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한 가지 색으로 정해지지 않아,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너도 괜찮아
감정 마을에는 각기 다른 감정들이 살고 있었어요.
사랑이, 행복이, 슬픔이, 성냄이, 불안이, 좌절이…
감정들은 모두 자신의 망토를 걸치고 다녔지요.
사랑이는 빨간 망토를,
좌절이는 회색 망토를,
슬픔이는 파란 망토를,
행복이는 반짝이는 노랑 망토를 입고 있었어요.
그건 ‘타인들이 정해준 색’이었어요.
“사랑은 빨강이지~ 열정이니까!”
“좌절은 칙칙하고 어두운 느낌이잖아?”
“슬픔은 파랑이야. 눈물은 파란색이니까.”
“행복은 당연히 노랑, 반짝반짝 빛나는 색!”
감정들은 오래전부터 그런 줄만 알고 살았어요.
자신만의 진짜 색은 망토 안에 꽁꽁 감춘 채,
그저 타인들이 정해주는 색으로 칠해진 망토가 나여야한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거예요.
어느 날, 감정 마을에 ‘마음이’가 찾아왔어요.
마음이가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 마을의 고요한 공기를 살짝 흔들었고,
감정들은 하나둘씩 고개를 들어 그 존재를 바라보았어요.
감정들은 모두 모여서 물었어요.
“너는 어떤 감정이니?”
마음이는 고개를 갸웃했어요.
“나는… 뭐 하나로는 설명이 안 돼.
슬펐는데 웃기기도 했고,
기뻤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어.”
감정들은 웅성웅성했어요.
“그럴 수가 있어?”
“감정이 섞인다고?”
행복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슬픔이는 살짝 고개를 숙였어요.
그 순간, 좌절이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어요.
“나… 사실 말 안 했지만,
난 예전에 엄청 기뻤던 적이 있었어.
그땐 모든 게 잘 풀리는 것 같았고,
내가 꿈꾸던 일들이 하나둘씩 현실이 되는 것 같았어.”
감정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어요.
좌절이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엔 깊은 울림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날 응원해줬고,
나도 나를 믿었어.
그래서 더 많이 기대했고,
더 많이 바라보게 됐어.”
좌절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손끝으로 망토를 천천히 펼쳤어요.
그 안에는 진한 노랑빛이 숨어 있었어요.
햇살처럼 따뜻했던 순간,
희망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담겨 있었죠.
“하지만 그 기대가 무너졌을 때,
나는 나를 탓했어.
왜 그렇게 믿었을까,
왜 그렇게 꿈꿨을까…”
“그때부터 나는 회색이 되었어.
기쁨을 꺼내는 게 두려웠고,
희망을 품는게 망설여졌어.”
좌절이는 망토를 꼭 쥐며 말했어요.
“내 안엔 아직도 그 노랑빛이 남아 있어.
그건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증거야.
빛나던 마음이 꺼졌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어.”
감정들은 잠시 말이 없었어요.
좌절이의 이야기는 조용히 퍼져나가,
마치 오래된 기억을 건드리는 바람처럼
각자의 마음을 흔들었지요.
그 조용한 울림 속에서,
감정들은 하나둘씩 망토를 바라보았어요.
사실, 자신만의 색을 알고 있었지만
그걸 꺼내어 보여줄 용기가 없었어요.
타인들이 정해준 색이 아닌,
진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어쩐지 두렵고 낯설었거든요.
행복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어요.
“난 항상 웃어야 하는 줄 알았어.
사람들이 나를 보면 ‘밝다’, ‘즐겁다’고 말하니까
나는 늘 웃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행복이는 잠시 눈을 감았어요.
“근데 사실 난… 조용한 순간들이 좋아.
엄마가 말 없이 머리 쓰다듬어줄 때,
창밖으로 햇살이 살며시 들어올 때,
따뜻한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그 고요한 시간들…
그런 순간들이 내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
감정들은 조용히 행복이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행복이는 말을 이어갔어요.
