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녀의 맛깔난 예수(8)
이 글은 6월 14일에 쓴 글입니다.
제가 몇 달 전까지 노자, 장자를 연재할 때는 무난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인문학 이야기를 할 때는 여러분들이 저를 편히 대했다는 뜻입니다. 그럼 지금은? 당연히 전 같지 않지요.
5, 6년을 함께한 사이니 대놓고 미워할 수는 없어도 상당히 불편한 관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 밥상을 말없이 밀어내는 분들이 꽤 계시죠. 음식이 입에 안 맞아 문간에 받아만 놓고 안으로 들여놓지 않는 쿠팡 배달처럼.
저는 2주 단위로 여러분들이 드시지 않은 '쉰밥'을 수거합니다. 2주 간 아예 열어보시지 않는 분들에게는 글배달을 중지 하는 거지요. 그러나 저의 '예수 맛집 운영'은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단 한 분이라도 찾아주시는 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10장22절
하재열 작가의 '심상'
여러분, 저는 인문의 영에 단단히 씌었던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깊었는데 (여러 모로 부모보다 훌륭한 자식들입니다), 그때 제가 예수의 부활을 두고 어떻게 사람이 죽었다 다시 살아날 수 있냐며, 그리고 너는 어떻게 그런 황당한 소리를 믿을 수 있냐며 성경을 그대로 믿던 초등학교 4학년 아들(붕어빵 아들)의 울음을 터뜨린 일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제게 상당히 실망해서(제게 한 여러 실망 중에 가장 실망한 일 같습니다) 마치 고아의 심정이 된 것 같았습니다. 아들은 저를 많이 좋아하거든요. 그런 존재인 엄마가 자기 편이 되어 주기는 고사하고 조롱섞인 놀림을 했으니. 그것도 진리에 대해서.
제게는 두고두고 가슴 아픈 기억입니다. 이후 아들은 인문의 영에 씌인 교만한 부모를 떠나 성경을 의지하며 자신의 인생을 외로이 혼자 개척해 나갔습니다. 아들이 한번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철학을 공부한 엄마, 아빠는(제 전 남편도 철학과를 나왔습니다) 자신들이 남달리 잘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실상은 우물안 개구리일 뿐이라고.
여기서 우물은 '인문학'을 말합니다. 세상 학문이라는 우물. 사도바울이 '배설물'이라고 말한. 철학을 섭렵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지성인이었던 바울이 세상 학문, 지금 표현으로 꼭 집어 말하자면 인문학을 배설물이라고 한 거지요.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