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준의 교회사역
담임목사 역시 이 흐름 속에 있었다. 그는 남미에 세 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현지 지도자를 세우는 데 힘을 쏟았다. 때로는 헌신적인 청년들을 메릴랜드로 초청해 신학교에 입학시키고,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까지 알선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석준에게 털어놓았다.
“사실은… 신학보다는 미국에서 일하고 싶어서 왔어요.”
“아버지도 노동을 하다가 다쳐서 제가 돈을 보내지 않으면 동생들도 굶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석준은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사람마다 각자의 길이 있는 법이니까요. 여기까지 온 용기만으로도, 무언가를 찾게 될 거예요.”
“하지만 명심하세요. 불법 체류는 안 됩니다. 야간신학 개설도 되어있으니 힘들더라도 학교는 나가세요”
교회는 아이들까지 포함해 백여 명이 모이는 공동체였다. 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는 각각 두 명의 전도사가 맡고 있었고, 석준은 장년부를 책임지고 있었다. 담임목사가 선교지에 있는 동안, 주일 설교와 행정 업무도 그의 몫이었다. 수요예배는 전도사들이 돌아가며 인도했다.
사모 정희는 예배 후 식당에서 식사 준비를 도왔다. 늘 솔선수범하며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을 오갔다.
“이건 제가 할 테니 좀 쉬세요.”
나이 든 집사님이 말하자, 정희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이런 일, 원래 좋아해요. 제 염려는 마시고 집사님은 하시던 거 마저 하세요.”
정희는 늘 정중했고, 말없이 몸을 움직이며 섬겼다. 신학의 깊이보다는 삶으로 전하는 겸손이 오히려 그녀를 더 빛나게 했다.
어느 날, 민욱 전도사가 석준을 찾았다.
“전도집회 건으로 상의드릴 게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요즘 교회에 다문화 가정 청년들이 많이 오고 있습니다. 특히 혼자 사는 청년들을 위한 다문화 청년집회를 준비하려 합니다.”
“좋은 생각이네요.”
“주 강사로 부목사님이 꼭 필요합니다. 맡아주실 수 있으신가요?”
석준은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집회가 꼭 좋은 열매를 맺길 바랍니다. 저도 기도 가운데 잘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