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하프 마라톤

by 초번

대학생 시절, 달리기 동아리에 들어오고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판데믹을 맞았다.


“당분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합니다. 집에계세요.”


처음에는 내심 좋았다. 캠퍼스에 가지 않아도 되다는건, 이동시간이 줄어 집에서 과제할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 그렇다면 좀 더 좋은 아웃풋을 낼 수 있다는것, 또 잠을 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칼리지에서 셋째 학기를 다니던 그 당시, 나는 비쥬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수업을 듣고있었다. 매주 스케치북과 펜을 들고 국립 역사 박물관, 자동차 박물관, 이케아 등으로 필드트립을 떠나 현장에서 사물을 보며 스케치하는 수업이었다. 이 수업을 지도하시던 교수님(지도 강사님)은 굉장한 달리기 광이셨다. 수업 중 스케치 데모를 하실 때 그는 가끔 우리들에게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애정을 보이셨는데, 그는 20년 넘게 달리기를 꾸준히 하며 마라톤, 울트라 마라톤을 뛰시는 엄청난 체력과 마인드를 가진 분이셨다. 그럴때면 나는 내가 속해있던 달리기 동아리에 대해서도 자랑스레 이야기 했다. 작은 디자인 사립 학교에 보기 드문 달리기 무리가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보이던 그는 응원 차로 주말에 뛰는 5K 모임에 나오셔 같이 뛰기도 했다. 그 뒤로 교수님과 친분이 생겼고 스트라바 친구까지되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달리기 일지를 엿볼 수 있었다.


‘시간 5:58am, 속도 7:00 /mi, 거리 10.66 /mi…’

‘거리 42mi, 52.99mi… ’


사실 로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그의 엄청난 PR과 근면 성실 꾸준한 그의 달리기 기록은 나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판데믹이 터지고 나서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며 현장학습은 중단되었고, 대면 달리기 모임도 마찬가지로 중단되었다. 하루 이틀 일주일 집에만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나는 슬슬 번아웃이 오는 것 같았다. 온라인 수업을 듣고나면 피곤함이 몰아오기도 하고, 갑갑했다. 집에서 수업과 과제하는 것 이외에 몸을 움직여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은 매일 아침 혹은 저녁, 집 밖으로 나와 뒷 동네 한바퀴 돌고 오는 테스크를 나에게 부여한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꽤나 가파른 언덕에 위치했던 당시 나의 집이었지만 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트레이닝을 시작했고 처음엔 1마일 조차 힘들던 언덕이 조금씩 할만하다고 느껴지고 1마일 에서 1.5마일, 2마일… 점점 늘릴 수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내 생일이 다가왔다. 사회적 거리두기 규칙이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던 당시, 다른 사람들은 못 만났지만 어머니께서 캠퍼스 근처에 따로 살던 나를 방문해 생일을 축하해주셨다. 촛불이 꽃여있는 생일 케이크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그리고 달리기광 교수님은 내 포스팅에 답장하셨다.


‘Happy birthday, Yerin. Did you run 19 miles to celebrate?’


(*우선 당시 내 나이는 19살이 아니고 22살이다. 교수님은 내 나이를 모른다.) 장난식으로 던진 메세지였지만 왜인지 그의 문자에 나는 자극을 받았다. 내 나이 22세, 키로로 22K, 마일로 환산하면 13.6mi. 우연인지 운명인지 거의 딱 하프 마라톤 거리였다. 이때까지 5K 달려본게 전부인데, 이에 4배는 더 걸리는 거리라니. 사실 그게 얼마나 걸리는 거리인지 가늠이 안 갔고 그래서인지 오히려 해볼만 한 도전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날을 맞이해 이 해를 기억할만한 특별한 기록을 만드는 이 아이디어에 확 끌렸다. 그리고 나는 답장했다.


‘I'll do it this weekend.’


하프 마라톤 거리가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꾸준히 업힐을 달려온 나에게는 어떻게든 완주는 할 수 있겠지 하는 근거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내 생일이었던 월요일로부터 6일 후인 일요일 아침으로 생일 축하 기념 22K 달리기 날을 정했다. 그 일주일 동안 나름 이를 위한 준비 했다. 이로 말할 것 같으면 그동안 달리던 거리 (2-3mi 남짓)을 조금씩 늘려 꾸준히 달리는 것, 건강한 식단 유지하는 것이 전부였다. 거기에 인터넷을 뒤져 찾은 발목 테이핑 하는법을 배웠고, 달리기 전 아침에 먹을 식단 (고구마, 당근, 치즈)을 준비하고 대망의 달리기날을 고대했다.

