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영혼맛집 903 / 교토 여행기 10
어제 제가 "1995년 1월 17일 새벽 5시46분, 일본에서 지진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 선포된 시각입니다."라고 썼지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베에 지진이, 그것도 도시 전체를 초토화시킨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 400년 만이니, 그간 고베는 지진에서 안전한 곳이라고 선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데 그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진 거죠. 일본 어느 한 곳도 지진을 피해갈 수 없다는.
고베, 오사카 등 간사이 지방에는 8만7천명의 우리 동포가 살았기에 한국인 피해자도 상당해 유학생 및 재일한국인들이 100명 이상이 죽고 100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다카토리 성당 / 사진 정성후
우리가 고베에 갔던 날은 1월 16일, 대지진 발생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의미가 깊었죠. 지진 피해자 추도식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으니까요. 우리는 '다카토리'라는 유명한 성당을 찾아갑니다.
이 성당은 두 가지 점에서 유명합니다.
첫째, 기적의 그리스도 상입니다.
대지진으로 성당이 불 타 무너질 때 성당 마당에 세워진 그리스도 상이 마치 불길을 막아내듯 우뚝 서서 화마로부터 사제관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초토화된 부지에 홀로 서 있는 그리스도 상, 이 사실이 보도되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고베 재건 자원봉사자들이 40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애곡하는 사람들과 함께 애곡하는 그리스도,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 요한계시록 21장 4절
성당에 대해 설명하는 김치아키 상
이 성당에는 베트남 난민이 주로 머물러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추도식 미사에 참석한다면 쌀국수를 대접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성당이 유명한 두번째 이유는 종이로 만들어 졌다는 점입니다. 제 독자 중에도 '종이 건축'을 하는 분이 있지만 '다카토리 종이 성당'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일종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건축이라고 할까요.
소수나 약자의 주거 문제에 관심을 두고 세계 곳곳의 재난 지역을 찾아가 과감한 소재로 보호시설을 짓는 건축가, 반 시게루의 건축물입니다.
사진 양은미
일본의 건축가 반 시게루는 재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건축가로서 도울 길이 없을까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가령 의료 봉사자들은 재난 지역에 즉각 투입되지만 건축하는 사람들은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고 해요.
그래서 착안한 것이 바로 종이 건축!
그는 고베대지진, 타이완대지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대지진 등 전 세계 재해 현장을 돌며 적은 비용으로 단순하면서도 위엄을 갖춘 피난처와 공공건물을 지어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돕습니다.
이 공이 인정되어 2014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합니다.
종이 기둥의 내부 / 사진 양은미
고베 대지진 때 세워진 다카토리 성당이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반 시게루는 지난 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서울 디자인 컨퍼런스 2023'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