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 바람 사이, 나의 계절> 시리즈 2 (3)
올봄,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앉던 어느 날
나는 작은 텃밭에 첫 삽을 떴다.
씨앗을 심고 거름을 주며 흙과 눈을 맞추던 그 시간들은 고요한 명상 같았다.
땀과 바람이 섞인 기다림 끝에 상추, 풋고추, 오이, 애호박, 깻잎, 그리고 탐스러운 토마토까지—
계절은 나의 정성에 응답하듯 풍성한 선물을 내주었다.
매일 아침, 한 광주리의 채소를 따서 식탁에 올릴 때면
작은 땅이 주는 크나큰 기쁨이 마음을 채웠다.
이른 햇살 아래 반짝이던 토마토의 붉은빛,
바람에 살랑이던 깻잎의 향기,
손끝에 전해지던 흙의 온기,
텃밭은 어느새 내 삶의 일부, 하루를 여는 첫 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기예보가 첫 서리의 소식을 전했다.
가을의 끝자락, 떠날 준비를 하는 계절 앞에서
나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듯 텃밭으로 향했다.
봄부터 여름의 폭염을 견뎌온 채소들이 서리를 맞기 전,
그들의 마지막 숨결을 품어주고 싶었다.
깻잎과 풋고추를 모으고, 덜 익은 토마토를 조심스레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실온에서 천천히 붉어질 그 모습을 떠올리며,
마치 계절이 저녁빛으로 자신을 물들이는 순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 치기를 마친 향나무와 라일락 사이로 부는 바람이 차가웠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고단함 속에도 미소가 번졌다.
수확이 끝난 자리에는 허무가 아닌 감사가 남았다.
흙은 다시 겨울을 품을 준비를 하고,
나는 또 다른 봄을 기다린다.
나에게 텃밭은 단순한 땅이 아니다.
삶의 리듬을 가르쳐주는 스승이며,
자연이 들려주는 위로의 언어다.
계절은 바뀌어도 텃밭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오늘의 가을걷이가 내일의 희망이 되듯,
흙 속에는 언제나 새 생명이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