당일 아침, 계획대로 5시 기상, 아침을 제 시간에 맞춰 먹고, 발목 테이핑을 하며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만발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6시 반, 집 문을 열고 나섰다.


루트는 집 문 밖을 나서는 순간 부터 학교 캠퍼스로 가는 길 중간지점에서 돌아, 왔던 길로 다시 남은 절반을 돌아와 집 문 앞에서 끝마치는 루트였다.


첫 1키로는 대부분 다운힐이었다. 쭉쭉쭉 내려가며 속으로 ‘중간 지점까지는 멈추지 말고 가자.’는 다짐을 하고 달렸다. 지루함을 방지하기위해, 또 이 상징적인 달리기를 기리기 위해 한 킬로를 달리는 동안 1살, 2살, 3살 그 시절의 나를 기억했다. 물론 다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희미하게 남아있던 추억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 살기 바빴던 나는 이렇게 지나온 과거를 어떠한 방해도 없이 회상하는 시간이 새롭기도 했고 달콤하기도 했다. 달리기도 생각보다 잘 됐다. 정말 멈추지 않고 절반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는 달리 장기간으로 달리다보니 오히려 두 다리에 관성이 생겨 움직임을 지속하는게 수월해졌다. 오히려 멈추는게 이상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11k 지점에 도달했다.


‘우와…절반까지 쉬지않고 왔다!!’


나는 이 기쁨을 혼자서 느끼기 아까워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나 한번도 쉬지않고 11키로를 달렸어! 난생 처음으로! 나 다시 마저 달리러 갈게!”


기분이 좋았다. 응원을 받고 통화를 끊은 뒤 나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나머지 11키로를 마저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대견하다고 느꼈다.


다시 돌아가는 길은 처음보다는 좀 더 어려웠다. 장시간 달리다보니 점점 다리에도 힘이 드는게 느껴졌고 정신적으로도 힘이 더 들었다. 그럴 때 내가 있는 거리를 생각하고 그때의 기억을 생각하며 힘듦으로부터 생각을 분리를 시키니 좀 괜찮았다. 17k, 18k, 19k… 현재 나이에 가까이 오자 생각나는 것들이 더 많았고 미국으로 이민을 오기 전 해의 친구들과의 추억들과 미국에 오자마자 정신없이 지나간 해를 되새기다보니 시간이 다시 금방 갔다. 마지막 1키로. 집까지 가기위한 엄청난 업힐을 올라서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가자 가자! 할 수 있다! 다왔어!!’ 이 말만 혼자서 몇번을 뱉었는지 모른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일요일 아침, 평소같으면 이제 천천히 하루를 시작하는 고요한 시간속에서 낑낑 업힐을 올라서, 나는 드디어 마지막 골 지점인 집 앞에 무사히 도착했다.

와. 해냈다. 22K, 나의 첫 하프 마라톤 완주다.


당시 살던 집은 교회 지인의 가정집이었고 나는 별채인 게스트 하우스에 따로 살고있었다. 혼자만의 하프를 끝마치고 곧바로 매주 일요일 있던 가정 예배를 드리러 올라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드레날린을 뿜뿜 대며 기분이 좋고 몸에 활력이 돌았던 상태다. 그로부터 1시간 가량의 예배가 끝났고 가만히 앉아있던 몸을 일으키는 순간 느꼈다. 걸을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무릎을 굽히기가 힘들었다. 그렇다, 일주일 만의 어설픈 단거리 트레이닝만으로는 내 두 다리는 하프를 뛸 만한 준비가 아직 못됐던거였다. 평소에 한번도 달려보지 않던 장거리로 인해 내 몸도 이 상태를 어찌할 줄 모르는 바였다. 러너스 하이로 기분은 내내 좋았지만 다소 당황스럽게 그날은 하루종일 다리를 부여잡고 거의 손으로 다리를 움직이며 걸었다.


다행히도 일주일이 지나면서 두 다리는 서서히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나는 다시 제대로 걸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귀한 레슨 또한 얻었다. 건강한 몸과 다리라도, 평소에 안하던 거리를 달리는 뒤에는 후유증이 따른다는 것을. 아무튼 이날은 내 생애 첫 하프 마라톤으로 기록되었고, 내 나이만큼 뛰며 2시간 반동안 지나온 세월로 추억여행을 다녀온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 인생에 자물쇠로 잠겨있던 퀘스트를 하나 깬 기분이었다.


‘생일 기념 22키로 달리기.’


의미 있는 이 날을 내 기록과 함께 SNS에 올렸다. 달리기광 교수님도 나를 대견해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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