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새마을 운동 바람을 타고 온 동네가 초가를 내리고 슬레이트 지붕을 올릴 때 아버지는 목재 운송 사업을 했습니다. 돈도 제법 벌리고 사업도 흥했다고 해요 그도 그럴 것이 새마을 운동은 농촌 계몽 운동으로 조국 근대화를 앞당기기 위해 나라에서 적극 추진했으니 아버지 사업도 순풍에 돛 단 것 같았을 겁니다.
아버지는 돈이 손에 들어오면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서울로 갔습니다. 아버지에겐 잊지 못하는 사람, 첫사랑 그녀와 품에 맘껏 안아보지 못한 자식이 있는 곳으로. 고모에게 맡겨놓고 데리고 살지 못하는 아이에게도 갔습니다.
사진: Unsplash의 Yasin Arıbuğa
결혼 후 얼마간은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냈겠지만, 과거를 털어놓은 후로는 대담해졌습니다. 엄마가 바가지를 긁을수록 밖으로 돌았습니다. 엄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도 아버지는 집안 돌아가는 일은 나 몰라라 했습니다. 다툼이 생기면 오히려 윽박질렀죠.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은 다툼이 폭력이 되는 날이 다반사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집에 가져다주는 돈은 적거나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큰딸 양육비를 고모에게 지급했을 테고 둘째를 보러 서울에 오고 가며 쓴 돈도 만만치 않았을 테니까요. 그뿐일까요. 아버지는 돈이 생기면 동생들부터 챙겼습니다. 특히 목돈이 생기면 동생들에게 거저 나눠주었다고 해요.
아버지는 종손에 장남이었고 할머니는 아직 도움이 필요한 동생들을 장남인 아버지가 챙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아버지는 동생들 학비도 대고 살림살이도 장만해 주며 좋은 형으로 살았습니다. 본인 마음 가는 대로 살면서 정작 아내와 자식을 챙기는 일에는 소홀했습니다. 굶든지 말든지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아버지 마음은 집안 식구들에게 향하지 않았습니다. 엄마에 대한 미움 때문이었습니다. 긴 편지로 자신의 진심을 고백했으나 이해받지 못했으니까요. 서울에 아이를 보러 갈 때면 외박을 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엄마는 이런 행동을 용납했을 리 없으니까요. 게다가 혼외자인 딸아이를 데려와 잠시 키웠는데 엄마가 구박해서 고모가 다시 데려갔거든요. 이 일로 아버지는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학대했습니다. 자신에게도 하나뿐인 아들을요.
종가였던 집안엔 제사도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종손에 독자라 거의 매달 제사가 있었습니다. 특히 겨울에 집중적으로 많았는데 온갖 종류의 음식들을 이웃들 손을 빌려가며 만들었습니다. 손님으로 북적이던 집과 각종 그릇들. 마당에서 제사 음식을 장만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누구의 제사인지는 몰랐어도 고소한 기름 냄새를 따라가 지짐을 집어 먹으려 하자 손을 ‘탁’ 때리던 어른 손맛은 기억나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습니다. 엄마는 버텨냈습니다. 갑작스럽게 수레에서 나무가 굴러 사람이 크게 상하고 아버지의 사업이 순식간에 망하기 전까지는.
그때부터 제삿날이면 엄마는 단지 손만 빌린 것이 아니라 물건도 외상으로 사거나 돈을 꿔 와 장을 봤습니다. 빚내서 제사상을 차릴 때면 설움에 복받쳐 일을 하다 말고 뛰쳐나가 울었습니다. 할머니나 아버지는 엄마에게 살림하고 제사상 차릴 돈을 제대로 주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하는 일마다 안 됐고 마당과 별채까지 딸린 어엿한 집안 살림은 단칸 셋방살이가 됐습니다.
그래도 살림이 굴러갔습니다. 솜씨 좋고 돈 버는 일에 수완이 좋은 엄마는 살림도 알뜰하게 했거든요. 역전 식당에서 반찬 만들어 주고받은 돈, 근처 여관에서 빨랫감을 받아와 번 돈으로 빚을 갚고 아이들을 먹였으니까요.
사진: Unsplash의 Lisa Berry
그 시절 아버지 사업이 망해 집안은 쇠락하고 장남이 형제들을 경제적으로 돕느라 희생했다는 이야기. 고생하며 집안을 일으킨 엄마 이야기는 흔합니다. 혼외자뿐 아니라 첩이 있었던 사람도 간혹 있고요. 여성을 귀히 여기지 않고 아들을 낳아야 대접받던 문화가 여전했었습니다. 당연한 건 아니지만 그 시절 사람들에겐 흔한 이야기라서 식상합니다. 누구나 다 참고 살았으니까요.
그래도 나는, 세월이 그랬다고 해도 엄마, 아빠가 평범했더라면 행복하게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가 고등학교를 중퇴하지 않고 첫사랑에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엄마가 학교에 가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더라면, 묻어두고 싶은 과거 따윈 없으며 서로 신뢰했더라면 행복했을까 생각해 봅니다.