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의 무력함
다음날, 세탁소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어머니는 돌아오지않았다. 일도와 삼이는 몰래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 잠긴 세탁소 안에서 아버지는 힘없이 앉아 있었다.
“일도야… 엄마는 어디 갔니?” 아버지의 목소리는 지친 듯 힘이 없었다.
“몰라요. 어젯밤에도 밖에서 잤어요.”
일도의 대답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낡은 양은 냄비를 건넸다. “옆집 가서 돼지국밥 좀 사와. 밥은 해놨으니까. 같이 먹자.”
일도는 아버지가 건네준 냅비를 들고 옆집으로 갔다. 돼지부속 고기랑 순대에선 모락모락 김이 났고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국물은 진하고 걸쭉했으며, 기름기가 둥둥 떠 있었다. 그 맛은 혼란스럽던 시절, 누구도 제대로 말 걸어주지 않던 그때, 일도의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주었다.
일도는 지금도 그 국밥맛을 잊지 못했다.
그 순간, 일도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절절히 느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이 어쩌면 가족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일도의 사춘기는 아버지가 술을 드실 때마다 부딪히기 일쑤였고 몸싸움이 되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아버지는 한 발 물러 서는 것 같았다.
몇 해가 흘렀다. 일도는 청년이 되었고, 할 일 없는 일도는 세탁소를 도왔다. 연탄불 위에서 보일러에서 물이 끓으면, 증기다리미를 사용할 수 있다. 손이 느리고 실수도 잦았지만, 바지 주룸선이 두 개가 되는 날도 많았다.
“괜찮아. 해봐라.” 어머니는 그때마다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손님들도 젊은 네 얼굴 보면 마음이 풀릴 거야.”
겨울이었다. 그날은 눈이 펑펑 내렸다. 일도는 다림질을 망치고 나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데 엄마가 말을 건넸다. “수고했다. 그 옷, 네가 다시 해보자.”
그 말 한마디가 일도의 마음을 서서히 녹였다.
얼마 후, 아버지는 일도를 위해 드라이클리닝 기계를 들여왔다. 기름 냄새를 풍기며 돌아가는 기계 소리가 세탁소 안을 가득 채웠다.
“이번엔 네가 맡아해 봐라.” 아버지는 짧게 말했다.
일도는 기계를 익히고 천에 때가 묻은 것은 미리 손질을 해야 한다. 손끝은 여전히 느렸지만, 마음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미소가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술은 줄었고, 고성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말없이 옷 한 벌을 내밀며 말했다.
“내 옷도 한 번 다려줄래?”
기름 냄새와 증기로 가득한 세탁소. 돌아가는 기계 소리 사이로, 그날 일도의 손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조용히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고, 일도는 그의 등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일도의 노력에도 체개적인 사업수완을 익히지 못한 탓에 여전히 세탁소 사업은 지지분진 하였고 그런 연유로 일도는 노동의 비용도 받지 않았고 받을 생각도 없었다.
자신을 위해 대가를 받는 것에 소홀한 일도의 성품이 그에게어떤 시련이 닥칠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뜻 없이 흐르고
일도는 세탁소일을 맡은 듯 안 맡은 듯 흥미를 잃어갔고 당시 트렌드가 되고 있는 가전제품 수리기술자에 관심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