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사과를 받아서 뭐 할거냐고요?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24

by 신아연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한여름을 지날 때 이 더위 가시면 만나자고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이제는 추위 지나면 보자고 했습니다. 서로 핑계막을 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만날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솔직히 더위도, 추위도 제게는 만남의 기준이 아닙니다. 제게는 '원고 마치면'이 그 조건입니다. 원고 마치면. 그런데 그 원고를 언제 마치냔 말이죠.



토요일 종일, 그리고 어제 일요일엔 교회도 못가고 마감 원고를 붙잡고 있다가 오늘 아침을 맞았습니다.



할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작은 재능이 있고, 해 내는 체력이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60살을 맞은 이후엔 사는 게 전부 덤 같아서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 어제도 감사, 오늘도 감사, 내일도 감사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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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장영식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에 함께 다녀온 동료가, 앞으로 우리가 좋은 일을 하고 살 날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날이 곧 온다. 체력이 버텨주지 못할 날이 곧 닥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이 여운을 남깁니다. 제게 체력은 시력과 동의어입니다. 눈이 많이 안 좋습니다. 몇 시간 이어서 글을 쓸 수 없고, 글을 쓴 날은 책을 볼 수 없습니다. 책을 본 날은 글을 못 쓰고요. 무슨 일을 하든 눈하고 의논해야 합니다. 눈이 얼마나 버텨줄지 미리 물어봐야 하는 거지요.



“그에 관한 모든 것은 눈을 제외하곤 전부 노쇠했는데 두 눈은 바다 색깔을 띠고 기운찼으며 패배를 모르는 듯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노인은 눈만 성성했는데 저는 거꾸로 눈만 노쇠한 것 같습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아."



또 하나의 명문장이죠.



아무리 세상에 짓이겨져도, 급기야 파멸을 한달지라도 종국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그러기에 그 누구도 패배한 인생은 없습니다. 자신을 패배자라고 간주하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끝까지 가야합니다. 끝을 보는 데까지 가야합니다.



'좋은 일'이란 나 외의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돌아보는 일이라고 저는 나름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심지어 짐승도 그럴 때가 있는데),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나몰라라 하지 않는 것 아닌가요? 다만 콩 한 조각의 물질이나 손톱만한 마음일지라도 내 것을 내어 남과 나누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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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장영식





제게 관동대학살이 뭐 그리 대단해서 남의 나라에 폐를 끼치면서까지 제사를 지낸다고 법석을 떨며, 일본에 사과를 받아내서 뭘 할거냐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도 한국 사람이니 친일매국인사가 아닌 이상, 나름으로 무슨 뜻이 있어서 그런 말을 했을 테지만, 저는 그분께 묻고 싶습니다. 그럼 안 하면 또 뭘 할거냐고?



제가 아프리카에 우물 파러 가는 것보다 관동대학살 100주기와의 인연이 더 닿았고, 서울역 노숙자보다 제 동네 할아버지와 더 자주 마주치기 때문에 그 할아버지를 돌보는 것뿐입니다. 안 하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저는 그저 '좋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오늘은 관동 진도를 하나도 못 나갔네요.


내일 해야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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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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