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시간이 너무너무 길었습니다. 잔인했습니다. 저는 눈물도 많고 인정도 많은 사람입니다. 아이들을 너무너무 사랑하며 사랑에는 책임이 따르기에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며 견뎠습니다. 저를 격려하고 위로해 주신 모든 분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그제 나간 독자 편지에 온종일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같은 처지의 남성 독자들 중에는 동병상련의 아픔과 공감을 드러내신 분도 있었고, 저를 칭찬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귀한 댓글 하나하나 모두 빠짐없이 본인에게 전달했고, 눈물 많고 인정 많은 그분 덕분에 저도 맘놓고 많이 울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한 망가지고 죄 많은 내 인생도 이대로 괜찮게 여겨졌습니다. 여섯 살, 글자를 익힌 이래 두 짝 젓가락처럼 '글과 나'뿐이었던 고단하고 외로운 인생의 끝에서 소망과 소명을 찾아가고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살아볼 만하다 여겨집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 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 가시도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저는 어젯밤 이 찬양을 반복반복 들으며 펑펑 울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감사하고 지금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감사할 것을 감사하며.
'나이 60을 넘으면 만날 사람은 다 만났다'는 말이 있지요. 이제는 사람이 아닌 신을 만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신을 만나 지난 생을 재조율하고 남은 생은 '신과 함께' 결승점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저 또한 올해 60에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이인삼각으로 여생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말이 이인삼각이지 예수님 발에 제 발을 잇대어 묶고 그저 무임승차할 뿐이지요.
제가 작년 8월에 한 독자의 스위스 안락사를 동행하고 지난 달에는 중앙일보와 그 일에 관한 인터뷰를 했지요. 지금 저는 그 인연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안락사는 또 다른 안락사를 부른다더니, 안락사를 계획하는 61세의 가슴 이하 마비 남성과 삶과 죽음의 한 판 밀당, 이른바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영화 <미 비포 유>의 현실판인 것이죠. 영화에서는 전신마비 주인공이 결국 안락사를 택하게 되지만 현실의 저는 영화의 결말을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 비포 유 감독테아 샤록출연에밀리아 클라크, 샘 클라플린개봉2016. 06. 01.
이분은 지난 주 스위스 조력사 단체 두 곳에 회원가입을 하고 입회비를 납부했습니다. 본인의 이름이 명시된 등록 확인서 및 제반 서류 일체를 제게 보여주며 차분히 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분의 마음을 돌리는 기도를 하느라 입안이 다 헐고 며칠 째 오한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분은 저와 소통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고를 당한 경위와 치료 과정 속에서 그때그때 절망적 심경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을 제게 지속해서 보내고 계시죠. 저 또한 보다 더 상세히 글을 쓰시길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분과 저의 대화는 차츰차츰 깊어져 갑니다.
제가 안락사 현장을 다녀왔다고 해서 안락사를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얼결에,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저는 어떤 섭리를 느낍니다. 현장을 목격함으로써 더 이상 안락사는 없어야 한다는, 안락사를 막아야 한다는, 그것을 네가 해야 한다는 신의 음성을 내가 들어야 한다는. 그래서 하나님이 5개월 전 저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셨다는.
안락사는 영혼과 직결되는 주제입니다. 즉, 영혼이 존재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물음에 직면하게 합니다. 영혼이란 주제를 다루지 않고 안락사를 거론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의미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다음 시간부터 영혼을 이야기하겠습니다.
하재열 작가의 '심상'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647] 안락사는 또 다른 안락사를 부르고|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