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멈춰선 안 될 것 같아

by 포레저

‘여기서 멈춰선 안 될 것 같아.’


8, 9 마일쯤이였을까? 나의 세 번째 하프 마라톤인 오클랜드 마라톤에서 든 생각이었다.

사실 이런 생각이 달리기 대회에서 든 건 처음이 아니었다. 9개월 전쯤의 첫 하프 마라톤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꽤나 다른 이유로, 다른 의미를 담고 그 생각이 찾아왔었다.


나의 첫 하프 마라톤에는 내가 남들에게 들려주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나는 진짜로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달리고 또 달렸었다. 무릎이 너무나도 아픈데도 고통을 참고 달리기도 했었다. 그 지나친 열정은 욕심이 되어 넉 달 안에 하프 마라톤을 달리는 도전을 했고, 그 욕심을 담아 무리한 완주 목표 시간을 세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뛰는 걸 멈추지 말자, 힘들면 속도를 늦추되 걷지는 말자 라고 나에게 온갖 마인드 컨트롤과 다짐을 했지만,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결승점까지 1마일이 남은 지점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미친 듯이 골라내 쉬어야만 했다.

흔히 달리기할 때마다 힘들면 밥 먹듯이 말하는 ‘죽을것 같다‘ 라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숨이 안 쉬어져서 ‘나 이대로 죽겠구나’ 라는 생각이어서였다.

그렇게 내가 세운 목표 시간 안에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내 자신을 향한 실망과 자책이 되어 돌아왔을 때, 이 공황발작 이라는 친구가 다시 찾아와 나의 목을 졸라왔던 것이었다.


육체적으로 나약한 순간, 정신도 취약해져서 불안감이 더 강화된다고 한다. 나의 첫 공황발작은 그런 순간에 찾아왔었다.

대학원 시절 나는 긴 연애 끝 이별을 맞이하고 도망치듯 오레건 본가로 올라가 한 학기를 보내기로 결정 했었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세상은 멈춘 듯해서 집 밖을 나갈 일이 별로 없었고, 또 박사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qualifying exam 준비를 위해 더 편하게 먹고 자고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지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무엇보다 전 여친과 추억이 담긴 조그만한 도시 구석 곳곳 들로부터 상처 받기 두려워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결정으로 인해 그때 그 시절 나는 참으로 우울하고 힘들었었다. 코로나를 핑계 삼아 내 자신을 집 안에 가두어 하루 종일 집 밖을 안 나가는 게 일상이었으며, 심할 땐 일주일간 밖에 발을 내딛지도 않았었다. 시험 준비를 핑계 삼아 친구들과 연락도 안 했었고, 심지어 가족들과도 별 대화를 나누지 않았었다. 그렇게 세상과 단절된 삶을 반복하다 보니 내 정신 건강은 피폐해졌었고 늪지대에 빠진 것처럼 나날이 더 의욕이 없이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다 보니 시험 준비에 집중을 하지 못한 건 당연한 일 이였고,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는 쌓일 대로 쌓여서 잠을 제대로 못 자다 보니 나의 몸은 허약해져 있던 것이였다.

시험이 며칠 남지 않은 아침, 부족한 수면을 무릅쓰고 일찍 일어나 평소처럼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난 망했어 하며 자포자기 심정으로 온갖 근심 걱정을 다 지고 일어날 때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화장실 싱크대를 있는 힘껏 쥐어야 했다. 숨이 안 쉬어졌다. 정말로 거기서 그렇게 죽는 줄 알았다. 그러곤 온갖 내 자신을 처참하게 무너트리는 나쁜 생각들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내 머리를 칼로 쑤시듯이 깊게 파고 들어왔다.


그때 그 순간 나는, 남들보다 시험을 1년이나 늦추었지만 준비를 열심히 하지 않은 미련한 사람이었고, 부모님께 달갑지 못하고 걱정이나 시키던 무능한 사람이었고, 나를 나보다도 더 사랑해주던 사람이 힘들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해 그 인연을 지키지 못한 형편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볼품 없고 별 볼 일 없는 존재였다.


첫 마라톤에서 공황발작이 찾아온 이유를 깨닫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 자신을 향한 실망과 자책이 아니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겠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었다.

내 자신을 갈아 넣듯 온 힘을 다해 달렸던 이유는, 바로 남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고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인생의 변화의 느낌이 컸던 만큼,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수많은 좋은 인연들이 의아했다. 왜 이렇게 다들 나를 챙겨주는 걸까? 왜 나를 좋아해주는 걸까? 일시적인 건 아닐까? 의문이 생겼던 것 같다. 나에게 큰 힘과 동기부여가 되었던 러닝 그룹 사람들의 칭찬과 응원, 슈퍼 루키 타이틀 등등은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지켜내야만 하는 나의 자존감이 되어버렸었다.

내 별거 아닌 모습을 알아차리지 말아달라고, 난 볼품 없고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아니라고, 보여주고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여기서 멈춰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달렸던 것 같다. 좋은 기록으로 완주를 못하면 마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줄 것만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나의 어떤 점을 보고 나를 좋아해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어쩌면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누군가 날 좋게 봐준다면, 그냥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 눈에는 당당하고, 멋지고, 좋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준다는 건, 그들도 비슷한 이유로 날 좋아해주는 거겠지 한다. 나의 낮은 자존감, 불안감, 인정을 받고 싶은 갈망과 버림의 두려움은 내 주변 사람들의 온정에 대한 확신이 커지면서 점차 줄어들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좋은 기록을 못 세우더라도, 완주를 못 하더라도 나에게 실망이 아닌 격려를 보내줄 사람들이란 것을. 잠깐 머물러 가는 인연들이 아닌 오래 볼 사람들이란 것을.

주변에 그런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맞이해준 그들처럼, 나도 그저 나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이젠 조금 덜 나에게 내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오클랜드의 살랑이는 아침 바람과 따스한 햇빛 사이로 우스꽝스러운 바나나 코스튬을 한 러너가 지나간다.

시각 장애인과 그의 도우미들은 비켜주세요 하며 날 거뜬히 제치고 쌩 하며 앞질러 간다.

코스 곳곳마다 재밌고 창의적인 문구가 적힌 팻말들을 들고 사람들이 서 있다.

친구와 가족을 응원하는 그들의 목청 높은 목소리는 밴드들의 즐거운 연주들과 함께 이어폰을 뚫고 선명하게 내 귀로 들려온다.

내 애플 워치를 볼 필요가 없다.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달리기 대회의 에너지와 매력에 흠뻑 빠져, 너무나도 즐겁고 몸이 날아갈 것만 같다.

도착 후, 내가 좋아하고 날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맘껏 먹으며, 달리기를 완주한 성취감에 취해 재잘재잘 떠들 것을 떠올려보니 신이 나버려 생각한다.


‘여기서 멈춰선 안 될 것 같아.’


tempImageLHRWJ7.heic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베이 브리지(Bay 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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