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속도로 뿌리내리는 용기, 그건 무엇보다 대단한 힘이예요
콩밭 한가운데, 작고 동그란 완두콩이 살고 있었어요.
완두는 조용한 콩이었어요.
크게 튀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았지만
햇살 아래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리며 자라고 있었지요.
그런데 옆줄에 있던 콩들은 달랐어요.
“야, 너 진짜 작다. 콩 맞아?”
강낭콩이 웃으며 말했어요.
“초록초록한 게 덜 익은 거 아냐?”
검은콩이 킥킥 웃고,
“껍질도 얇고, 흐물흐물해 보여.”
대두가 말했어요.
“넌 우리랑 섞이면 티도 안 나. 조용해서 심심해.”
병아리콩은 아예 못 들은 척 돌아섰어요.
완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땅 속으로 더 숨고만 싶었어요.
날이 갈수록 콩들의 말은 더 거칠어졌어요.
“완두는 물도 조금 먹는다며? 게으른 거 아냐?”
“햇볕도 싫어한다던데? 유리콩이네~”
완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쪽이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어요.
밤이 되면
완두는 혼자 조용히 자신에게 물었어요.
“나는 왜 이 콩밭에 심어진 걸까?
나는 왜 나일까…”
그러던 어느 날,
콩밭에 가뭄이 들었어요.
햇볕은 이글이글 내리쬐고,
땅은 딱딱하게 갈라졌어요.
강낭콩의 잎은 말라가고,
대두는 크기가 커서 금방 지쳐버렸어요.
검은콩은 더 이상 웃지 않았고,
병아리콩은 조용히 시들어가고 있었어요.
하지만 완두는…
여전히 조용히, 뿌리를 아래로 아래로 뻗고 있었어요.
작았기 때문에
더 깊이, 더 빠르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거예요.
며칠 뒤, 밭 주인이 콩들을 살펴보다가 말했어요.
“어라? 이 조그만 콩은 멀쩡하네?
푸르기도 하고, 단단하고…
이 콩이 제일 싱싱하네!”
다른 콩들은 놀란 눈으로 완두를 바라봤어요.
“완두가 제일 작았는데…
제일 먼저 시들 줄 알았는데…”
완두는 고개를 들었어요.
햇살 속에서, 누구보다 단단하게 자라고 있었어요.
완두는 속으로 조용히 말했어요.
“나는 작지만,
더 깊이 자랄 수 있어.
나는 작지만,
끝까지 버틸 수 있어.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 단단해.”
가을이 오고, 콩들을 수확하는 날.
밭 주인은 작은 완두를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말했어요.
“이 아이는 꼭꼭 알이 찼네.
보기엔 작지만, 속은 꽉 찼구먼.”
완두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느꼈어요.
다른 콩들처럼 크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견디고 살아온 자신이 자랑스러웠어요.
완두는 오늘도 묵묵히 말해요.
“나는 작지만 단단해.
그리고
나처럼 조용히 버티는 친구들도
분명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