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44
“꿈틀꿈틀 기어가네. 기어서 계단을 내려가네.”
송충이와, 아기와, 아기 엄마와, 내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다 함께 웃었다.
일요일 늦은 오후의 예술의 전당, 한돌 반이나 되었을까, 아직 걸음이 서툰 아기는 제 발 앞에서 꼬물거리는 송충이가 신기하기만 하다. 어른 새끼손가락 길이의 제법 큰 송충이건만 호들갑을 떨지 않는 아기 엄마가 대견하다. 진저리를 치며 송충이한테서 아기를 떼어놓기는커녕 리드미컬한 추임새로 순진무구한 호기심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으니.
침팬지의 대모, 동물학자 제인 구달이 생각났다. 생후 겨우 18개월 무렵, 마당에서 함께 놀던 지렁이가 예쁘다며 베개 밑에 넣고 잤다던. 아마 제인의 엄마도 어제 본 아기 엄마처럼 제인의 호기심을 격려했을 테지.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도 어린 시절, 곤충 관찰이 유별나서 온 몸에 곤충을 지닌 것으로도 모자라 버둥대는 것을 입 속에까지 넣어 왔다지 않나.
꿈을 이룬 사람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이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연구하고, 제인 구달이 아프리카에서 한 평생을 보내는 것처럼. 어린 시절, 부모나 주변 어른들의 순수한 지지와 격려가 있다면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는 적어도 훼방은 놓지 않아서 나의 두 아이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 그것은 신명나는 일이자, 효율감이자, 자신에 대한 긍지이자, 행복의 근원이다.
그러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다고?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주저앉기엔 아쉽지 않나. 나도 가정주부가 되는 것이 꿈이 아니었기에 틈틈이 글을 썼듯이, 젊은이들도 공무원이 되는 것이 설마 꿈은 아니었을 테니.
『변신』을 쓴 프란츠 카프카는 프라하 보험국 공무원이었고, 19세기 영국 소설가로 인기가 높았던 앤서니 트롤럽은 새벽마다 일정한 분량의 원고를 쓰고 출근하던 우체국 직원이었다. 평범함 속에서도 비범함을 누리는 것은 나하기 나름이다. 늦었다고 말하지만 않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