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 예미녀 맞아?

by 신아연


10월 28일 월요일, 맛집 메뉴판을 다시 다듬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갑니다.







*월: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화, 수: 안락사(조력사) 이야기


*목, 금: 니꺼내꺼 법 이야기







생각이 바뀌면 삶이 바뀝니다. 사람은 생각하는만큼 삽니다. 그 사람의 현재 생각이 현재 그 사람입니다. 그리고 생각은 바뀝니다. 좋게 바뀔 수도 있고, 나쁘게 바뀔 수도 있습니다. 즉, 삶이 성장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생각이 바뀌면서, 성장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삶의 좌표가 이동되었습니다. 전에 만났던 사람을 더 이상 만나지 않거나(만나게 되지 않거나), 전에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새로이, 저절로 만납니다. 전에 중요했던 일, 마음을 쏟았던 일이 이제는 부끄럽거나 시시해지고 새 일, 새 과업에 결단과 용기를 냅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저도 나름 모진 세월을 살았습니다. 환갑 반환점에서, 제 인생을 '돌아볼 때'는 야곱과 닮았고, '내다볼 때'는 바울을 닮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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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빠서가 아니라 어리석어서 고생한 사람, 시난고난한 세월 속에서도 인간적 욕망을 인간적으로 절대 포기하지 않은 사람, 그래놓고는 자신의 실수와 과오를 좀 봐 달라고 하나님께 죽자고 매달린 사람, 과보를 치를만큼 치른 후 말년에 과분한 아들로 축복을 받은 사람', 제가 보는 야곱의 일생입니다. 제 인생 여정과 많이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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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이 없지요. 그럼에도 일평생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신약성경 대부분을 썼지요. 바울은 어떻게 해서 올곧고도 올곧게 신앙심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 수 있었을까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누군가에게 인생을 통째로 사로잡히고 온통 매료되었던 그 사람, 바울을 닮고 싶습니다.



제가 안락사(조력사)를 찬성하기로 했다는 글에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예수님을 미치도록 사랑하기로(예미녀) 작정한 사람이 예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에 동조하겠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라는 댓글을 받았습니다.



생각을 바꾸기까지 고통스럽다 못해 심지어 꿈까지 힘들었습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댓글 주신 목사님을 비롯하여 저만큼 조력사 문제를 두고 고심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하십시오. 스위스 안락사 현장을 보고 온 죄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묻고 또 물었습니다. 예미녀이기에 그랬던 거지요. 그런데 '네가 그러고도 예미녀냐?'란 말을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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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열 작가의 '심상'





저는 예미녀(예수에 미친 여자)이지 목미녀(목사에 미친 여자)나 교미녀(교회에 미친 여자), 종미녀(종교에 미친 여자)가 아닙니다.



안락사 찬성이 목사의 뜻, 교회의 뜻, 종교의 뜻에 거스를 수는 있어도 예수의 뜻에 거스르는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랬더라면 죽을만큼 고심할 필요도 없었겠지요. 왜냐하면 저는 예미녀니까요. 예미녀가 예수님 싫어하는 일을 왜 하겠습니까.



"그럼 예수님이 안락사를 찬성하라고 했냐?"며 말꼬리를 잡힐 수 있겠지요.



답은 "모른다"입니다. 저도 모르고 목사들도 모른다가 정답입니다.



맹목적이거나 교조적(敎條的 :역사적 환경이나 구체적 현실과 관계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인 듯 믿고 따르는 것) 신앙에 빠져 나도 망치고 남도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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