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의 바다를 달리다

서핑, 당신도 한번쯤은

by 배박사

또 쫄았다.


나에게 다가오는 크고 강한 파도를 앞두고 “이건 좋은 파도가 아닐 거야“ 라며 서둘러 패들링하며 파도를 거슬러 나갔다. 왠걸, 내가 지나친 파도는 금세 부서지지도 않고 세모의 형태를 유지하며 A자의 형태로 천천히 부서졌다. 내 뒤에 있던 운이 좋은 서퍼는 그 파도를 잡아타고 크루징을 시작했다.



다음 파도가 온다.


아까보다 조금 더 커보인다. 내 앞에서 파도가 깨질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든다. 그러나 계속 파도를 흘려보내게되면 오늘은 아무 소득이 없을 것이다. 이번엔 기필코 파도를 잡고야 만다는 생각으로 파도의 상태를 양옆으로 확인하며 패들링을 시작한다. 이런, 파도의 날이 바짝 섰다. 상체를 최대한 세우고 패들링을 더욱 세차게 한다. 탁- 파도가 보드에 닿는 순간 보드의 각이 선다. 이내 나의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보드와 함께 바다 통돌이를 당한다.



후우-후우.


정신이 바짝 든다. 그리고 곧장 복기를 시작한다. 나의 상체를 더욱 꼿꼿하게 세우지 못한 탓인지, 보드를 사이드로 돌려 각이 서는 것을 방지했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파도가 구렸던 건지. 내 주변에 있던 서퍼들은 내가 괜찮은지 슬쩍 눈길을 준다. 나는 괜찮다며 보드에 올라 패들링을 시작한다. 다시 파도를 타기 위해.



최악의 조건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고등학교 1학년 수학을 미리 공부해야 한다는 등의 미친 대한민국 사교육을 겪으며 나의 몸은 책상에 머리를 박고 공부하기에 적합한 몸으로 발전해왔다. 거북목, 라운드숄더는 기본이요, 하도 오래 앉아있었어서인지 햄스트링은 너무나 짧아졌다. 쭈그려 앉아 있기도 버거운 발목의 가동성과 뻣뻣한 고관절은 이 악조건을 더욱 더 악화시켰다. 또한 비대한 풍선근육들에 비해 코어는 한없이 약했다. 이 모든 건 서핑을 잘하기 위한 조건과 반대되는 조건인데, 상체를 활짝 열어야 하고, 테이크오프를 위해 하체가 유연해야 하며, 또 흔들리는 파도 속에서 밸런스를 잡기 위해 코어는 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서핑은 포기할 수가 없다.

저 먼 바다를 여행해 온 파도에 몸을 실어 자연과 하나되는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내가 이 파도를 탈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서 파도를 잡아타고 크루징하는 일련의 과정은 마치 첫사랑과의 키스처럼 짜릿하다. 등 뒤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캘리포니아의 청명한 하늘 그리고 그 가운데서 숨쉬는 나, 내 삶에 이 이상을 바랄 수 없다. 인생에서 중요한건 얼마를 갖고 있고, 어떤 차를 몰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가 아님을 몸소 느끼며 나의 삶의 가치를 정렬한다. 자유와 행복, 그리고 기쁨이 나에게 가장 중요함을.


쉽지는 않다.

거북목, 라운드숄더를 교정하기 위해 매일 10분 이상을 스트레칭하고,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햄스트링과 고관절 스트레칭을 하고, 밸런스보드 위에서 스쿼트를 하며 코어 근육을 단련한다. 몸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심폐지구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을 한다. 패들링을 위해 턱걸이와 전완근 훈련을 한다. 보드에서 순간적인 속도로 자세를 잡기 위해 버피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반복하고, 반복한다.



다시 파도가 온다.


이 파도는 다른 파도와 다르게 속도가 좀 더 빠르고 저 멀리까지 길게 이어져있다. 숨을 고르고, 자세를 잡고, 패들링을 시작한다. 상체를 들고 두 발은 보드 위에 붙이고 코어에 힘을 준다. 어느새 파도가 탁- 하고 보드에 닿고, 그 순간 머리를 숙이고 보드에 각을 주며 패들링을 세차게 한다. 어느새 보드는 파도의 면을 따라 글라이딩하고, 나는 그 순간 테이크오프하여 보드 위에 선다. ‘잡았다.’ 어느새 나는 파도가 열어준 길을 따라 크루징을 시작했다. 파도와 속도를 맞추며 자연과 하나가 된다. 이 순간만큼은 속세의 고민 없이 오직 자유와 행복 뿐이다.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전까지는 서핑을 하고 싶다. 서핑을 잘하기 위해 스트레칭을 매일 하고, 바다의 컨디션을 매일 체크하고, 멋진 파도를 타서 기뻐 마음껏 웃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캘리포니아에 방문 예정이라구요? 일정에 한번쯤은 서핑을 추천합니다. 서핑 인스트럭터를 고용하여 전문가의 지도에 따라 서핑을 경험해 보세요. 웻수트를 입고, 보드를 들고 바다에 입수하여 캘리포니아의 맑은 하늘 아래에서 파도를 몸소 느껴보세요. 가끔 운이 좋으면 당신의 옆에서 조개를 까고 있는 수달을 마주칠 수도 있답니다. 운이 좋다면 파도를 잡아 탈 수도 있을거에요. 축하합니다. 당신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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