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 공포증이 생긴 이유.
(내면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_1.)
오랜 세월 방치된 기억들과 하나씩 마주하려 한다.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웅크리고 있는 어린아이를 만나볼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내면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다고 한다. 내 어린 시절엔 고통의 조각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긴 시간 내면 깊은 곳에 틀어박혀서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 기억들을 하나하나 펼쳐보면서 괴로움에 몸부림칠지언정, 이제 치유의 여정을 떠나려 한다. 회피가 아니라 진지하게 대면하고 안아주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언제까지 그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 대며 지낼 순 없지 않은가.
기억을 완전히 삭제하거나 완벽하게 치유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용기를 내어 치유의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발전이고 희망적이다. 사랑의 힘, 독서의 힘, 글쓰기의 힘이 컸다. 모든 이야기를 드러낼 순 없겠지만, 최대한 끄집어내 보려 한다.
그중 하나의 조각을 지금 꺼내본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다.
나는 모서리 공포증이 있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어서 지인들도 몰랐을 것이다. 특히 극 뾰족한 모서리를 보면 몸서리가 쳐진다. 되도록이면 조심하며 그곳에 시선을 오래 두지 않으려 애쓴다. 뾰족한 모서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보면 고통스러운 기억이 하나 떠오르며 괴로움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 집에 살던 때 내가 6살, 7살이었으니까 그 일이 일어난 날에 나는 6살 아니면 7살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또 다투고 있었다. 그러다 화를 절제하지 못한 아빠가 엄마를 세게 밀었다. 엄마가 뒤로 넘어지면서 뒤에 있던 화장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엄마가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날. 나는 처음으로 엄마의 눈물을 봤다.
어린 나는 고사리 손으로 엄마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것 말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슬펐다. 모든 아이가 그렇겠지만, 엄마가 아픈 건 너무도 싫다. 아빠가 밉다. 그때부터 아빠에 대한 증오가 시작된다.
나는 그 장면을 바로 코앞에서 목격했다. 그 어린아이는 커다란 충격과 공포와 고통을 받았다. 어른인 지금 목격해도 끔찍한 장면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을 텐데. 그 어린아이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나는 그 날카롭고 뾰족한 모서리에 살짝 닿는 시도만 해봐도 아프던데. 그곳에 머리를 부딪힌 엄마는 얼마나 아팠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찔하다.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엄청난 분노와 증오가 온몸을 휘감는다. 가슴이 조여 온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 찢어질 듯 아픈 고통 속에서도 마음이 더 아팠나 보다. 엄마가 걱정되어 엄마 곁을 떠나지 않으며 하염없이 우는 나 때문이었을까. 그날 이후로 엄마는 거의 울지 않았다. (또 다른 일이 벌어졌을 때 말고는.) 적어도 우리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른이 된 이후로 엄마의 눈물을 많이 봤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내 동생이 군대에 갔을 때 말이다. 아마 어린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이 악물고 애쓰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리 슬프고 괴롭고 아프고 죽도록 힘들어도.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을지 모른다.
지울 수 없는 고통이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성장하면서 온갖 의문이 들었다. 대체 왜, 고작 6~7세의 나이인 어린아이가 그런 공포를 겪어야 하지? 대체 왜, 그런 고통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지? 대체 왜, 나는 그런 불행한 환경을 만난 거지? 대체 왜, 엄마와 아빠는 결혼을 했을까? 모서리를 보며 그날 일을 떠올릴 때면 내 마음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엄마의 눈물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진다.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천천히 조금씩 치유해갈 것이다. 적어도, 그 기억을 떠올렸을 때 마치 지금 그 상황에 놓인 것처럼 괴로워하지 않도록 내면의 힘을 기를 것이다.
독서, 글쓰기, 산책, 명상, 자연, 철학, 가족, 사랑, 기도, 성찰, 감사, 웃음, 추억, 긍정, 행복, 희망의 힘 등으로 내면의 능력을 한층 더 강화시킬 것이다.
왜 여태껏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왔을까.
"인간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위험을 되새기며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세네카의 말처럼 그동안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토닥토닥. 이제 그만 아프자. 이제 더 이상 그 어떤 아픔과 고통에도 그대로 머물러 있지 말자.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진지하게 마주하고 안아주면 조금씩 내적인 성장을 거듭해갈 거라 믿는다. 소중한 지금을 살자. 감사한 일들과 행복한 일들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