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눈물, 다른 진실
눈물은 언제나 물처럼 흐르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물보다 더 무겁고 뜨겁다. 겉으로 보기에 기쁨의 눈물과 슬픔의 눈물은 별 차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흘려본 사람이라면 안다. 감정의 진원지가 전혀 다르고, 눈물 한 방울이 품고 있는 세계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나는 그걸 올봄에야 깨달았다. 늦은 나이에 알게 된 이 단순하지만 너무나도 명징한 진리를, 삶이 나에게 몸으로 체득하게 했다.
2025년 4월, 그날은 평범한 일상처럼 시작됐다. 그러나 그날 오후, 병원에서 듣게 된 글자. “난소암1기 입니다.”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온몸이 급속도로 식어가는 기분. 생각보다 눈물은 빨리 쏟아졌다. 눈이 뜨거워진다 싶더니,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눈물이 흐른다기보다, 터졌다. 마치 감정이 폭발하면서 눈이 그 출구가 된 것처럼.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단체 채팅방에 손을 얹는데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글자를 제대로 누르지 못했다. 손이 떨려 화면을 자꾸 놓쳤다. ‘드라마에서 저럴 리가 없잖아’ 싶었던 장면이 내 현실이 되었다. 배우가 연기한 게 아니었다. 그건 진짜였다. 펜을 쥐려 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종이 위에 사인을 쓰려고 안간힘을 썼다.(국가에 암이라고 등록해야 하는 서류 )
눈물이 흐르고, 숨이 가빠지고, 심장은 마구 뛰었다. 심장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가 거칠게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엉엉 울었다. 흐느끼는 게 아니라 통곡에 가까운 울음. 세상을 다 잃은 사람처럼. 미래라는 단어가 눈앞에서 사라졌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너무나 무서웠다. 고통이 아니라 공포였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실체를 가진 그림자처럼 내 곁에 와 있었다.
며칠 뒤 막내딸이 집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꽃무늬 핀을 들고 있었다. “엄마, 이거 봐. 내가 엄마한테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 머리 틀어 올리고 이거 꽂으면 진짜 예쁠 거야.” 막내는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엄마 이마도 너무 예쁘고, 요즘 턱선도 정말 세련됐어. 요즘 시대에 태어났으면 인플루언서 했을 거야”라며 웃었다.
나는 그 순간 웃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날카로운 불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말 항암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머리카락이 다 빠지면, 저 예쁜 핀은 쓸 수 없겠지. 머리를 틀어 올리지도 못할 텐데. 이 예쁜 말들이 추억으로만 남게 되면 어쩌나.' 그게 너무 무서웠다. 그 두려움은 단순한 외모의 문제가 아니었다. 딸에게 늘 활기차고 당당한 엄마로 남고 싶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작은 바람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어머니로서의 상징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5월 말. 나는 또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이번엔 다르게 느껴졌다. 담담했다기보다는, 마음을 단단히 다잡은 상태였다. 수술실로 내려가면서 나 자신에게 말했다. “받아들여야 한다. 이건 싸움이고, 너는 살아야 한다.”
수술은 길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병실로 올라왔다. 반듯하게 누워 꼼짝도 못 한 시간 동안, 허리와 꼬리뼈가 욱신거릴 정도로 통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아팠던 건 마음이었다. “혹시 항암까지 받아야 하는 걸까?” 이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가족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은 바스러졌다. 다짐한 마음은 버티고 있었지만, 눈물샘은 언제 터질지 모를 둑처럼 부풀어 있었다.
그러다 오늘. 퇴원 후 첫 외래진료. 병원 대기실에서 이름이 불릴 때까지 손바닥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마음속은 시끄러웠다. 아무리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해도,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공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교수님은 미소를 머금고 나를 반겼다. 그리고 천천히,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전이도 없고, 조직검사 결과도 아주 좋습니다. 항암치료는 안 하셔도 돼요. 앞으로는 3개월에 한 번씩만 오시면 됩니다.”
다음 달에는 ct촬영이 있으니 그때 보자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뺨으로 무언가 뜨겁게 흘러내렸다. 그것은 울음이 아니라, 해방이었다. 조용히, 말없이 흘러내린 눈물.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속으로 ‘살았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애써 누르고 있던 감정이 봄날 눈 녹듯 스르르 풀려버렸다. 간호사선생님이 내 눈물을 보더니 흐뭇하게 웃어주셨다 교수님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말해주셨다.
나는 웃으면서 울었다. 울면서도 웃었다.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동시에 쏟아졌다. 나는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그리고 싸워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치료실에서 수술 부위를 확인받기 위해 다시 누웠을 때, 내 배 위로 남겨진 흉터들을 보며 오히려 마음이 든든했다. 싸운 자의 흔적, 살아남은 자의 증거였다. 아직 덜 아문 부위엔 테이프를 붙여주셨고, “3일 후 떼세요”라는 말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다시 들렸다.
진료실을 나오는 길. 나는 울었다. 그런데 이번엔 소리가 없었다. 조용히 주르륵. 눈물은 흘렀지만, 마음속은 고요했다. 슬픔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 눈물은 친정엄마에게 전화하면서 다시 흘렀다.
“엄마, 항암 안 해도 된대.”
“그래? 휴… 다행이다. 얼마나 많이 기원했는지 몰라. 안 할 거 같긴 했지만 천만다행이야.”
짧은 대화였지만, 그 안에 우리가 견뎌온 시간이 다 녹아 있었다. 엄마는 “앞으로 잘 관리하자”라고 말했지만, 그 음성 뒤에는 울컥한 감정이 묻어 있었다.
카페에 들러 라테를 주문하고, 동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대화하다가, 또 울었다. 감정이 약해진 게 아니라, 살아났다는 느낌이었다. 아프고 나서야, 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순간. 그것이 바로 기쁨의 눈물이다.
눈물은 물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슬픔의 눈물과 기쁨의 눈물은 같은 길을 지나지만, 전혀 다른 세계로 우리를 데려다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