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안락사 동행 이후
한시가 급하다

by 신아연


댓글로, 카톡으로, 전화로, 만남으로 독자와 지인들의 고민과 걱정거리, 삶을 나누는 것도 글을 쓰는 일과 함께 제 일입니다. 그래봤자 들어주는 게 고작이지만요. 어차피 자격증도 없으니 어줍잖은 조언은 할 수도 없고, 잘 들어주기만 하면 스스로 길을 찾기 때문에 조언 따위는 할 필요도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는 저도 '한 상담' 합니다. 본인이 성이 찰 때까지 시간과 마음을 내어, 듣고 듣고 또 들어주며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전혀 그럴 수 없는 경우를 이따금 마주합니다. 바로 죽음을 생각하는 분들이지요. 죽음을 앞둔 분들이 제게 위로를 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낫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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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석 /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아톰포토 대표



지난 해 8월, 제 독자 한 분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택했지요. 인연이 닿아 제가 거기에 동행한 후 몇 편의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그 내용으로 올해 책을 내려고 하는데 제 눈 건강이 나빠져 원고 진행을 잠시 멈춘 상태입니다.


수 천 명이 그 글을 읽은 것에 약간 놀랐지만, 안락사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해 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앞둔 분들이 안락사 방법에 대해 물어오시는 거지요. 어떤 분은 만약 자신이 안락사를 택하게 되면 도와줄 수 있겠냐는 간절함을 담아.


안락사 절차는 A부터 Z까지 철저히 본인이 해야 한다고 들었기에 도와드리고 싶어도 도와드릴 수가 없다고 하면, 그런 뜻이 아니라, 그때처럼 자기하고도 안락사 현장에 동행해 줄 수 있겠냐는 난감하고 당혹스러운 부탁을 해오는 거지요.


그런 대화를 하고나면 가슴 중앙이 타는 듯이 아픕니다. 너무나 무력하고 미안합니다. 몸이 아파서, 육체가 고장나서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어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만이 유일한 소망이라는 사람들에게 무슨 위로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들 앞에서는 제가 건강하다는 게 송구스러울 따름이지요. 그럼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이렇게 귀기울여준 것만도 감사하다며 먼저 대화를 마무리하시지요.


살면서 누구나 이런저런 고난을 겪습니다만, 고난에도 자신만의 전공이 있지요. 복수 전공자도 있겠고요. 제 주전공은 가족관계입니다. 부부갈등, 자녀문제라면 죽는 것 빼놓고는 겪었고 겪고 있습니다. 저는 돈 고생은 안 해봤습니다. 밥을 굶거나 빚에 쫓겨본 적은 없다는 뜻입니다. 건강 문제도 아직은 없습니다. 아이들도 지금까지 몸은 건강합니다. 저도 젊은 때는 마징가Z 급이었지요. 제 가족은 항상 영혼이 문제이지요.


고생 중에 으뜸은 건강과 돈이라고들 하는데, 그 두가지에는 시달리지 않았으니 제 고생은 고생도 아닐 수 있겠네요. 그런데 건강을 완전히 잃은 분들의 사연은, 소생 가능성 제로인 분들과의 대화는, 세상을 떠남으로써 모든 걱정거리가 죽음의 심연으로 함께 빨려들게 된다는 점에서, 제 자신을 정직한 모습으로 세웁니다. 이 세상에 관한 일은 건강 앞에서는 다 별 일 아니라고.


지금 건강하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입니다. 설혹 아프다고 해도 매분 매초 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그것도 큰 다행입니다. 안락사를 생각하시는 분들은 한결같이 "한시가 급하다"고 하시더라구요. 무슨 일로요? 어서 죽는 일로요. 왜냐하면 한 순간도 통증이 멈추지 않기 때문에. 죽음만이 유일무이한 해결책이기에.


코로나로, 오미크론으로 온통 어수선한 때에 지인들의 감염 소식을 속속 듣습니다. 아무리 증상이 경미하다해도 막상 본인이 걸리니 겁이 난다면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고립되어 사는 저의 무인도 역시 안전지대일 수는 없겠지요.


요즘처럼 건강이 삶의 제 1선이라는 걸 실감하는 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계란의 노른자와 흰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계란 껍데기가 깨지면 안 되니까요. 계란 껍데기가 깨지면 노른자도 흰자도 속수무책 흘러내려 계란 자체를 폐기해야 하니까요. 저도 무리하지 않습니다. 글 쓰기에도, 책 읽기에도.



2021년 8월,

세 번째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신아연의 4박5일 체험기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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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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