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캐나다 일상> 시리즈 7(9)
얼마 전, 우리 집 부엌에 아주 작은 위기가 찾아왔다. 저녁을 준비하던 중, 식기세척기 아래에서 ‘톡… 톡…’ 하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늘 익숙하던 공간이었지만, 그날은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고개를 숙여 살펴보니 파이프 연결 부위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처음엔 한두 방울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조금 새다 말겠지.” 그렇게 넘기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물방울은 굵어졌고 바닥에 작은 웅덩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방울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마음속에도 알 수 없는 긴장이 퍼져 나갔다.
함께라서 든든했던 순간
다행히 남편은 재택근무 중이었다. 상황을 보자마자 그는 망설임 없이 수돗물 메인 밸브를 잠갔다. 그 단순한 동작 하나가 더 큰 피해를 막아주었다. 작은 위기 앞에서도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혼자였다면 어찌할 바를 몰라 서둘렀을 상황이었지만, 남편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정시켰다. 이민자의 삶에서 ‘함께 있음’은 위기를 절반으로 줄여주는 힘이라는 걸, 그 순간 다시 깨달았다.
우리는 곧바로 배관공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오늘은 어렵고, 내일 오후쯤이나 가능합니다.” 그 짧은 말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하루 동안 물을 쓰지 못한 채 집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몇 군데 더 연락한 끝에 한 배관공이 말했다.
“내일 아침 9시에 갈게요.”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거의 부탁하듯 말했다. “꼭 시간 맞춰 와주세요.”
불편함 속에서 발견한 협력
물이 잠긴 집은 생각보다 훨씬 불편했다. 화장실도, 샤워도, 요리도 모두 제한되었다.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호텔에서 잘까? 아니면 회사에 가서 샤워라도 하고 올까. 직원 샤워실 있잖아.”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호텔은 싫고, 사무실 가서 샤워만 하고 오자.”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함 속에서도 해결책을 함께 찾는 이 과정이, 우리 부부의 또 다른 협력이었다.
저녁은 피자를 시켜 먹었다.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오히려 작은 휴식처럼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았을 장면들이, 그날은 모두 고맙게 다가왔다. 밤이 되어 우리는 함께 남편의 사무실로 가서 샤워를 하고 돌아왔다. 차 안에서 남편은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그 손길 속에는 “괜찮아, 우리 같이 해결하고 있잖아”라는 말이 담겨 있었다.
물 한 방울이 가르쳐준 감사
그날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다’는 이유로 흘려보내며 살고 있었을까. 수도꼭지를 틀면 언제나 흐르던 물,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일상의 편리함. 물이 멈추자 그 모든 것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작은 규칙을 하나 정했다. “1층 화장실은 배관공을 위해 비워두고, 2층 화장실 2개는 각각 나눠 쓰자.” 아주 사소한 약속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작은 위기 앞에서도 존중과 신뢰가 우리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캐나다는 물이 풍부한 나라다. 호수가 많고, 물이 늘 곁에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물을 아끼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며 깨달았다. 풍요는 때로 무심함이 되고, 익숙함은 감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는 것을.
다시 흐르는 물, 다시 돌아온 일상
다음 날 아침, 배관공은 약속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새 파이프가 연결되고 수돗물을 트는 순간, 싱크대에서 ‘촤아—’ 하고 물이 흘러내렸다. 그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마치 집 안에 다시 숨이 돌아온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웃었다. “이제야 집이 다시 살아난 것 같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은 다시 흐르고, 일상도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작은 위기가 남긴 것
물 한 방울이 멈췄던 하루는 길고 불편했지만, 그 하루가 남긴 깨달음은 오래 남았다. 이번 일은 단순한 불편의 기억이 아니라, 감사와 배려,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도 싱크대 앞에 설 때면 그날의 물방울이 떠오른다.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많은 조건 위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그 평범함이 얼마나 귀한지.
우리의 일상은 늘 조용히 흐르지만, 멈추어 보았을 때 비로소 기적처럼 느껴진다. 작은 물방울이 가르쳐준 감사는, 앞으로의 하루를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고맙게 살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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