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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연 Mar 20. 2024

죽어봤던 사람의 죽음

신아연의 영혼맛집 930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죽는 것도 죽어봤던 놈이 죽습니다. 



어제는 돈이 없을수록 할 일이 많아진다더니 오늘은 또 뭔 소리냐고요? 



제가 이번 일을 당하면서 '너 죽고 나 죽자'로 설치다가, 너는 죽든지 살든지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확실히 죽겠다는 쪽으로 어느 순간 마음이 확 돌아서더라고요. 이미 죽은 사람인데 그 사람한테 죽을까 봐 겁날 게 뭐며, 죽은 사람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할 게 뭐란 말입니까. 그것은 모두 산 사람들이 구하는 것들이죠. 



저의 두 언니들은 제가 어떻게 지내나 염려가 많습니다만, 정작 당사자인 저는 천하태평 유유자적입니다. 돈을 보내겠다고 하는데 제가 마다했습니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을 게 아니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볼 일입니다.



마치 휴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출판사에서 넘어 온 '관동대학살' 교정지를 보고 있어야 할 때지만. 



시력만 받쳐준다면야 죽을 때까지 책만 보고 싶지요. 



그렇게 하는 게 죽는 거냐고요? 그게 아니라 이제 죽었으니까 책만 본단 뜻이죠. 







시드니 하늘과 나무





벌써 1년이 되었네요. 1년 전 저는 큰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지금 이 일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될 만큼. 자식들과 몇 년째 불통되어 피와 뼈가 졸아드는 것 같았더랬지요. 



엄마라는 존재는 '자식이 자신'인 존재죠. 하나님이 우리를 대할 때 그런 마음이실테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어미된 여자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으로 미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제가 아이들하고 관계를 회복하려고 몸부림을 치다치다 어느 순간 탁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내 힘으로는 안 되는구나'라고 깨달은 바로 그 지점이었지요. 바로 제가 죽은 지점이었죠.  



호주에 두 달을 머물면서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고, 돈이 다 떨어져서 보따리를 쌀 수밖에 없었지만, 죽어버리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고요. 



정작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죽은 그 자리에서, 저의 죽음을 거름으로 자식들과의 화해의 꽃이 피어올랐던 것이죠. 







하재열 작가의 '심상'





그리하여 지금은 작은 아들과 조선 선비가 되고 싶다느니, 세종처럼 살고 싶다느니 그런 말을 몇 시간이고 노닥거린단 말이죠.^^ 그런가 하면 큰 아들한테선 "엄마는 늙지도 않고 늘 그대로예요. 돈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이런 너스레와 달콤한 말을 듣고요.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는 거죠. 아니 죽고 나니 여한이 없는 거죠.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죽는 것도 죽어봤던 놈이 죽는다는 게 그 말입니다. 



'나는 죽어봤던 사람이 아닌가, 내가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놀랍게 체험한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 이 일도 내가 죽기만 하면 된다.' 



자아를 내려놓을 때, 내 의지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성령께서 일하기 시작하니까요. 



우리의 모든 맹세와 결심은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것들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우리 자신을 포기할 때, 우리는 성령을 받게 됩니다. / 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lFRZiW0Cg1s?si=sbgS8kumXQ9X22cT



 나를 버리고 그의 길을 가는 것


세상 그 무엇보다 어려운 내려놓음


내안의 예수 그분만 생각할 때


하늘의 그 손이 일하시네



그분의 마음 그분의 시선


그분의 원하심을 내맘에 두는 것


십자가 그길 그곳에 나설 때에


주님 나를 통해 일하시네



그 사랑 그 사랑 나를 살리신 그 사랑


하늘의 모든 영광 다 내려 놓으신


내 삶도 그렇게 내려놓습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그 길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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