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다.
그중에서도 지진은 막강하고 파괴적이다. 강력할 경우에는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건물들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사상자와 천문학적인 재산 피해를 만들어낸다.
전 세계적으로 지진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나는 14년 전 겨울을 잊을 수 없다.
지진에 대한 충격과 공포의 기억을 크게 각인시켜 준 날들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 1월 13일. 뉴스를 보고 경악했다.
아이티에서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한 것이다.
그 피해 수준은 참담한 수준이었다.
지진이 발생한 그날.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회색빛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20초.
불과 20초 만에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처참하고 참혹한 현장을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겨우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은 한 명이라도 더 살려보겠다고 애쓰고 있었다. 실종된 가족과 친구들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옥죄는 아픔이 밀려왔다. 가족을 잃은 아픔에 절규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마음을. 그들이 울부짖으며 맨 손으로 잔해를 파헤치며 가족을 구하려 몸부림치던 장면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지구 저편에서 일어난 일이라지만,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의 절망감이 전해져 오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한편으론 괴리감도 들었다. 저곳은 기나긴 암흑에 빠져 있는데, 나는 금세 잊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평화로운 풍경들을 바라보며 괴리감이 고개를 들었다. 물론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가슴 아파했던 사람들도 많겠지만.
우리가 만약 지금 저곳에 있었더라면,
해맑게 웃을 수 있었을까.
허나 당시에 받았던 충격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한동안 자연재해의 무서움에 벌벌 떨어야 했다.
우리나라도 자연재해로부터 마냥 자유롭다고 할 순 없었으니까. 다른 나라도 그렇고. 그렇다면 인류는 또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할지도 모를 테니.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걸까.
우리는 지진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걸까?
막을 순 없겠지만 피해를 예방할 수는 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지진을 예고할 수가 있으며, 지진으로 인한 피해도 미리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아이티 대지진이 일어나기 몇 년 전부터 지질학자들은 아이티에서 큰 지진이 일어날 거라고 예측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살기에도 바쁜 아이티로서는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지진에 대비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2010년의 아이티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극심한 빈곤과 정치적 불안에 시달려왔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내진 설계 없이 지어졌고, 부실하게 지어진 경우가 많았다.
결국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사망자 수가 22만 명을 넘는다.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다른 나라보다도 피해가 극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가까스로 목숨을 지켜냈지만 마음껏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족과 이웃을 잃었고 집을 잃었고 이전보다 더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으니까.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고, 부상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제때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들에게 희망이란 게 존재할까?
재앙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낼 수 있는 걸까.
누구라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아픔으로 얼룩진 그들에게 '희망의 씨앗'이라도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지진 피해 소식이 전해지며 국제 사회는 긴급 구호를 시작했다. 미국, 유럽연합, 한국 등 여러 국가와 구호 단체들이 생존자 구조와 식량, 의료 지원을 위해 힘을 모았다. 열악한 교통망과 취약한 행정 구조 탓에 구호 활동이 지연되기는 했지만.
어둠에 갇힌 아이티를 구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생존자를 찾는 일도 계속되었고, 생존자들을 위한 복구 작업도 진행됐다.
그 덕분에
열흘 만에 84세 할머니가 구조되었으며,
11일 만에 25세 남성이 구조되었고,
다리가 부러진 31세 남성이 13일 만에 구조되었다.
15일 만에 17세 소녀가 구조되었고,
28세 남성이 뼈만 앙상하게 마른 채 27일 만에 구조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물과 음식물이 제한된 상황에서 오래 살아남기란 어려운 일이다. 구조될 수 있다는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기적적으로 구조된 그들을 보면서 세상에 '희망'과 '기적'이란 게 분명히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들에게 고마웠고, 여진의 공포 속에서도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안타까운 시선으로 뉴스를 찾아보는 것 말고는.
그래도 이것만큼은 할 수 있었다. 공감. 관심. 기도. 응원. 비록 매우 미약할지라도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 여러 기적을 만들어내는 거 아닐까.
나는 아이티 대지진을 통해 '희망'을 발견했다.
회색빛 더미에서 살아남은 자들과 그들을 끝까지 찾아 헤맸던 사람들을 통해서. 아이티 재건을 위해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들을 내민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고통을 겪으며 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고 살아간 아이티 시민들을 통해서.
국제사회의 도움이 더해지며 아이티는 더디지만 조금씩 회복해 가는 듯했다. 하지만 또 한 번. 아이티에서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한다. 2021년 8월 14일. 사망자는 2,200명이 넘는다.
그리고 현재. 여러 개의 강단이 활개를 치고 있다.
재앙을 겪은 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아이티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가난과 자연재해, 폭력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반복된 재난 속에서 그들이 희망을 잃을까 두렵다.
국제사회의 끝없는 관심과 연대, 협력으로 아이티에도 봄이 찾아오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