“사람들은 내가 반짝이는 노랑빛이라고 생각해.
웃고, 떠들고, 활기찬 색이라고 말하지.
하지만 내 진짜 색은…
희미하고 부드러운 회색이야.
반짝이진 않지만, 잔잔하게 오래가는 색.
그건 내가 사랑하는 숨결,
그리고 오래도록 곁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담긴 색이야.”
행복이는 망토를 살짝 열었어요.
그 안에는 은은한 회색빛이 퍼져 있었어요.
그건 웃음 뒤에 숨겨진 따뜻한 고요함,
소란 속에서도 지켜내고 싶은 평온함이었죠.
사랑이는 오랫동안 망토를 움켜쥐고 있었어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천천히 손을 풀었어요.
그러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마음을 꺼내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죠.
“사람들이 날 예쁘고 따뜻하다고 말해.
사랑은 늘 좋은 감정이라고 말하지.
근데…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도 사랑이었어.”
사랑이는 말을 이어갔어요.
“좋아했기 때문에 실망했고,
사랑했기 때문에 미워지기도 했거든.
내 마음을 다 줬는데,
그 마음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나를 의심하게 됐어.”
“사랑은 따뜻하기도 하지만,
때론 너무 뜨거워서 상처를 남기기도 해.
그 열정이 지나치면,
기대가 되고, 집착이 되고,
결국엔 나를 아프게 했어.”
사랑이는 망토를 살짝 열었어요.
그 안에는 짙은 검정빛이 퍼져 있었어요.
그건 단순히 어두운 색이 아니었어요.
모든 감정을 품을 수 있는 깊고 깊은 색이였어요.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외로움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있었던 거예요.
“내 안엔 많은 감정들이 섞여 있어.
사랑은 그 모든 걸 끌어안는 감정이야.
그래서 더 복잡하고, 더 깊고,
때로는 가장 아픈 감정이기도 해.”
그 옆에서 불안이도 망토를 벗었어요.
조심스럽게, 마치 속마음을 들키는 것처럼 천천히 말했죠.
“나는 사람들 눈엔 조용하고 차가운 감정이래.
말도 없고, 표정도 없고, 그냥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대.
근데 사실 난,,, 속에서 계속 말하고 있어.”
불안이는 망토 끝을 꼭 쥐며 말을 이어갔어요.
“혹시 틀릴까 봐,
혹시 미움받을까 봐,
혹시 실수할까 봐…
내 머릿속은 하루 종일 걱정으로 가득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나는 이미 수십 가지 상황을 상상하고 있어.”
불안이의 말은 마치 고요한 속삭임 같았지만,
그 안엔 쉼 없이 흔들리는 마음이 담겨 있었죠.
“사람들은 나를 차갑다고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뜨겁게 움직이고 있어.
내 안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아.
조용한 겉모습 안에서,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어.”
불안이는 망토를 살짝 열었어요.
그 안에는 투명한 연보라빛이 퍼져 있었어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속에서 천천히 번져가는 색.
그건 조심스러운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
그리고 실수하지 않으려는 간절한 마음이었죠.
질투쟁이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말했어요.
작게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그 안엔 오래 숨겨왔던 진심이 담겨 있었죠.
“다들 나를 나쁜 감정이라고 해.
누군가를 질투하면 안 된다고,
그건 못난 마음이라고 말해…”
질투쟁이는 고개를 숙였어요.
“근데 난… 사실 부러웠던 거야.
누군가가 칭찬받는 걸 보면,
나도 그렇게 인정받고 싶었고,
누군가가 사랑받는 걸 보면,
나도 그렇게 꼭 안기고 싶었어.”
감정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어요.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어.
그저 나도 그 자리에 있고 싶었던 거야.
나도 누군가의 ‘좋아해’라는 말이 듣고 싶었고,
나도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싶었어.”
