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 바람 사이, 나의 계절> 시리즈 2 (5)
하루가 짧아지고, 햇살의 각도가 달라졌다.
이른 아침 창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 속에 미세한 단풍 냄새가 섞여 있다.
햇살은 여전히 부드럽지만, 그 안에는 조용한 서늘함이 스며든다.
캐나다의 가을은 언제나 그렇게 온다 — 소리 없이, 그러나 단호하게.
며칠 전, 텃밭의 마지막 상추를 따며 여름과 작별했다.
빈 화분을 정리하는 일은 어쩐지 마음을 비우는 일과 닮아 있었다.
손끝에 닿는 흙의 감촉이 차가워질수록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수확이 끝났다는 아쉬움보다,
또 한 계절을 온전히 살아냈다는 안도감이 더 크다.
이곳의 계절은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가을은 짧고, 겨울은 길다.
한 번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그 흰 풍경이 몇 달을 이어간다.
때로는 그 길고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내가 여전히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얀 눈이 덮인 거리 위를 걸으며
묘한 외로움과 평화를 동시에 느낀다.
그러나 그 속에서 배운 것도 있다.
봄이 더디게 오기에, 첫 새싹의 기쁨은 더 크고,
햇살이 귀하기에, 그 따스함은 더 깊게 스며든다.
긴 겨울이 가르쳐준 것은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조용히 내 마음의 계절을 배우고 있다.
가끔은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지난 계절을 떠올린다.
여름의 텃밭, 가을의 단풍길, 겨울의 눈 덮인 공원….
그 모든 풍경이 스쳐 지나가도
이상하게도 마음은 여전히 햇살과 바람 사이에 머물러 있다.
그곳이 나의 중심이자, 변하지 않는 쉼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민자의 삶은 언제나 낯섦과 익숙함이 교차하는 길이다.
언어는 익숙해져도,
마음의 언어는 여전히 고향의 리듬을 닮아 있다.
가을 냄새를 맡을 때면
어린 시절 골목길의 풍경이 문득 떠오른다.
그 기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의 바람 속에 함께 머물러 있다는 것.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뀐다.
텃밭은 잠시 멈춰 서 있지만
땅속에서는 또 다른 생명이 준비되고 있다.
겉으로는 끝나 보이지만,
모든 것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 사실이 새삼 위로가 된다.
오늘도 창밖으로 노란 햇살이 기울고,
바람은 이마를 스치며 부드럽게 속삭인다.
“괜찮아, 모든 건 지나가지만, 그 안의 마음은 남아 있단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조용히 커피잔을 들며 마음속으로 되뇐다.
시간은 흐르지만, 마음은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