤 되었을까. 새벽 5시 무렵, 가슴 중간이 찢어질 듯 아팠다.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눌렀고, 새벽 근무 중이던 간호사님이 오셔서 혈압, 체온, 심박수를 재며 차분히 물었다.
“수치는 정상이신데요. 어떻게 아프신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하지만 말이 안 나왔다.
그냥 ‘가슴 중간이 네 번쯤 연거푸 아팠어요’ 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럼 진통제를 놔드릴까요?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약 덕분인지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은 맛있게 잘 먹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런데 오전 9시 15분쯤, 다시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간호사를 불렀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간호사였다.
“저 새벽처럼 가슴이 또 아파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딱 한마디만 남겼다. “왜 그러지?”
그 뒤로는 확인도, 설명도 없이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교수님을 모시고 온 건지 회진될 시간이 되어서 오신 건지는 알 수가 없지만 회진을 오셨고, 심전도와 엑스레이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검사 결과 이상은 없다고 했지만, 통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심전도는 바로 결과를 알려줘서 알 수 있었지만 엑스레이 결과는 나중에 오후 근무 간호사님한테 들을 수 있었다.
수치가 아니라, 느낌이었다.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는 고통은 더 외롭다.
전날 밤, 정맥에 꽂은 수액 라인이 새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밀어 넣으면 새지 않았지만, 아침이 되자 다시 간호사에게 봐달라고 요청했다.
“다시 놔야겠네요.” 조용히 말하며 주사기를 들고 왔다.
그날은 주말이었다. 정맥 전담 간호사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설명은 없었다.
그저 말없이 주사를 놓고는 아무 말 없이 병실을 나갔다.
설명이 없다는 건, 환자에게 불안함을 남긴다.
내 팔에 꽂힌 바늘이 맞는 건지, 괜찮은 건지, 왜 다시 놓은 건지—
그 모든 질문은 공중에 흩어졌다.
점심 무렵, 정맥주사 위치가 신경 쓰였다. 피도 계속 맺히고, 손목이 꺾이는 곳에 주사를 꽂아 젓가락질도 어려웠다.
다시 간호사를 불러 “위치가 너무 불편해서 안 되겠어요. 바꿔주실 수 있나요?” 부탁했다.
이번에도 조용히 트레이를 들고 와 주사기를 꺼냈다.
두 번, 세 번… 혈관이 잡히지 않자 간호사는 말없이 병실을 나가더니 주사기 세 개를 더 가져왔다.
그리고 또 실패. 팔뚝, 손등, 팔꿈치 위… 마구잡이처럼 찌르고 또 찔렀다.
나는 결국 말했다.
“그냥 됐어요. 불편해도 괜찮으니까, 내일 전담 간호사님 오시면 다시 맞을게요.”
하지만 그 간호사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되물었다.
“불편하시다면서요?”
그 말을 끝으로, 또다시 맥을 짚고 혈관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하지 말라 해도, 끝까지 주사를 놓으려 했다.
왼쪽 손목에 바늘이 꽂히는 그 순간까지.
무서웠다. 말이 막혔고, 마음은 쪼그라들었다.(나중에 알았지만 정맥주사기도 아닌 아주 제일 얇고 가는 주삿바늘로 맞았다고 했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기가 눌렸다.
내가 아프다고 말한 것이,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체감한 날이었다.
다음 타임 간호사님이 오셔서 처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오늘 기분은 좀 어떠세요?”
그 한마디가 마음을 풀게 했다.
그제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실 오늘은 좀 별로예요. 가슴도 통증이 있고… 아까 간호사 선생님이 너무 무서웠어요.”
누군가에게는 말해야 했다.
그래서 병원 ‘고객의 소리’ 링크를 캡처해 글을 쓰던 중이었다.
하지만 새 간호사님의 따뜻한 첫마디가 내 마음을 열었고, 결국 그곳에는 글을 남기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주치의 선생님께 정중히 말씀드렸다.
“어제 그 간호사 선생님,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아요.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얼굴만 봐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려요. 그리고 호출벨도 누르기가 꺼려져요"
선생님은 이미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 손목을 보며 말했다.
“어휴… 이게 다 피멍이네요. 안타깝네요. 잘해주지 왜 그랬을까요.”
그 말에 그나마 위로를 받았다.
이 수술이 내 인생의 마지막 수술이길 바랐다.
하지만 입원 첫날, 찢어진 환자복부터 퇴원하는 날까지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퇴원 날엔 배액관에서 피가 새어 나와 환자복과 속옷까지 다 젖었고 , 이미 퇴원수속까지 다 밟고 전액 계산이 다된 상태인데 2시간을 기다리고 배액관에서 새어 나온 피를 멈추게 하고 두 번의 소독조치 끝에 퇴원을 하였다.
수술 자체는 분명 잘 되었다.
하지만 돌봄의 부재, 태도의 무심함은 오히려 수술보다 더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환자였고, 누군가의 손길에 기대야 했던 존재였다.
다음에 또다시 아프게 될 일이 생기지 않기를.
그리고 어떤 환자든, 단순히 '몸'이 아니라 '사람'으로 돌봄 받는 병원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