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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러브 Jul 13. 2023

첫째 아이의 우는 마음을 들여다봤다.

좋은 엄마가 되기란 왜 이리도 어려운 걸까.


 둘째가 태어났을 때, 첫째는 7살이었다.

그전까지는 우리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첫째다.


 양가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손주이고, 스물일곱에 첫째를 낳은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일등으로 출산했다. 그래서 양가 집안과 이모삼촌들의 사랑과 관심, 예쁨을 한가득 받으며 자랐다. 그런 첫째에게 동생의 등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첫째 아이에게 둘째의 등장은 마치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때 아내의 심정과 같다"는 말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러는 첫째 아이를 '폐위된 왕'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둘째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리고 태어난 후에도 잘 이야기해 주었다. 아기가 어릴 때에는 엄마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고, 엄마아빠는 두 아이 모두 똑같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래서일까. 동생을 예뻐하고 소중하게 대하며 동생의 등장을 잘 받아들였다.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한껏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기를 보듬는다.


 둘째 입장에서는 태어나자마자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 받아야 하는 기분일 테다. 엄마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첫째 아이보다 둘째가 더 질투가 많다. 그럼에도 자신보다 훨씬 큰 누나가 자신을 그토록 예뻐하고 사랑을 준다는 걸 느꼈는지 누나를 굉장히 좋아하고 잘 따른다. 매일 보는데도 밖에서 누나를 만나면 반가운 목소리로 "누나!!!"하고 부르며 달려가 안긴다. 그러면 첫째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동생을 포근하게 안아준다. 그 예쁜 장면을 내 눈 카메라로 열심히 담아 본다.


 사실 "터울이 많이 져서 제2의 엄마가 되겠다"는 말이 나는 조금 불편했다. 내게는 아직도 한없이 아기 같은 딸이기도 하고 내 딸에게도 오롯이 내 딸의 인생이 있는데 말이다. 굳이 엄마의 역할까지 해달라는 기대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책임감을 쥐어주지 않으려고 더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설거지할 때 그럴 때만 잠깐 봐달라고 하는 그런 날들은 있었다. 아기가 가만히 있질 않아서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최대한 아이의 시간을 존중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동생을 잠깐씩이라도 놀아주고 예뻐해 주던 첫째 아이에게 늘 고마웠다. 동생을 어찌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지. 안아주고 뽀뽀도 해주고. 그 찬연히 빛나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감동이었다.






 두 아이의 마음을 모두 헤아리고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최고의 사랑을 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둘째가 태어난 해에는 첫째의 마음을 우선으로 알아봐 주고 똑같이 애정표현을 하려고 노력했다. 둘째가 두 살 되던 해에는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기 때문에 세심하게 신경 쓸 일이 아주 많았다. 그 작은 아이가 책가방을 등에 매고 등교하는 걸 보는 데 어찌나 뭉클하고 또 기특하던지. 아기는 아기띠로 안거나 유모차에 태워서 첫째 아이의 학교나 놀이터를 따라다니고 함께 했다.


 그러다 2020년.

둘째가 3살이 되고 첫째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둘째는 울면서 밤에 깨는 일이 많았다. 통잠 한 번 자보기는 커녕 매일을 적은 양의 수면을 취한 지 3년째가 되다 보니 몸이 많이 지쳐 갔다. 예민해지고.


 그래서 아직 9살밖에 되지 않은 첫째 아이에게 많은 걸 스스로 하길 바라는 마음과, 아직은 어린 데다가 아이들은 금방금방 크니까 나중에 내 도움 없이 혼자 척척 해내기 전까지는 내가 최대한 모든 걸 해줘야지 하는 마음. 둘 다 생기기 시작했다. 부모의 과도한 기대도, 과도한 간섭도 모두 아이에게 좋지 않은데 말이다. 아무래도 생일이 빠른 데다가 반에서 키가 제일 큰 아이다 보니 그런 마음들이 동시에 들었던 것 같다.


