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38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한 해는 막바지로 가는데 추위는 첫추위처럼 매섭네요.
저는 지난 주 토요일 '묻지마 사랑 5인방' 두번 째 만남을 가졌습니다. 지난 여름, '묻지마 살인'이 제가 오가는 신림역 4번 출구 앞에서 일어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저는 '묻지마 사랑'을 하기로 했죠. 아무나 죽일 수 있다면 아무나 사랑은 못할까 하고요.
저의 엉뚱한 발상이 '묻지마 기운'이라는 예상치 않은 기쁨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불을 밝히면 내 발밑이 가장 환해지듯이, 세상을 향해 따듯한 마음을 낸 것이 내 마음부터 다사롭게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운이 나고 생기가 돕니다.
새해부터 '묻사'는 월 3회로 만남을 늘립니다. 묻사를 계기로 '내빈모임'도 해보려고 합니다. 내빈은 또 뭐냐고요? 말 그대로 '초대받은 손님'이죠. 제 아침글 '영혼의 맛집'에 초대받은 독자 여러분들이죠.
저의 '내빈'은 '내 곁에 빈 자리'를 줄인 말입니다. '내 곁에 빈 자리'를 하나 두고 여러분들이 잠시 앉았다 가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짜장면과 커피는 살게요. 아시잖아요. 제가 가난한 글쟁이라는 것. 저로선 그게 최선입니다.^^
먹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요? 작금의 한국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고파서, 육체의 허기가 아니라 영혼의 허기가 문제잖아요. 실상 여러분들은 매일 잘 드시잖아요. 그러니 저와 만나서는 마음과 영혼의 배를 채우기로 해요.
저는 크리스천이 된 후 '사랑'을 배웠습니다. 말이나 마음만이 아닌, 돈과 시간을 쓰는 실천적 사랑을 배웠습니다. 그 사랑을 배운 후 돈을 벌고 싶어졌습니다. 돈을 더 벌면 더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디가서 벌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9월 3일, 동경 아라카와 강변에서 열린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도 6661명에 더한 실천적 사랑이었습니다. 사진을 확대하여 위패를 보시면, 우리나라 사람만을 위한 추모제가 아니었던 걸 아실 수 있습니다.
우측부터, '관동대학살 조선인 희생자 제위', '관동대학살 중국인 희생자 제위', '관동대학살 일본인 희생자 제위', '관동대학살 충승인 희생자 제위', 이렇게 중국인, 일본인, 충승인까지 함께 모셨습니다. 제위(諸位)란 '여러분'이란 뜻이고요.
충승인(沖繩人)은 '오카나와 사람'을 의미합니다. 한자 음역으로 오키나와를 '충승도'라고 한답니다. 오키나와 부두 노동자들이 특히 많이 희생되어 따로 위패를 모신 거지요.
그런데 왜 제 나라 사람인 일본인까지 죽인 건가 의아하실텐데요. 얼굴 생김이 같으니 구분이 안 되어 휩쓸려 죽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회적 혼란을 틈타 반체제적 좌익들을 그참에 처치해 버린 결과라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번 글에 '쥬고엔 고쥬센(십오원 오십전)'을 본토 발음으로 할 수 있으면 일본인, 못하면 조선인, 이렇게 구분하여 죽였다고 했잖아요. 지인 말이, 일본에서 40년을 살았음에도 아직도 안 된다니 얼마나 고약한 발음인지 저로선 가늠도 안됩니다.
그런데 일본사람 중에도 혀 짧은 사람은 그게 안 되었던가 봅니다. 그 바람에 또 다수가 죽었다고 하니까요. 그런 상황을 모티브로 만든 관동대학살에 관한 일본 영화가 있습니다.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41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