질투쟁이는 망토를 살짝 열었어요.
그 안에는 연한 분홍빛이 퍼져 있었어요.
그건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리고 외면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죠.
“내 안엔 늘 누군가를 향한 시선이 있었어.
그 시선은 부러움이었고,
그 부러움은 결국…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어.
그게 나의 시작이야.”
성냄이는 꿉꿉한 얼굴로 망토를 펄럭였어요.
하지만 그 눈빛은 생각보다 묵묵했고,
그 안에는 오래 참아온 말들이 숨어 있었어요.
“사람들은 나만 보면 무서워해.
내가 나타나면 다들 조용해지고,
마치 내가 모든 걸 망칠 것처럼 말하지.”
성냄이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천천히 말을 이어갔어요.
“근데 나는… 무시당했을 때 생긴 감정이야.
처음엔 그냥 속상했어.
‘왜 내 말은 안 들어줄까?’
‘왜 나만 계속 참아야 하지?’
그런 생각들이 쌓이고 또 쌓였어.”
“나는 상처를 오래 참고, 또 참았어.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면 나쁜 감정이라고 할까 봐,
사람들이 날 싫어할까 봐,
그냥 꾹꾹 눌러 담다가 곪아버린거야.”
성냄이는 망토를 살짝 열었어요.
그 안에는 불타는 듯한 주황빛이 퍼져 있었어요.
그건 단순한 화가 아니었어요.
속에서 오래도록 타오르던 불씨,
참고 또 참다가 결국 터져버린 외침이었죠.
“나는 불타는 주황빛이야.
뜨겁고, 아프고,
하지만 용기 내서 말하는 색이야.
‘나도 상처받았어’라고,
‘나도 들려주고 싶어’라고 말하는 감정이야.”
성냄이는 더 이상 무서운 감정이 아니었어요.
그건 오히려,
가장 오랫동안 참아온 고백이었고,
가장 용기 내어 꺼낸 진심이었어요.
구석에 있던 외로움이도 마치 누군가 들을까 조심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어요.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안에는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 담아둔 말들이 담겨 있었죠.
“나는 텅 비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내 안엔 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했어.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저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어.”
외로움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작은 숨을 내쉬었어요.
“근데 아무도 묻지 않았어.
내가 조용하니까,
그냥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나 봐.
사실은,,, 혼자 있는 게 익숙해진 거였는데.”
“나는 늘 누군가의 곁을 바라봤어.
함께 웃는 모습,
서로 기대는 모습,
그런 장면들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나도 그 안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어.”
외로움이는 망토를 살짝 열었어요.
그 안에는 짙은 남보라빛이 퍼져 있었어요.
그건 단순한 고요함이 아니었어요.
깊고 넓은 마음,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감정의 바다였죠.
“내 진짜 색은… 짙은 남보라야.
조용하지만 깊고,
언젠가 누군가가 다가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기를 기다리는 색.”
감정들은 외로움이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 순간, 외로움이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어요.
감정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우리, 이렇게 다채로운 색이었구나.”
“그런데 왜 지금껏 망토 색만 보고 서로를 판단했을까?”
“진짜 우린, 하나의 색으로 설명되지 않아.”
그날 이후 감정들은 더 이상 망토를 쓰지 않았어요.
대신, 서로의 진짜 색을 알아가며, 함께 물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때로는 섞이고, 때로는 번지고,
때로는 잘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지요.
외로움이도 기쁠 땐 소리 내어 웃을 수 있었고,
행복이도 조용히 눈물 흘릴 수 있었고,
질투쟁이도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었어요.
분노이도 따뜻한 손길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슬픔이도 누군가의 품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죠.
감정들은 더 이상 역할에 갇히지 않았어요.
그들은 자유롭게 움직였고 느끼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어요.
감정 마을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다양해졌어요.
무지개보다 더 풍부하고, 물감보다 더 섬세한 색들로 가득 찬
진짜 마음의 마을이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