 사소한 것, 아이니까 이해하고 넘어가줄 수 있는 작은 일들에도 버럭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이를테면, 아기가 겨우 낮잠이 들어서 이제 나도 좀 쉬거나 책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있을 때 첫째 아이가 큰 소리를 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왈칵 튀어나온다. "조용히 하랬지. 아기 이제 겨우 잠들었잖아. 너 때문에 깨면 어떡하려고 그래?"


 혹은 숙제를 제때 하지 않고 당일날 급하게 한다거나 휴대폰 시간을 어기거나 가까이 봤을 때에도 버럭 했다. "똑같은 말을 도대체 몇 번씩 말해줘야 해?" 하아. 지금 생각해 봐도 부끄럽다. 아직 어린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줬어야 했는데. 더 부드럽고 온화하게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들은 원래 잘 까먹는다. 어떤 것에 집중하다 보면 더더욱. 아이니까 모든 게 미숙한 것도 당연하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가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고 아프다. 혼내고 나면 늘 나를 자책했다.


 게다가 그 해에 코로나가 터졌다.

학교에도 거의 나가질 않게 되었다. 집에서 두 아이를 케어하며 고군분투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받는 일들까지 겹쳐지면 예민 모드가 되기도 했다. 남편은 일이 많고 바쁘다 보니, 밤새 아이를 돌보는 일뿐 아니라 두 아이 육아와 집안일 모두 다 내 몫이었다. 심신이 약해지면서 내 마음을 다스리기 힘든 날들이 생겨났다.


 나는 잠시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도 필요하고, '여행'도 좋아하는 사람인데. 코로나로 그 모든 게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잠은 부족하고, 혼자만의 시간은 없고, 체력도 약해지고. 몸이 자주 아팠다. 수액을 맞으러 다닐 정도로. 그러면서도 내가 아프면 우리 아이들은 누가 봐주나 싶어 악착같이 견뎌냈던 시기다. 그렇게 내 상황을 이해해 본다.


 하지만 내가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 해서 아이에게 자주 버럭해도 되는 건 아니다. 그것은 다 핑계에 불과하다. 아이는 인내와 사랑, 너그러움으로 키워야 한다. 내 목숨보다도 더 귀하고 소중한 아이들이 아닌가.


 아이는 민감한 성향인 데다, 내가 평소에 잘 웃고 장난치며 놀아주거나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엄마여서인지 굳은 얼굴과 날카로운 눈빛, 내리 깔거나 한껏 높아진 목소리에도 벌써 겁을 먹는다. 평소 모습과 너무 달라서 무섭단다. 아이에게는 그것부터가 이미 상처라는 걸 알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가 화를 내는 모습 자체가.


 아이를 혼내거나 버럭하고 나면 아이뿐 아니라 나도 상처를 입는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아이가 작은 것에 눈치를 보는 모습을 몇 번 포착했다.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내 아이가 왜 엄마아빠 눈치를 보지? 나의 잘못된 행동들을 돌아보고 또 반성한다. 그리고 단단히 마음을 먹는다. 내 마음을 끊임없이 단련하겠다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읽고 쓰고 걷고 성찰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단련해 왔다. 아직 멀었지만. 좋은 엄마가 되기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버럭 했던 나 자신이 너무도 미웠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란 없다는 걸 알지만 그 사실만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원래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혼을 내거나 버럭 했을 땐 그 이유를 설명하고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꼭 말해준다. (순한 아이라서 혼날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러면 아이는 다정한 엄마의 모습에 안도하며 눈물을 더 쏟아낸다. 그 당시에도 이렇게 하려고 노력했으나, 둘째가 어리다 보니 여러 가지 상황에 처하면 그럴 타이밍을 놓칠 때도 많았다. 유일하게 그 시기에는.




