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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연 Jun 24. 2024

사랑에 미친 여자


지난 주말, 우연히 이대 후문 근처에서 어떤 만남을 가졌습니다. 학교 담장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는데 모교에 대해 일말의 애정도, 느낌도 없는 제 자신에 좀 놀랐습니다. 단순히 졸업한 지 오래됐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학창시절을 통틀어 늘 저를 발목잡았던 것은 수학이었습니다. 수학 공포로 죽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저처럼 죽어라 수학을 못하는 지인이 자신은 '수맹(數盲)'이란 말을 하길래, 이참에 우리 '수맹회'를 만들자는 말을 제가 했더랬지요. 



저의 수맹(數盲)은 곧장 수망(數亡)이 되어 대입시를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수학을 못하는 정도가 지적 장애 수준이었고, 그리하여 나는 이화여대 밖에 갈 수 없었다는 좌절이 마음 밑바닥에 서리서리 깔려 있었기에 모교에 대한 애정은 고사하고 4년 내내 남의 학교 다니는 것 같았으니까요. 



게다가 애들은 또 얼마나 예쁜지, 이래저래 열등감만 깊었드랬지요.



"잘났어, 증말~~", 재수없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수학이 뭐고, 대학이 뭐라고 수학 때문에 신세를 조질 것 같았던 생각도 망상이고, 원하는 대학을 못 갔다고 해서 (저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가고 싶었거든요) 삶의 소망이 꺾인 것도 아니죠. 



지금 이만큼 살아보니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따위가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죠. 수학을 못해서, 원하는 대학을 못 나와서 제 인생이 꼬여버린 게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하재열 작가의 '심상'





제 인생의 진정한 맹점은, 낙제 과목은  '사랑'이었습니다. 수학 따위가 아니었던 거지요. 사랑과목을 배우지도 못했을 뿐더러 본래적 감을 가지지도 못했기에 인생 자체가 서툴었고 삑사리가 났던 거지요. 가정이 박살나고 아이들과 헤어지고.., 모든 원인은 사랑을 몰라서였지요. 



"수학이 말갛게 다 드러나 보인다, 척 보면 안다, 아니, 그 이상을 안다"는 사람을 최근에 만났습니다. 저는 '수학' 대신 '국어'란 말로 대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국어에 관한 한 저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금 요만큼이나마 글을 쓰는지도 모르죠.








이제 저는 그 자리에 수학도, 국어도 아닌 '사랑'을 채워넣고 싶습니다. 



그 사람은 수학이, 저는 국어가 저절로 되었듯이, 지금부터는 사랑이 척척 되는 사람, 진정한 '사랑꾼'이 되고 싶은 거지요. 



자칭 예미녀(예수에 미친 여자)가 된 것도 '사랑' 한번 제대로 해 보자는 거지요. 예미녀는 곧 사미녀(사랑에 미친 여자)니까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로마서 1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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