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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Nov 28. 2022

좋은 이웃이 된다는 건

옆집 시인은 이사 갔다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인상 좋은 아저씨는 울타리를 치면서 나의 바람대로 우리 집 쪽으로 작은 쪽문을 하나 냈다. 그리고, 본래 옆집 살던 시인은 이사 갔다.

 ....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약통을 어깨에 짊어진 시인이 문을 똑똑 두드리기에 나가보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서 있다. 우리 집 마당의 나무에도 약을 쳤으니 당분간 나무를 만지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소나무, 감나무, 대추나무와 산수유..

나무를 울타리 삼아 심어놓았어도 약 주기와 가지치기, 그 외 어떤 것에도 소질이 없는 우리 부부는 잔디밭에 풀만 가끔 뽑을 줄 알지 그저 멋없게 살뿐. 할 줄 아는 게 없고, 배우지도 않는 무심한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 집 마당에 나무도 옮겨 심어주고, 알아서 약을 준다.


 문 앞에 알이 꽉 찬 탐스러운 가을 산 밤이 가득한 바구니가 놓여있다. 아침 일찍 밤 주우러 산에 같이 가자고 찾아왔던 옆집 시인이 두고 간 것 같았다. 지난번에는 고구마를 놓고 가더니 이번엔 알밤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나오는 제철 산물을 나누어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물하는 것도 시인의 일상이다.  


 어스름 깊은 저녁, 떨어진 낙엽을 모아 태우는 시인 옆에 발길을 멈추면 시를 읊으며 문학을 이야기 하고, 참숯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다가 말이 없어지면 어느새 통기타 연주에 곁들여 노래를 부른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에 꽃잎 사뿐히 내려앉은 찻잔을 건네 오면 마음은 또 얼마나 봄날이던지. 올해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옆집 마당에도, 하얀 울타리 너머 우리 집 마당에도 연분홍의 꽃 잎이 바람에 날려 가득 흩뿌려져 있지만.... 거기 허물없이 앉아 차 한잔을 부탁하던 시인은 이제 없다.    

  

 벚꽃 나무 아래 평상의 색도 바랬고, 쪽문을 냈어도 내 어깨 높이만큼 둘러쳐진 담장은 옆집과 얼마간의 거리를 내어버렸고, 어느덧 평상에 새로 칠해진 푸른색의 페인트 색만큼이나 마음도 좀 서늘해졌다.     


 좋은 이웃을 만나게 해달라고 늘 기도했었다. 바람대로 두 번의 이사 만에 허물없이 먼저 다가와 주는 좋은 이웃을 만났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했던가! 시인 부부가 없는 마을은 텅 빈 것만 같다.


 시린 겨울 김이 솔 올라오는 군고구마와 살얼음 낀 동치미를 안은 시인이 창을 두드릴때면 달빛이 쏟아져 드리우는가 싶게 환했었는데...


 시인 부부가 없는 해 질 녘은 헛헛한 기운만 감돌고 이내 나는 쓸쓸해졌다.

  




 누군가 문을 두드려 나가 보니 옆집 살던 시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서 있다. 오늘 참 반가운 이웃이 왔다.

 “잘 지내셨어요?”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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