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녀의 맛깔난 예수(55)
어제 글에 "나도 죽고 싶다, 부디 나를 죽게 해 달라, 나도 이제는 죽은 거로 여겨달라. "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 무슨 해괴하고 섬뜩한 말씀들인가요? 그것을 예미녀가 조장하고 있으니 요즘 묻지마 범죄 예고자들처럼 사회 기강 문란으로 경찰에 잡혀가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죽어야 삽니다. 진짜 살고 싶으면, 진짜 죽어야 합니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로도 안 됩니다. 죽지 못하면 못 살아요.
배추가 충분히 절여진 줄 알았는데 언제 보면 또 뻣뻣하게 살아 올라올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아이고 배추야, 살아돌아와서 반갑다."고 할 사람 없지요. 가차없이 소금을 팍팍 더 쳐서 다시 숨을 죽여버리죠. 배춧잎이 펄펄 살아있어가지고는 김치를 담글 수가 없으니까요.
사람도 그렇습니다. 맛깔진 사람으로 곰삭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에 절여져야 합니다. 왜 하필 예수여야 하나? 사람답게 되는 데는 부처도 있고 공자, 소크라테스의 도움도 있다고 하실 수 있겠지요. 나이가 많아도 이분들이 예수보다 많고, 가방끈이 길어도 길다, 어느 면으로 봐도 예수보다 못할 게 없다고 반박하시며.
제가 얼마 전에 컴퓨터를 바꿨습니다. 전남편이 다니던 '고려아연'의 회장님 사모님이 바꿔 주셨지요. 전남편 덕이라면 덕이라서 지금 이 컴퓨터로는 남편 흉보는 글을 되도록이면 쓰지 않습니다. 저는 참 묘한 인연 속을 살아갑니다. 이혼한 남편이 다니던 회사의 최고 리더의 사모님께서 사 주신 컴퓨터라니!
그런데 새 컴퓨터를 포맷할 때 윈도우 11을 윈도우 10으로 낮춰 설치했습니다. 11을 쓸 자신이 없었던 거지요. 지금도 이따금 안내문이 뜹니다. 11도 10과 유사하니 바꿔서 써보지 않겠냐고. 저는 여전히 거절하지요.
그런 겁니다.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는 제게는 윈도우 11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용하기 버겁고 범접하기 어려운.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정말 작정하고 배운다면 도달할 수도 있겠지요. 그분들도 그렇게 하라고 적극 권하셨고요. 나처럼 수행정진하라고. 나도 너희들과 똑같은 사람이었다면서.
윈도우 10이나 11이나 같은 윈도우 프로그램상의 일입니다. 같은 차원 상에서 수준 차이가 있을 뿐이죠. 윈도우 11을 최고 수준의 혼이라고 해볼까요? 용맹정진하여 도달할 수 있는 인간 혼의 최고봉. 스스로 노력하여 최고급 사람이 될 수 있는 최상의 단계.
그러나 예수는 다릅니다. 같은 프로그램을 돌려서 만날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혼프로그램의 최상에서도 접속이 안 됩니다. 영프로그램을 깔아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영프로그램을 어떻게 까느냐? 혼프로그램을 포기해야 깔립니다. 윈도우 11조차 내려놓아야 깔립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저떻게 해보겠다는 생각과 노력 자체가 죽어야 깔립니다. 딴엔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용 쓰지 않을 때 깔립니다. 죽어야 한다니까요.
그렇게 나는 완전히 죽고 내 안에 예수가 살아야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20절
그럼에도 여전히 '내 안에서 죽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가 헷갈리시는지요?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