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29
어제 글 「두 가지 슬픔」을 읽고 펄 벅에게 정신지체 딸이 있었는지 몰랐다는 댓글을 받았다. 그 딸은 펄벅의 유일한 핏줄이다. 장애아를 둔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그도 자식을 고치기 위해 세상천지를 돌아다녔지만,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선고를 받게 된다.
“아주머니의 아이는 절대로 정상이 될 수 없습니다. 포기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아주머니의 삶은 완전히 망가지고 집안은 거덜이 날 거예요. 아이는 영영 낫지 않을 거예요. 고작해야 네 살 이상으로는 자라지 않을 것이니 평생 아주머니의 짐이 될 겁니다. 그 짐을 잘 준비하세요.”
잔인한 진실이 실체를 드러냈고 그는 비로소 희망의 끈을 놓았다. 그리고는 세상에는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랠 수 없는 슬픔이 있는데 자신의 슬픔은 후자에 속하며, 슬픔 그 자체를 삶으로 삼아야 한다는 현실과 독대한다. 이후 이혼, 절박한 빈곤 등이 수순처럼 이어졌다.
그러나 슬픔은 위대함을 낳았다. 그 딸로 인해 펄벅은 작가가 되었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아시아의 전쟁고아와 버려진 혼혈아들, 사생아들을 위해 헌신하면서 자신도 7명의 아이를 입양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어 1963년에는 19세기 말부터 해방 때까지 격동기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 『살아있는 갈대』를 냈고, 그의 뜻을 이어 한국에도 다문화 아동을 지원하는 펄벅재단이 설립되었다.
“떨쳐 버릴 수 없는 슬픔을 인내하는 법은 혼자서 배워나갈 수밖에 없다. 슬픔을 완전히 받아들이면 그에 따르는 보상이 있다. 슬픔에는 어떤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은 지혜로 모양을 바꾸며, 지혜는 기쁨을 가져다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행복은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