 


 

 당시에 어쩌다 첫째 아이에게 동생에 대한 힘든 마음을 물어보면, "나는 괜찮아. 내가 동생을 원했고, 아직 아기잖아."라며 이해해 보려 노력하는 아이의 마음에 짠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질투가 난 적도 분명 있었을 텐데 그때마다 이해하며 삼켰을 아이를 생각하니 뭉클하다. 결이 참 곱고 예쁜 아이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어느덧 둘째가 4살이 되면서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기라 보내지 못하는 날들도 많이 생겼지만, 조금씩 내 시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늘 되새긴다.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알아봐 주는 게 먼저다. 아이를 이해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아이가 잘못을 했어도 무조건 혼을 내는 게 정답이 아니다. 실수했을 때에는 화내지 말아야 한다.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어보기>의 저자 보니 헤리스는 부모가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을 '자제력'으로 꼽았다.

"말 안 듣는 아이들은 부모를 화나게 하면서도 부모에게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회를 못 잡으면 항상 혼내는 못난 부모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기회를 잡으면 아이와 진정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좋은 부모로 남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화를 내기도 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기도 하며 다채로운 일상을 겪고 있다.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늘 기도한다. 지혜를 달라고.

두 아이에게는 아무리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미안한 점이 많을 것이다. 부모란 자식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그러면서 아이도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거겠지 싶다.


 얼마 전, 이제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첫째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언제가 힘들었냐고 물어보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 시기에 받은 상처들이 가슴에 여태 응어리처럼 남아 있었나 보다.

목이 매인 채로 눈물을 흘리면서 그때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숙제 미리미리 안 하고, 휴대폰 하다가 나도 모르게 가까이 보고, 머리핀 잃어버리고. 그런 거는 다른 애들도 다 그랬는데. 억울했어. 아직 어렸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그리고 언제부턴가 아빠가 잘 놀아주지 않는 것도 서운하고 속상했어. 게다가 그때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몇 번 안 나가는데, 칸막이도 쳐 있고 마스크도 쓰고 있고 쉬는 시간도 줄어들고. 그래서 친구들 사귀는 일도 어렵고 힘들었어."


 속에 있던 걸 다 쏟아 내며 우는 아이를 얼른 내 품으로 안아줬다. 키가 나와 거의 비슷해졌을 정도로 훌쩍 큰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어릴 때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순간 나도 울음이 쏟아질 뻔한 걸 애써 참아내느라 혼났다. 실컷 울라며 아이를 한참 동안 안아주고 토닥여줬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서 사과했다.


"엄마가 미안해. 네 잘못이 아니야. 많이 억울했지? 얼마나 속상했을까. 혼자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까. 그때 엄마가 무섭게 말하고 상처 줬던 일들 모두 다 진심으로 미안해요. 엄마가 부족해서 그래. 그런데도 우리 딸은 엄마아빠와 동생의 모든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줘서 정말로 고마워. 우리 예쁜 딸 언제나 소중하고 언제나 사랑해요."


 오히려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려 깊은 우리 딸.

언제나 엄마 마음을 너무도 잘 이해해 주는 예쁜 우리 딸. 언젠가 그 모든 상처들이 다 날아가버릴 수 있길 바라.


 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려면 무엇보다 먼저 아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야누스 코르착의 말이 가슴으로 와닿는 날이었다.


 요즘 우리 딸은 아주 밝고 명랑하고 귀엽고 자신감도 넘친다. 작년부터 원래의 모습들을 되찾은 느낌이다. 반갑고 기쁘다. 반 아이들과도 모두 친한 데다가 동네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어느 날에는 놀이터에서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달리는 우리 딸 뒤로 아이들이 우르르 쫓아가는 걸 보며 한참을 웃었다. (ㅋㅋㅋㅋㅋ)





 몇 개월 전부터 첫째 아이가 방울토마토를 기르고 있다.

매일 물을 주며 토마토가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생생히 관찰하고 있다. 또한 그 모든 모습을 온 가족이 함께 지켜본다. 어쩌다 하루 물 주는 걸 빼먹으면 잎이 축 쳐지는 느낌이다가 물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생기 있는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자라나는 속도 또한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쑥쑥 큰다. 온 정성과 사랑을 들여 토마토를 길러내는 아이를 보며 배운다. 우리 부모도 아이에게 온 정성과 사랑을 기울여 보살피며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아이를 양육하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우면서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다. 그러니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우리 부모도 계속해서 배우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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