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슬픔

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28

by 신아연

이거야 원. 차라리 ‘슬픔 전문가’가 된단 말이지. 새벽 4시에 불쑥 전화가 오질 않나, 밤 12시 가까이에 하소연이 쏟아지질 않나. 나를 붙잡고 하염없이 자신들의 아픔과 슬픔을 토로하는 사람들 말이다.


저기요, 다 좋은데요, 혹여 내 슬픔까지 당신들에게 묻어갈까 염려된답니다. 혹 떼려다 되레 혹 붙인다는 말처럼. 나도 슬픔과 아픔이 많은 사람이걸랑요. 이렇게 새벽마다 글을 쓰는 게 바로 그 증거랍니다. 글이라도 써야 하루를 버틸 수 있거든요. 글은 뭐 아무나 쓰는 줄 아세요?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내게 털어놓은 후 슬픔이 사라지거나 덜어질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역할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으리라. 최선을 다해 마음의 귀를 기울이고 진심을 다해 위무와 치유의 글을 쓰리라. 하지만 정작 내가 힘든 것은 내가 모르는 슬픔을 나누려는 사람과 슬픔 자체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을 대할 때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슬픔이 있다.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래지지 않는 슬픔이 있다. 달랠 수 있는 슬픔은 살면서 마음속에 묻고 있을 수 있는 슬픔이지만, 달랠 수 없는 슬픔은 삶을 바꾸어 놓으며 슬픔 그 자체가 삶이 되기도 한다. 사라지는 슬픔은 달랠 수 있지만 안고 가야하는 슬픔은 영원히 달래지지 않는다.”


『대지』의 작가 펄 벅 여사가 『자라지 않는 아이』에서 한 말이다. 자라지 않는 아이란 정신지체를 가진 자신의 딸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런 딸을 낳아 기르면서 그는 ‘떨쳐버릴 수 없는 슬픔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세상 사람들을 구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당신의 슬픔은 어떤가. 떨쳐버릴 수 있는 슬픔을 가진 사람아, 부디 그만 일어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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